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아프리카까지.. '대세' 사형제 폐지, 한국 선택은

손가영 2022. 7. 16.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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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 폐지운동 33년째 "절호의 기회".. 15년간 '실질적 사형폐지국' 한국, 재판관 9명은 과연

[손가영 기자]

"사형제는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위헌적 형벌"이라는 주장이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오르면서, 한국이 사형제 폐지국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최초로 위헌법률심판이 이뤄졌던 12년 전에 비해 사형제 폐지를 옹호하는 세계적 추세가 더 강화되고 한국 시민들의 인권 감수성도 예전과 달라진 데다, 현재 헌법재판관 아홉 명 중 다섯 명이 사형제 폐지에 동의 취지로 입장을 밝힌 바 있다(관련 기사: 사형제 두고 4시간 31분간 격론... "생명, 절대적 가치" vs. "응보적 정의" http://omn.kr/1zto1 ).

최근 10년, 사형 선고 16건... 사형폐지, 입법적 노력은 거의 안보여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이 열리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 종교지도자들과 사형폐지를 위한 종교,시민, 사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들이 사형제도 위헌결정 호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법률대리인 김형태 변호사(가운데)가 발언하는 모습.
ⓒ 이희훈
 
2022년 7월 기준 한국 교도소에 수감된 사형수는 59명이다. 사형 선고는 매년 적게는 0명, 많게는 5명까지 이뤄져왔다. 2021년 사법연감을 보면, 2011~2020년 동안 총 14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2011년 1명, 2012년·2013년 각 2명, 2014년 1명, 2018년 5명, 2019년 3명 등이다. 나머지 해엔 한 건도 없었다. 그러다 지인인 한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 유기를 도운 공범 1명까지 살해한 권재찬씨에게 올해 6월 사형이 선고됐다. 사형 선고를 받은 인원은 1991년부터 지금까지 294명이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사형이 집행된 적은 없다. 1997년 12월30일, 김영삼 정부가 임기 종료 직전 사형수 23명 형을 집행한 게 마지막 기록이다. 한국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실질적 사형 폐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은 법상 사형 형벌 규정은 남아 있으나,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중단한 국가다.

2017년 사형폐지론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하며 사형제 폐지 운동 진영의 기대를 잠시 모았으나, 정부와 국회 차원의 입법적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8년 사형폐지를 위한 국제적 약속인 UN의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2선택의정서'(90개국 가입) 가입을 정부에 권고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15~19대 국회 동안 사형 폐지 관련 법안이 꾸준히 발의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20대 국회에선 21대 총선을 6개월 앞두고 관련 법안이 한 차례 발의됐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아직 없다. 다만 법무부는 2020년 11월 제75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일시적 유예) 결의안에 처음으로 찬성했다.

유럽국가, 1개국 빼고 모두 사형제 폐지... 미국 남부도 폐지 움직임 시작돼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주한 유럽연합(EU) 대사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에 참관 하고 있다.
ⓒ 이희훈
 
사형제 폐지 국가는 10년 전보다 대폭 늘었다. 매년 전 세계 사형현황 보고서를 내는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0년 96개 국가에서 2021년 108개국으로 증가했다. 실질적 폐지 국가까지 포함하면 전체 144개국으로 206개국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2021년 사형제 집행 국가는 18개국으로 역대 가장 적은 수치를 보인다. 2010년 23개국보다 5개국 더 줄었다. 사형제 유지 국가도 2010년 58개국에서 2021년 55개국으로 다소 줄었다.

앰네스티가 집계한 2021년 사형 집행 건수 역시, 2010년 이래 두 번째로 낮다. 총 집행건수는 2015년(1634명)부터 본격적인 감소 추세로 들어서 2019년 657명, 2020년 483명까지 줄었고, 2021년엔 이보다 조금 증가한 579명을 기록했다. 이중 90% 가량이 중국, 이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등 5개국에서 이뤄졌다. 다만 앰네스티는 중국 등 국가가 사형에 관한 사항을 비공개로 취급하고 있어 일부 통계는 추정치라고 덧붙였다.

유럽 대륙은 벨라루스를 뺀 모든 국가가 사형폐지국(실질적 폐지 포함)이 됐다. 지난해 12월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형벌을 폐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아르메니아도 지난해 'UN 사형폐지를 위한 시민적 권리 제2선택의정서'에 가입했다. 러시아 연방은 1999년 이래로, 타지키스탄은 2004년 이래로 사형 집행을 계속 유예하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 대륙에선 시에라리온, 가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국가가 사형제 폐지에 동참했다. 시에라리온 의회는 자국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의회도 사형제 폐지를 위한 형법 개정안 등의 법리적 검토를 마쳤다. 가나는 형법, 군법 등에서 사형 형벌 폐지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주는 남부지역 최초로 사형제를 폐지했다. 이로써 총 50개 주 중 23개 주에서 사형이 금지됐다. 남부의 오하이오주는 3년 연속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연방 차원의 사형 집행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미국의 사형 집행 건수는 11명으로 1988년 이후 최저 건수를 기록했다.

쌓이는 연구... "'확실한 처벌'이 범죄 예방"

사형제를 폐지한 나라들은 "법으로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고 선언한다. 인간의 생명권은 헌법으로도 박탈할 수 없는 존엄성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헌법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최고 이념으로 규정해놓고, 국가가 다시 '조건부'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사형제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사형제 실시가 흉악 범죄를 억제한다는 실증적 근거는 충분치 않다. 캐나다는 1975년 사형제를 폐지하기 직전 인구 10만명당 살인율이 3.09명이었으나, 1980년대 2.41명, 2014년엔 1.44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한 후 증감을 거듭하다 2020년엔 1.97명을 기록했다.

국내 사형수 중 32명을 심층 인터뷰해 2019년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 보고서를 낸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사형수들이 처벌 수위를 인식하면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며, 범죄 억제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거운 처벌이 아니라 '확실한 처벌'이라고 밝혀왔다. 또 강력범죄의 발생 원인은 복잡하고 다양해, 사형제와 강력범죄 발생 간의 상관관계조차 입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남는 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관점의 응보다. 사형폐지국은 국가가 피해자와 국민의 분노 감정을 해소할 대리자가 될 수는 없으며 현대 형벌제도는 응보가 아니라 범죄 예방을 위한 교화·교육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데다, '살인자를 사형한다 해도 피해가 회복되는 게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함무라비식의 고대 사회 규율 또한 복수의 최대한을 정한 것이고, 같은 방식이 아니라 같은 양의 손해를 범죄자에게 묻기도 했다.

여론에 기대지 않고 결단을 택한 나라도 있다. 프랑스는 1981년 사형제 폐지 당시 국민의 60% 이상이 사형제 폐지에 반대했으나, 당대 집권자의 정치적 결단으로 강행했다. 최근 한국에선 세분화된 조사를 통해 '대체형벌이 있다면 사형제 폐지를 찬성한다'는 여론이 확인되기도 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단순히 사형제 폐지 동의를 묻는 질문엔 20.3%만 찬성했으나 대체 형벌 마련을 전제하고 묻자 66.9%가 사형제 폐지에 찬성했다.

재판관 아홉 중 다섯 폐지 동의 언급... 결과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앞두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판사들이 입장하고 있다.
ⓒ 이희훈
 
국내 사형폐지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3년이 지났다. 1989년 서울구치소 교화협의회 소속 종교인들과 자원봉사 교화위원 등이 설립한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시초다. 1996년 11월 국내 첫 사형제 헌법소원으로 널리 알려진 '95헌바1' 사건은 이 협의회가 청구했다. 당시 재판관 7명이 합헌, 2명이 위헌으로 판단해 최종 합헌 결정이 났다.

2010년 두 번째 위헌법률심판(2008헌가23)은 한 사형수가 항소 과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1995년 '불광동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 피고인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선고를 받고 다시 파기환송심을 거쳐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 피고인의 항소심을 천주교 인권위원회가 지원했다. 8년 간의 변론을 맡은 이가 당시 천주교 인권위원장이었던 김형태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2010년 위헌법률심판과 이번 위헌법률심판 모두 대리인으로 참가해 헌법소원 과정을 주도했다.

두 번째 위헌법률심판은 '합헌 5 : 위헌 4'로 판단이 나뉘어 최종 합헌 결정이 났다. 법률의 위헌 결정은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 6명의 선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2019년 세 번째 위헌법률심판이 청구됐다. 1996년, 2010년 각 사건 대응에 참여했던 이들이 대거 함께 했다. 

'2대 7'이었던 판단 차이가 4년 후 '4대 5'로 변했고, 그 뒤부터 지금까지 12년이 지났다. 사형제 폐지 운동 진영이 지금을 폐지의 기회라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명시적이거나 조건부로 사형제 폐지 동의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유보적이거나 반대 취지 입장을 밝힌 재판관은 김기영·이선애·이영진·이종석 재판관 등 넷이다.

이번 심판을 주도하는 사형제도폐지 종교·인권·시민단체연석회의와 사형제폐지범종교인연합은 14일, 공개변론 직전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에서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공개 변론을 실시한 헌재는 관련해 올해 안으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련 기사: [포토] "사형제도 위헌" 종교계, 공개변론 앞 위헌 호소 http://omn.kr/1ztk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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