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더십' 강조한 바이든, 빈손 순방 비판 직면

전웅빈 2022. 7. 17. 07:4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이 ‘빈손’으로 끝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고유가 대응을 위한 석유 증산, 아랍 국가에서의 중·러 영향력 저지 등 주요 순방 목표에서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지목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정치적 위상만 국제적으로 공인해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서 “세계가 더 경쟁적이 되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 더 복잡해지면서 중동이 미국의 국익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중동 지역을 떠나 그 공백을 중국, 러시아, 이란이 채우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적극적이고 원칙 있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중동 지역에서의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GCC+3 정상회의에는 GCC 회원국(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쿠웨이트)과 이집트, 이라크, 요르단 등 3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사우디에서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 대신 무함마드 왕세자가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을 향해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를 준수하는 국가들과 협력 강화’ ‘호르무즈 해협 등 중동 지역에서 항해의 자유 보호’ 등 5대 원칙을 설명하며 미국의 중동 개입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여러분 모두와 협력해 긍정적 미래를 건설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한 10억 달러 지원 약속도 했다.

정상회의는 그러나 실질적 성과 없이 끝났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순방은 거대 산유국인 중동 국가와 관계를 재설정하고, 중국과 러시아, 이란의 역내 영향력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순방할 가치가 있었는지 의구심만 남긴 채 중동을 떠났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실제 증산 약속을 얻어내는 것부터 실패했다. 정상들은 “세계 석유 시장을 안정시키고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OPEC 플러스’(OPEC+)의 지속적인 노력을 인정했다”며 “OPEC+ 회원국들이 7, 8월 공급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회의 후 “우리는 국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공급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면서 “에너지 생산업체들은 이미 증산했으며 향후 수개월간 벌어질 일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 간 증산에 대한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은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원유 관련 논의는 없었다”며 “OPEC+가 시장 상황을 평가해 적절한 생산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참여하는 OPEC+에서 증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OPEC+ 회의는 다음 달 3일 열린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회의에서 “사우디는 이미 최대 생산 능력치인 하루 1300만 배럴까지 증산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넘어서는 추가 생산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비현실적인 에너지 정책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실업률을 높이고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의 증산 약속 없이 귀국했다”며 “(OPEC+) 회의에서 사우디로부터 증산 계획이 발표되지 않는다면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델 알주베이르 장관은 전날 CNBC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사우디 최대 교역 파트너로 거대한 에너지 시장이자 미래 시장이다. 안보·정치협력에서는 최고 파트너”라며 “우리는 모든 이들과 거래할 수 있기를 원하고, 모든 이들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지속 강화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스라엘과 사우디 관계 정상화도 별다른 진척을 내지 못했다. 사우디 당국은 전날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이스라엘발(發)을 포함, 모든 민항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해 비행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파르한 외무장관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에서 이스라엘과 ‘연합 방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스라엘에서 출발한 항공기에 대해 영공 통과를 허용한 것도 외교관계와 상관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인권 문제 지적까지 당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동 뒤 기자회견에서 “카슈끄지 문제는 회담 모두에 제기했으며, 그때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했다”며 “내 관점에 대해 분명히 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함마드 왕세자는 “개인적으로 나는 책임이 없고, 책임 있는 인사들에 대해서 조처를 했다”고 답했다고 바이든 대통령이 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미군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포로 학대 사건과 팔레스타인계 미국 언론인인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피격 사건을 거론했다고 CNN 방송이 전했다. 미국에도 인권 문제가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먹 인사’는 끔찍한 배신”이라며 “이제 사우디와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재개할 수 있다는 청신호를 제공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폴리티코는 “무함마드 왕세자와 주먹 인사하는 모습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인권 옹호자로서의 바이든 대통령 명성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