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적인데 자유로울 수 있죠"..시조 대상자들이 말하는 시조의 매력

남수현 2022. 7. 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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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날을 기념해 16일 서울 조계사 불교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에서 초·중·고등부 대상 수장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고가현(제주 어도초6)양,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 이정윤(시흥 군서고3)양,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강정현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3년 만에 비대면으로 열린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 녹록치 않은 경쟁을 뚫고 대상(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한 초·중·고 학생들은 알찬 수상작 작품 만큼이나 수상 소감, 앞으로의 포부가 의젓했다.


◇초등부 대상=고가현(제주 어도초6)

■ 새우 등

「 새우 등이 굽은 이유 이제야 알겠다.
아기를 안으면 등이 굽어지듯이
바다를 껴안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에서 서울까지 발걸음을 한 고가현(제주 어도초6) 양은 이날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학생이었다. 초등부 대상을 받기 위해 한번, 우수학교로 선정된 어도초 대표로 또 한 번, 자신이 쓴 대상작을 낭독하기 위해서, 총 세 차례나 무대를 오르내렸다. 들뜰 법도 하지만, 수상 소감을 묻자 “기뻐요”라고 간결하게 답하는 고 양에게서는 그가 써낸 시조에서만큼이나 어른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학교에서 금요일마다 쓰게 해서” 시조 창작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생태건강' 동시조다. “학교에서 4학년 때부터 3년째 공부하고 있어요. 처음 배울 때는 생태 동시조가 뭔지 잘 몰랐는데 차츰 시조의 형식에 맞춰 쓸 수 있는 수준까지 된 것 같아요.”

새우를 소재로 한 시조는 선생님이 내준 ‘바다’라는 시제(詩題)를 고민하다 떠올리게 됐다. 그는 “새우가 사실 안을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바다는 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시조를 더 사랑하며 열심히 생태 동시조를 쓰겠다”고 말했다.


◇중등부 대상=조수빈(김포 푸른솔중2)

■ 우주에 지어놓은 집

「 학원이 끝난 시간 밤을 걷는 세상은
달 위를 혼자 가는 고요한 나의 우주
무거운 산소통을 맨 나는 도시의 우주인

꼬불꼬불 영어단어 어질어질 수학 공식
외계인과 소통하듯 입에서 빠져나간 말
우주에 지어놓은 집 통신이 불가하다고

단어 시험 백 문제 만점을 받기까지
무거운 눈을 뜨고 긴 밤을 건너가면
나만의 우주에서도 꽃은 피고 있겠지

“사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이 대회를 계속 나왔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중학생이 돼서 대상을 받게 되니까 정말 감회가 새로워요.”

시인인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시조를 자주 접했다는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앙학생시조백일장에 도전한 끝에 대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시조의 매력에 대해 “형식이 정해져 있는 글을 쓰면서 글자 수 등을 맞추기 위해 깊게 생각하는 과정이 시조가 아닌 다른 글을 쓸 때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승 김계정 시인이 “어른보다 잘 쓴다”고 칭찬하는 조양은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시조로 녹여냈다. “항상 학원이 밤 10시에 끝나거든요. 어떤 주제로 시를 쓸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 장면이 생각나는 거예요. 거기다 제가 원래 관심이 많은 우주를 섞어서 쓰면 예쁜 시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반드시 갖고 싶은 직업은 아직 없지만, 관심사는 넘쳐난다.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지금은 시를 쓰고 있지만, 이쪽 직업을 택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제 책을 꼭 내보고 싶습니다.”


◇고등부 대상=이정윤(시흥 군서고3)

■ 냉이꽃

「 봄 정취 따다 놓고 냉잇국 끓여본다
푸르른 국이 되어 냄비에 봄이 피던
국자의 작은 언덕엔 된장 맛의 봄 향기

이윽고 그 초봄을 푹 익은 국에 말아
초록의 얼굴 가진 냉이를 들여 마셔
내 몸에 언덕의 일부가 큰 허파로 솟는다

남겨진 냉이들은 저마다 꽃을 피워
허연색 살짝 휘인 고개로 흔들흔들
자연의 언덕 그대로 그득하게 봄이 온다

고등부 대상 수상자 이정윤(시흥 군서고3) 양은 2016년 열린 학생시조 암송경연에서 대상을 받았던 베테랑이다. 당시 경험에 대해 그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어서 멋모르고 외웠는데, 그때 암송했던 게 내 안에 어렴풋이 남아 고등학교 시험 문제를 풀 때 빛을 발했다”며 눈을 반짝였다. 이어 “암송대회 수상이 1차로 시조에 대한 관심을 키워줬다면, 올해 수상은 곧 성인이 되는 제게 시조를 사랑할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대상작은 고모네 밭에서 처음 본 냉이꽃에서 착안했다. “냉이는 보통 꽃이 되기도 전에 항상 다 먹었기 때문에 냉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거기서부터 내가 먹은 냉이도, 남아 있는 냉이도 모두 소중하다는 상생과 화합의 이야기를 하게 됐네요.”(웃음)

국어교사로 진로를 정했다는 이양은 시조의 매력에 대해서도 옹골진 답을 내놨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가령 셰익스피어가 남긴 문학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잖아요. 우리나라도 그런 문학 자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형시이면서 그 안에서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시조가 그런 문학 전통이 되면 좋겠어요.”


◇우수지도상=김계정 시인


우수지도상을 받은 김계정 시인은 학생시조백일장 1회 대회 때부터 제자들을 입상시킨 ‘단골 도우미' 선생님이다. 올해도 29명의 제자가 작품을 응모해 17명이 수상했다.

학생들에게 한국사·세계사를 가르칠 때도 요점 정리를 시조로 시킨다는 그는 “아이들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로 시조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하늘이 얼마나 파란지 올려다볼 시간도 없더라고요. 시조를 쓰다 보면 하늘 한번, 길가의 꽃 한번 쳐다보면서 여유를 찾게 되죠.”

시조시인이기도 한 그는 “아이들을 위하는 시조 교육 덕분에 어느 순간 내 시도 좋아지면서 복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이렇게 주어진다는 점이 너무 좋을 따름”이라고 기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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