文 사라지고 DJ·盧 외쳤다..민주당 전대 확 달라진 풍경
더불어민주당 8ㆍ28 전당대회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주자들의 유훈 계승 쟁탈전도 본격화했다. 김대중(DJ)ㆍ노무현 전 대통령 등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를 소환해 스스로 적자 또는 계승자임을 주장하는 식이다. 이는 민주당 전당대회마다 등장하는 단골 장면인데, 이번 전당대회에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적게 언급되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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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모두 다르지만…DJ 묘소부터 달려간 이재명ㆍ설훈ㆍ김민석
이재명 민주당 의원은 18일 첫 선거운동 일정으로 서울 현충원의 DJ 묘소를 찾았다. 참배 후 그는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으로 정말로 닮고 싶은 근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라는 생각으로 찾아뵙게 됐다”며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DJ의 민주주의와 인권평화를 되새겨 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전날 출마 선언문에도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이 중요하다”며 DJ의 어록을 인용했다.
이 의원이 떠난 뒤 잠시 후엔 이낙연계 좌장 설훈 의원도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그는 전날 출마선언문에도 “저는 1985년 DJ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고 쓰며 인연을 강조했다. 또 다른 당권 주자인 86세대(80년대 학번ㆍ60년대생) 김민석 의원도 이날 후보 등록 직후 이곳을 방문했다. 그는 참배 후 페이스북에 “DJ 정신이 살아있는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썼다.
“노무현 꿈 제가 이루겠다”…노무현 쟁탈전도 치열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구애도 뜨겁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출마 선언 장소로 부산 명지시장 활어센터 주차장을 택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0년 총선에서 험지인 부산 북ㆍ강서을에 출마했을 때, 텅 빈 유세장을 보며 “뭐라고 말해야 하지, 할 말을 잊어버렸는데”라고 말했던 장소다. 박 의원 선언문엔 노 전 대통령이 9번 등장한다.
강훈식 의원은 지난 16일 광주 5ㆍ18 국립묘지를 방문해 “노 전 대통령의 동서통합이 진보 정당의 성공 방정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일 출마 선언 후 질의응답 때도 “지역균형 등 노 전 대통령이 이어온 좋은 유산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원 의원 역시 지난 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았다. 노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그는 페이스북에 “대통령님이 그토록 원하던 ‘성숙한 민주당ㆍ성숙한 진보’의 꿈을 제가 현실로 바꾸겠다”고 썼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한 박주민 의원도 출마선언문을 비롯해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시작한 검찰개혁을 제가 주도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해찬 10번ㆍ이낙연 4번ㆍ송영길 11번 文 언급…이번엔 8명 다 합쳐도 0번
이렇게 김ㆍ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애는 뜨거운데, 문 전 대통령의 이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총 8명 당 대표 후보자의 공식 출마 선언문만 봐도, DJ는 3명(이재명ㆍ설훈ㆍ박용진 의원), 노 전 대통령은 2명(박주민ㆍ박용진 의원)이 언급했는데, 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쓴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 진행된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들이 친문(親文ㆍ친문재인) 구애만 한다”는 비판이 나오던 모습과 딴판이다. 첫 전당대회였던 2018년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하겠다” 등 출마 선언문에서만 문 전 대통령을 10번 외친 이해찬 전 대표가 당선했다. 2020년엔 “문재인 정부 첫 총리로서 대통령님을 보필했다” 등 선언문에서 문 전 대통령을 4번 언급한 이낙연 전 대표가 승리했다.
서울ㆍ부산시장을 모두 넘겨준 4ㆍ7 재ㆍ보궐 선거 직후 치러진 지난해 전당대회에서조차 후보들의 키워드는 쇄신보단 친문 구애에 찍혀 ‘도로 친문당’이란 비판도 나왔다. 당시 송영길 후보는 선언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한 길을 걸어왔다” 등 총 11번 언급하며 당선했다. 홍영표ㆍ우원식 의원 등 경쟁 주자 역시 앞다퉈 친문 마케팅을 벌였다.
“권리당원 문파→개딸로 이동했기 때문”…“文이 거부한 것” 시각도
이런 현상에 당내에선 “당락을 좌우할 권리당원의 헤게모니가 문파(文派)에서 개딸(개혁의 딸)로 넘어갔기 때문”(서울 초선)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전의 전당대회에선 문 전 대통령 지지층인 문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는데 이젠 이 의원 지지층인 개딸이 권리당원 다수를 차지해, 친문 구애가 득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재ㆍ보선, 대선, 지방선거 3연패 후 당내서도 불거진 ‘문재인 실정론’ 때문에 거리 두기를 하는 것 같다”(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의견도 있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은 최근 강제 북송 논란 등 여권의 공세를 한 몸에 받고 있다”며 “문 전 대통령과 함께 정쟁의 한복판에 들어가는 건 부담스럽다는 각 후보 진영의 정무적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반대로 문 전 대통령이 전당대회 개입을 원치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문 전 대통령 측과 최근 통화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 측은 적어도 예비경선 중엔 전당대회 후보들과 접견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몇몇 후보들이 경남 양산 사저 방문을 요청했으나, 이러한 방침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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