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졸전에 '전차 무용론'…드론·무인전투 기술로 왕좌 되찾는다 [이철재의 밀담]
2월 24일(이하 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체면을 크게 구긴 건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려던 당초 목표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 넉 달이 지난 현재도 군사적으로 한참 열세인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러시아 졸전의 원인은 여러 개가 꼽힌다. 그중 우크라이나군을 거세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했던 러시아 전차가 서방이 지원해준 대전차 무기에 무기력하게 당한 게 대표적이다. 16일 현재 민간 사이트 오릭스(Oryx)에 따르면 러시아는 모두 873대의 전차를 잃었다. 소련이 냉전 한때 1만대의 전차를 보유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수치는 현재 러시아로선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전차 손실은 205대에 불과했다.
러시아 전차의 무기력한 전투 때문에 전차 무용론이 다시 나왔다. 러시아군이 전차를 잘못 운용했기 때문이지, 전차 효용성이 낮아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반론도 거세다. 특히 군사 선진국이 연구하거나 도입하기로 한 차세대 전차를 보면 대전차 무기의 도전에 맞선 전차의 응전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차는 포만 쏘는 게 아니다…드론도 날리는 KF51
지난달 13일부터 17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로사토리(Eurosatory) 2022에선 독일의 방위사업체인 라인메탈이 KF51 판터를 선보였다.
가장 큰 특징은 전차포다. 한국의 K2 흑표를 비롯한 현재 각국 주력 전차(MBT)의 전차포 표준은 120㎜다. KF51의 130㎜ 포는 지구 상 어지간한 전차를 격파할 수 있다. 펀치가 더 세지면서, 교전거리도 늘어났다. 라인메탈은 130㎜ 포의 교전거리가 120㎜보다 2배라고 자랑하고 있다.
130㎜ 포엔 자동장전장치가 달렸다. 탄약이 크고 무거워 탄약수가 손으로 장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7.62㎜ 기관총을 탑재한 원격사격체계(RCWS)는 열열상센서와 단거리 레이더로 드론이나 배회탄(자폭형 드론)을 조준한 뒤 격추할 수 있다.
KF51의 새로운 비밀병기는 드론이다. KF51 안에 드론을 2대까지 넣을 수 있다. 종류도 30분가량 날면서 10㎞ 안을 정찰하는 드론과 60㎞의 거리를 최대 60분까지 날면서 정찰ㆍ공격할 수 있는 배회탄 등 2가지다.
KF51은 전차장, 포수, 조종수 등 3명을 기본으로 하면서, 드론과 RCWS를 담당하는 시스템 오퍼레이터를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됐다. 이 자리엔 중대장이나 대대장이 탈 수 있다.
다만 포탑에 드론 탑재 공간까지 마련하기 때문에 KF51은 탄약은 10발만 실을 수 있다. KF51(59t)은 독일 연방군의 주력 전차인 레오파드 2A7V(66.5t)보다 훨씬 가볍다. 방어력도 당연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시회의 KF51엔 능동방어체계가 안 보였다.
이 전차는 배치는커녕 개발이 끝나지도 않았다. 다만 라인메탈이 내놓을 수 있는 미래의 전차를 보여주는, 일종의 ‘콘셉트카’다.
130㎜도 약하다…140㎜의 도전장 MGCS
유럽의 차세대 전차 개발 컨소시엄인 KNDS는 유로사토리에 유럽 주력전차(EMBT) 2022 모델을 공개했다. 2018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EMBT는 독일의 레오파드 2A7 차체에 프랑스의 르클레르 포탑을 얹힌 전차였다.
2022년형은 2018년형보다 더 나아갔다. 포탑의 30㎜ RCWS는 드론을 잡을 수 있다. 또 이스라엘에서 만든 능동방어체계인 트로피는 적의 대전차 무기를 무력화한다.
전차포는 120㎜이지만, 신형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인 사드(SHARD)는 다른 120㎜탄보다 관통력이 더 세다. KNDS는 EMBT를 기반으로 주지상전투체계(MGCS)를 2035년까지 완성하려고 한다. KNDS는 MGCS의 전차포를 프랑스 측 파트너인 넥스터가 개발하고 있는 140㎜로 바꿀 계획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경전차 그리핀 Ⅱ
지난달 28일 미국 육군은 제너럴 다이나믹스 지상부문(GDLS)의 그리핀 Ⅱ를 기동보호화력(MPF) 사업자로 선정했다. 미 육군은 최종적으론 그리핀 Ⅱ 504대를 갖출 계획이다.
그리핀 Ⅱ는 스페인ㆍ오스트리아 합작 보병전투차(IFV)인 아스코드(ASCOD)를 기반으로 만든 경전차다. 주 무장은 105㎜ 저반동포 XM35다. 기존의 105㎜ 전차포와 탄약을 공유한다. 탄속과 운동에너지도 같지만, 반동은 더 낮다. 꽤 매서운 화력을 자랑한다.
‘MPF’라고 쓰지만 ‘경전차’라고 읽는 게 정답이다. 미 육군은 이 사업을 경전차로 부르려고 했지만, 현장에서 진짜 전차처럼 투입할 것을 우려해 MPF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작고 가벼우면서 빠른 경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사라졌다. 대전차 무기가 발전하고, 장갑차가 경전차의 주요 임무인 정찰을 대신하면서다. 미 육군도 96년 공수부대용 경전차인 M551 셰리든을 내버린 뒤 한동안 경전차가 없었다.
그리핀 Ⅱ는 미 육군의 여단전투단 중 보병여단전투단(IBCT)에서 화력을 지원한다. 미 육군은 여단전투단(BCT) 위주로 꾸려졌다. 여단전투단은 보병대대를 중심으로 한 보병여단전투단, 8바퀴 장갑차인 M1126 스트라이커 장갑차로 무장한 스트라이커여단전투단(SBCT), M1 에이브람스 전차와 M2 브래들리 보병전투차량(IFV)으로 무장한 기갑여단전투단(ABCT) 등 3종류가 있다.
이 중 IBCT는 우리말로 알보병이다. 그런데 IBCT는 한국 육군처럼 뚜벅이는 아니다. 각종 차량으로 움직이는 자동(차)화(motorized) 부대다. 그런데 이 여단에 전차와 같이 적 포화를 받아내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마땅찮다. 그래서 나온 게 그리핀 Ⅱ다.
그리핀 Ⅱ의 무게는 38t이다. 방어력은 기관포나 기관총을 막는 수준이다. 대신 미국 공군의 전략수송기인 C-17 글로브 마스터 Ⅲ에 최대 2대를 실을 수 있다. 재빨리 해외로 옮겨져 보병 부대에 든든한 뒷배가 돼 주는 게 그리핀 Ⅱ다.
경전차는 최근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도 경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세르비아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은 경전차를 도입하려 한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경전차는 기존 전차보다 가볍지만, 화력은 거의 대등하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주력 전차의 보조 전력으로 도입하는 국가들이 늘 것”이라면서도 “상대적으로 취약한 방어력은 경전차의 확대 보급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시 태어난 43살…M1 에이브럼스 NG
지난달 16일 전 세계 밀덕들이 흥분했다. M1의 생산자인 GDLS가 티저 온라인 사이트를 공개하면서다. 이 사이트엔 M1 에이브럼스 NG(Next Generationㆍ차세대)의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왔다.
미 육군의 M1은 79년부터 만들어졌으니, 올해 43살이다.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이슬람국가(IS) 소탕전, 예멘 내전 등을 치른 역전의 용사다. 최신 개량형인 M1A2C SEP V3는 새 가스터빈 엔진으로 갈아 연료 소비율이 높아졌고, 신형 복합장갑을 달아 더 단단하면서도 더 가벼워졌다.
미 육군은 M1의 개량형인 SEP V4(2025년), SEP V5(2040년) 등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M1의 ‘장수만세’를 이어갈 태세다. 그러나 조금씩 고치는 것만으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잠재적 적국을 상대하기 벅찰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래서 나온 게 M1 NG다. 10월 10일 미 육군협회(AUSA) 전시회 때 실물이 나타날 때까진 현재 관련 정보는 아주 제한적이다. 그래서 갖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티저 동영상에선 M1 NG를 ‘조용한 타격(Silent Strike)’라면서 ‘적은 우리가 오는 걸 절대 듣지 못한다(They’ll Never Hear Us Coming)’고 설명했다. 가스터빈 엔진 대신 하이브리드 엔진을 달았을 것이란 예상이다.
동영상에서 XM360 전차포, 30㎜ M230 기관포, 이스라엘제 APS 트로피 등 신형 장비가 슬쩍 보인다.
미래에도 전차의 시대는 쭉 이어진다
미국을 비롯한 독일, 프랑스는 아직 전차를 버릴 생각은 없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양욱 박사는 “전차 무용론은 계속 나왔지만, 지상에서 장기간 작전을 수행하면서 목표를 파괴하고 적진을 점령하는 무기는 아직 전차만 한 게 없다”면서 “앞으로 공격헬기ㆍ드론ㆍ대전차 무기가 더 발달하더라도 전차도 맞대응 수단을 갖출 것이기 때문에 전차의 중요성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욱 박사는 2030년 이후 지상전을 계속 지배할 전차의 모습을 이렇게 내다봤다.
①사람이 조종하지만, 필요할 경우 무인으로 사용, 무인차량(UGV), 무인항공기(UAV)와 함께 전투를 벌이는 유무인복합편제(MUM-T)는 기본
②추진방식은 하이브리드 또는 수소연료전지 방식
③스텔스 기술을 최대화한 차체
④네트워크 통합 전투 능력
⑤야전에서 고장이 나거나 손상한 부품을 통째로 갈아 끼우는 모듈형 설계, 공용 차량을 바탕으로 임무에 따라 다양한 파생 차량으로 발전
양욱 박사의 전망대로라면…. 전차는 죽지 않는다, 다만 거듭 태어날 뿐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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