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비 왜 우리가 내나"..전세계약 연장뒤 집주인 뿔난 이유
서울 광진구 본인 소유의 아파트를 전세 놓은 조모(49)씨는 세입자 A가 당초 예정보다 4~5개월 먼저 집을 나가겠다고 해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A는 지난해 2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임대차계약을 연장했는데, “이후 세입자는 언제든 계약을 중도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내년 2월이 아닌 올해 9~10월에 이사를 가겠다고 한 것이다.
조씨는 “계약 기간을 어긴 A에게 귀책사유가 있으니 당연히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한 중개보수를 부담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법률상으로 A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더라”라며 “나도 강남에서 전세살이하고 있는데, 내년 2월 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광진구 집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3개월 전 통보만 하면 계약 해지 가능
임대차 3법 시행 2년을 맞으면서 조씨처럼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이후 중도해지를 하는 문제를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18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전ㆍ월세 계약을 연장한 경우, 세입자는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통지 후 3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발생한다. 원래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묵시적 갱신(집주인이 별다른 통보를 하지 않아 계약이 자동 연장)에만 적용되던 규정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계약에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 규정을 사용하면 세입자는 개인 사정으로 이사를 가야 할 때 집주인에게 3개월 전에만 통보하면 된다. 다음 세입자를 구하기 위한 공인중개사 중개보수 등을 하나도 부담하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받아 나갈 수 있다. 일반 임대차 계약이라면 세입자가 중도해지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이 부담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임대차법 시행 초기에는 집주인이 ‘실거주 사유’로 세입자의 갱신요구를 거절하는 문제를 두고 분쟁이 많았지만, 2년이 지난 요즘은 주택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갈등이 많아졌다”며 “전세 거래 침체로 예전만큼 세입자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집주인 입장에선 계약갱신 후 중도해지 요청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주인 "세입자 귀책사유인데, 왜 우리 책임?"
사실 이 제도는 상대적 약자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긴 규정이다. 하지만 일부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지나친 세입자 보호’라는 비판이 나온다. 계약을 못 채운 건 세입자인데, 집주인이 예상치 못한 중개보수 등을 떠안아야 한다. 자신의 집을 전세로 주고 다른 곳에서 전세로 사는 사람들은 계약 만료 시점이 서로 달라 재입주나 이사에 애를 먹을 수 있어서다.
최근 정부가 시행한 ‘상생임대인’ 혜택을 놓칠 수도 있다. 2024년 말까지 임대료를 직전 임대차 계약의 5% 이내로 올리면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매각금액 12억원까지) 등을 주는 제도다. 재계약 기간은 최소 2년을 채워야 하는데, 세입자가 계약기간보다 하루이틀 먼저 퇴거하더라도 혜택이 사라진다.
집주인 버티기로 세입자 피해도
반대로 세입자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계약갱신청구권을 청구해 전세 계약을 연장한 B는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에 불가피게 이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집주인에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와야 전세금을 돌려주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3개월전에만 통보하면 집을 비우는 데 문제가 없다는 규정을 설명해줬지만, 집주인은 막무가내였다. 실제 일부 집주인들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 세입자의 중도해지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게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세입자가 중도해지할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신규 세입자 주선을 요구할 수 있지만,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중도해지를 하는 경우라면 그런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며 “그런데도 B의 사례처럼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전세금 반환소송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문제점이 드러난 계약 갱신청구권은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토론회에서 “계약 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는 꼭 폐지하고 새로운 방식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전월세 신고제는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며 “임대차 3법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 마련을 위해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꼭 합의를 이끌어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인 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임대차 3법을 손대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국토부 주택임대차지원팀 관계자는 “각종 임대차 관련 분쟁은 분쟁조정위원회와 상담 콜센터 등을 통해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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