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리 후보들의 대처 마케팅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2013년 타계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올해 영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5월15일 대처의 고향 마을 그랜섬에 대처 전신 동상이 세워졌는데 2시간 만에 한 시민이 계란을 던져 동상을 훼손했다. 계란을 던진 남성은 제러미 웹스터라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계란 투척 영상을 공개하고 '#동상을 끌어 내리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애초에 대처 동상은 2018년 영국 의회 근처에 세워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처가 죽은 지 얼마 안 지났다는 이유로 의회가 반대했고 고향 마을로 옮겨졌는데 고향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 했다.
하지만 제78대 영국 총리가 될 집권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는 후보들 간 대처 마케팅이 활발하다. 후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물가가 크게 치솟으면서 경기 침체 위험이 커진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는 영국병을 고친 대처처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경선 1, 2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리시 수낙 전 재무장관은 자신의 경제 비전이 상식적인 대처리즘이라고 주장한다. 수낙 전 장관은 감세를 주장하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코로나19 유행 이후 크게 늘어난 정부 재정적자를 이유로 감세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정부 재정을 좀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점이 대처식 경제 접근법이라고 주장한다. 수낙 정 장관은 번만큼 지출해야 한다며 이 점이 대처리즘의 상식이며 대처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또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약국을 도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대처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식료품점 일을 도우며 받았던 훈육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경선 1, 2차 투표에서 모두 2위에 오르며 대처, 테레사 메이에 세 번째 영국 여성 총리를 꿈꾸는 페니 모돈트 국제통상부 부장관은 최근 자신이 대처처럼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 저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넌지시 자신과 대처 모두 더 평가받아야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1, 2차 투표에서 모두 3위를 차지하며 두 후보를 위협하고 있는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은 그동안 꾸준히 대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트러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높아지던 지난 2월 중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다. 트러스는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모피 코트와 모자를 썼는데 1987년 대처가 소련을 방문했을 때 붉은 광장에서 입었던 의상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에스토니아를 방문했을 때 탱크에 오른 모습도 1986년 서독을 방문했을 때 탱크에 오른 대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받았다. 트러스는 영국 최초 여성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트러스가 주장하는 자유무역, 낮은 세금, 작은 정부 등은 대처가 총리 재임 시절 추구했던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1차 경선에서 탈락한 나딤 자하위 재무장관도 그의 꿈은 현대의 대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식료품 가계집 딸로 성장해 총리에 오른 대처는 영국에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자하위 장관은 이라크에서 태어나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 하던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민왔다. 2차 경선에서 탈락한 수엘라 브레이버먼 법무장관(27표)도 지난 5월 대처와 전시 영웅인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수당 대표 후보들이 대처 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보수당원들 사이에서 대처의 인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20만명에 가까운 보수당 당원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나이 많은 백인 남성들은 여전히 대처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 오는 21일까지 결선에 진출할 최종 후보 2명을 가리기 위한 경선은 보수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9월5일 이전에 실시될 최종 결선 투표에는 보수당 당원 모두가 참여한다.
리버풀대의 조너선 텅 정치학 교수는 "대처는 여전히 많은 보수당원들에게 정치적 영웅으로 남아있다"며 "보수당원 다수가 대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대처 시절을 자산들 생전에 가장 위대했던 정치 시절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텅 교수는 "대처를 비판해서는 (보수당 대표로) 당선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재임한 대처는 지난 150년 영국 총리 중 가장 오래 집권했다. 영국병을 고쳐 덕분에 영국인 수백만 명이 더 잘 살게 됐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영국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도 높다. 대처는 총리 재임 시절 수익성이 없는 산업을 과감하게 폐쇄하거나 민영화 하면서 노조와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2006년 '보라밭을 흔드는 바람' 2016년 '나, 다니엘 브레이크'로 두 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국 영화감독 켄 로치는 2013년 대처가 죽었을 때 "대처의 장례식을 민영화 하자"는 유명한 말로 대처를 비꼬기도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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