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행복을 본 적 있나요
[굿모닝인천 정경숙]
▲ 마스크로도 감출 수 없는 아이의 행복_김재천 |
ⓒ 굿모닝인천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별다른 충돌 없이 흘러가는 삶. 매일 아침 햇살 받으며 일터로 향하고, 해가 땅 밑으로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하루하루. 그날들이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고 소중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바이러스가 일상을 뒤흔들기 전까진.
길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싸움이 때론 지치게 했다. 그래도 잘 버티어냈다. 여전히 웃고, 그늘은 빛으로 채우며 희망을 그리고 살았다.
그 시간이 손으로 만지고 추억하는 '진짜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인천역 가는 길에 있는 '해당화사진관'은 추억 속 동네 사진관처럼 아직 필름을 현상한다. 눈물이 배어나고 웃음이 묻어나는 우리 사는 이야기가 이 안에 스치듯 머물러 있다.
'그래, 이런 날도 있었지.' 장롱 깊숙이 간직한 앨범 속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마음이 기억하고 있다. 눈시울이 반짝이다 입가에 지긋이 미소가 번진다. 살다 보면 살아내다 보면 버티기 힘든 시간도 겪는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다. 어쩌면 울고 웃는, 살아 있는 매 순간이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다.
▲ 필름 카메라를 들고, 유민이_하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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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사탕의 달콤함 너머, 유경이_김재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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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 첫째, 해랑이_하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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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빛에 비춘다. 흔들리는 나뭇잎과 물결로 비추어 드는 햇살 사이, 아내가 서 있다. 그날이 떠오른다. 두 손 꼭 잡고 거닐다 선선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아내가 활짝 웃었다. 찰칵,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4년 전, 해당화사진관에서 하태우(36) 작가를 처음 만났다. 그해 초 사라져가는 동네 현상소의 명맥을 잇겠다며 덜컥 사진관 문을 연 그였다. 고맙게도 사진관은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다시 만난 그는 네 살 딸아이, 유민이의 아빠가 돼 있었다.
▲ 아이를 배 속에 품은 아내_하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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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갓 낳은 딸 유민이를 바라보는 아내_하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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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집에서 연 아이 생일 파티_하태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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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2
계절을 잃어버렸었다. 모처럼 바깥나들이에 나선 아이는 마냥 신난다. 비둘기들과 인사를 나누고, 엄마 아빠를 졸라서 커다란 솜사탕도 샀다. 마스크를 벗고 크게 한 입, 살살 녹아내리는 솜사탕이 감미롭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다 찰칵, 잠시 멈춘다.
동네 사진관에서 사진을 현상하다 보면, 세상을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고 때론 눈물 흘리고,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 동질감은 사진관 주인과 고객으로 만난 이들을 10년지기처럼 끈끈하게 이어준다. 김재천(36), 양지혜(35) 부부의 딸 유경이가 커가는 모습도 오롯이 함께 지켜보았다.
아이가 태어나 기쁨을 주고 커가면서 세상에 행복을 퍼트리기까지, 사진 한 장 한 장에 한 사람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부부는 오늘도, 뷰파인더 너머 순간을 마음에 고이 담아 인생의 앨범에 가지런히 꽂아둔다.
▲ 마스크를 쓴 그날의 기억_김지은 |
ⓒ 굿모닝인천 |
▲ 코로나19 이전, 활기찬 월미도 놀이동산_김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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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계속되는, 우리네 일상_김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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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바닷가 놀이터, '지구에서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 바이킹은 보는 것으로도 아찔하다. '타가다 디스코'는 빙글빙글 잘도 돌아간다. '까르르' 웃음소리와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 모든 게 멈췄다. 하나 삶은 계속된다.
느닷없이 나타난 바이러스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살았다. 콘텐츠 기획자 김지은(25)씨의 어머니는 처음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때 확진자가 됐다.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오기 전에도 이웃에 피해를 줄까, 18층 집을 매일 홀로 오르내린 어머니였다.
▲ 시선을 붙잡은, Pick up이란 글자_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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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종도, 집으로 가는 길_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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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이전 여행길, 비행기 안에서 본 세상_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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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텅 빈, 하나 새 희망으로 꽉 찰 인천국제공항_김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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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4
'뜨거운 안녕'을 나누던 공항엔 적막이 흐른다. 주의에 한 사람도 없다. 'Pick up(픽업)'이란 글자에 시선이 머문다. 떠날 수 없는 현실. '누군가가 나를 데려가주었으면...' 순간 찰칵, 셔터음이 고요를 깨운다.
늘 머물던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이들을 위해 품을 활짝 열고, 여정에 기꺼이 날개가 되어주는 그곳. 아무도 없는 휑한 공항을 상상한 적이 없다. 화려한 이면에 숨겨두었던 또 다른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천국제공항은 김건(30)씨의 일터다. 공항은 바다 건너 나라에서 온 이방인인 그를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사람들과 복작복작 어울려 지내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꾸었다. 그러다 느닷없이 나타난 바이러스가 삶을 흔들었다. 일, 동료,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겠다' 걱정했지만, 두려운 건 아니었다.
"사진은 왜 찍는 건가요?"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것을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거니까요."
–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 중에서
※ 본 기사는 '해당화사진관'과 인연이 있는 시민 작가들의 필름 작품으로 꾸몄습니다. (해당화사진관 :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 288, 010-8082-8361)
글 정경숙 본지 편집위원│사진 하태우·김재천·김지은·김건
▲ '지금 빛나는 인천' 취재영상 섬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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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2년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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