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왈츠 춘 지 4년만에 뒤집혔다..'탈러시아' 이 나라 사연 [사진을 보자]
■ ※ 때로 말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전하는 이미지의 시대. [사진을 보자]는 국제뉴스를 담은 사진 속 흥미로운 뒷얘기들을 펼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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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춤을 추고 있는 이 여인, 누구일까요.
때는 2018년 8월, 이곳은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 감리츠입니다. 춤추는 여인은 카린 크나이슬 오스트리아 전 외무장관(2017~2019 재임). 당시 53세로 사업가인 볼프강 메일링어와 웨딩 마치를 울리는 신부였죠. 이 결혼식에 푸틴 대통령이 몸소 참석해 그와 왈츠를 춘 겁니다. 크나이슬 전 장관은 '순전히 개인적'인 초청이었다고 했지만, 푸틴 대통령이 오스트리아를 각별하게 생각한단 걸 엿볼 수 있죠.
그런데 4년 만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지난 4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47일째 되던 날, 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나 "휴전하도록 설득하겠다"며 모스크바로 날아갔습니다. 개전 이후 푸틴 대통령과 처음 대면한 서방 지도자였죠. 수 시간 만에 취재진 앞에 나타난 네함머 총리는 "매우 힘든 대화였다. 우호적인 회담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러시아까지 가서 '굴욕의 나홀로 회견'을 한 오스트리아 총리. 이 두 나라 사이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첫 국빈 방문한 푸틴…러, 오스트리아 투자 ‘큰 손’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는 지난 20여년간 푸틴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데 열성적이었습니다. 폴란드와 발트해 연안 국가들이 야욕을 보이는 푸틴 체제를 위협으로 느낀 반면, 오스트리아는 '황금 기회'로 여겼답니다. 2000년대 초반 정치권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다 포기했던 배경에도 푸틴과 척을 지고 싶지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고 하죠. 오스트리아는 서유럽 국가에서 나토 미가입된 3개국(스위스·오스트리아·아일랜드) 중 하나입니다.
푸틴 대통령도 오스트리아에 호감을 보였습니다. 처음 국빈 방문한 게 2001년으로 역대 소련·러시아 지도자 중 처음이었습니다. 스키 강국 오스트리아의 유명 스키장에서 볼프강 쉬셀 오스트리아 전 총리(2000~2007 재임)와 스키도 탔죠.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근무 시절부터 유도, 스키 등 스포츠로 건강 관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오스트리아는 미국·소련 승인을 받아 1955년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을 선언했습니다.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대신 자국의 안보를 보장받았죠. 이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구와 외국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합니다. 특히 러시아는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외국 투자자입니다. 러시아 기업의 오스트리아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255억 달러(약 33조5000억원)였습니다.
이 때문인지 오스트리아는 유럽연합(EU) 국가임에도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2018년 러시아 출신 이중간첩 독살 미수 사건 등으로 시작된 EU의 대러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천연가스로 맺은 우호…극우 자유당은 ‘친푸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돈독한 관계의 핵심엔 에너지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1968년 소련의 가스를 수입한 최초의 서유럽 국가입니다. 1968년 이후로 50년 동안 2180억 입방미터(㎥)를 수입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는 천연가스를 93억4000만㎥ 소비했는데 그중 무려 80%를 러시아에서 들여왔습니다. 천연가스의 러시아산 의존율이 유럽 국가 중 상위 5위권입니다.
오스트리아 고위 정치인들이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임원이 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크나이슬 전 장관도 지난해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로스네프트' 이사회 사외이사로 지명됐습니다.
크나이슬 전 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통합러시아당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던 극우 자유당 소속이었는데요. 자유당은 2017년 서방의 눈치에도 아랑곳 않고 크림반도로 공식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2017년 말 자유당이 17년 만에 중도우파 국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해 정부 요직을 차지하면서 친푸틴 행보에 날개가 달리죠.
부총리-러 재벌 유착설 파문…푸틴과 거리두기
그런데 2019년 5월 ‘이비자 스캔들’이 터집니다. 자유당 대표였던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2017~2019 재임)가 2017년 스페인 이비자섬에서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 조카라는 여성에게 정부 사업권을 줄 테니 재정적으로 후원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뒤늦게 공개된 겁니다. 러시아 정경유착의 상징인 올리가르히에게 국민 세금을 퍼주는 부패한 모습에 분노한 오스트리아인들이 대대적인 퇴진 시위를 벌입니다.
결국 국민당·자유당 연정이 파기됐고, 조기 총선이 실시됐죠. 자유당 의석은 51석→31석으로 줄고, 국민당과 진보 녹색당이 연정 정부를 구성했습니다. 자유당이 쪼그라들면서 푸틴 대통령과 각별한 연결고리도 사라졌습니다.
나아가 러시아 스파이 스캔들도 진행 중입니다. WP는 지난 5일 60대의 오스트리아 비밀 요원 에지스토 오트에 대해 소개했는데요. 오트는 현재 러시아에 서방에 대한 기밀을 넘겨준 혐의로 오스트리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당국은 몇 년 전부터 오트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정보당국에 러시아가 깊이 침투해 있던지라 방관하다 지난해에 체포했습니다. 앞서 지난 2018년에도 70대 퇴역 장교가 20년간 러시아에 기밀을 넘긴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논란이 일었죠. 이래저래 오스트리아 민심이 푸틴과 러시아에 좋을 수가 없습니다.
우크라 지지로 돌아섰는데…탈러시아 어려워
무엇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전쟁이 잔혹해지면서 오스트리아도 서방과 보조를 맞춥니다. 지난 4월 초 러시아군이 부차 지역에서 철수한 후, 민간인 학살 정황이 드러나자 네함머 총리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국제 전문가들이 민간인에 대한 끔찍한 공격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계속해서 인도적 지원과 구조 장비 등을 확대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의 EU 후보국 지위 부여를 지지하고, 우크라이나 난민도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러시아도 오스트리아를 비우호국 리스트에 올리며 응수했습니다.
그렇다고 오스트리아가 당장 탈러시아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오스트리아가 또 다른 중립국인 핀란드·스웨덴처럼 나토 가입을 추진하는 등 반러 행보를 보이진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데요.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오스트리아인 75%가 중립 유지를 찬성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80%나 수입하고 있는 천연가스 영향이 큽니다. 이미 푸틴과 각을 세웠다가 줄줄이 가스관이 잠기고 있는 독일·프랑스 등을 보며 조마조마하겠죠. 블룸버그 통신은 "오스트리아가 러시아 가스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 몇 년이 필요하다. 당장은 러시아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때까지 오스트리아의 '엉거주춤 왈츠'는 계속될 듯합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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