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자폐증 변호사가 <우영우> 독백을 보고 내놓은 반응
[이주연 기자]
세 살, 그녀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와 같은 단어조차 말하지 않았고, 단순히 반향언어(남의 말을 그대로 흉내는 것)만 구사했다고 한다. 선 안쪽에 색칠을 할 수 없었고 컵에 음료를 따라 마실 수 없었다. 또래와의 상호작용도 없었다고 한다. 부모는 그녀를 의사에게 데려갔고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녀는 자폐증이었다.
▲ 2019년 1월 헤일리 모스가 변호사 선서를 하고 있다. 그녀는 미국 플로리다주 최초의 자폐증 변호사가 됐다. |
ⓒ 헤일리 모스 제공 |
연일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 얘기가 아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최초의 자폐증 변호사가 된 헤일리 모스(Haley Moss)의 일화다. 모스는 말을 하지 못했을 때에도 100피스 퍼즐을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언어 치료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시작했으며, 정규 수업에도 무리없이 참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우영우처럼 '사진으로 찍은 듯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세리 모스(Sherry Moss)는 모스에게 수차례 "다른 것은 나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창 해리포터 시리즈에 빠져있던 아홉 살 딸에게 어머니는 그녀의 자폐증을 설명하며 말했다.
"너는 해리포터처럼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단다. 해리는 번개 흉터 때문에 다른 마법사들과 어울리진 않지. 너도 마찬가지야. 단지 다를 뿐이고, 다른 것은 비범할 수 있단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모스는 "어린시절 스스로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히려 "'난 멋지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절 불쌍히 여기지 말아주세요, 저는 정말로 제가 자랑스럽거든요"
열세 살, 모스는 미국 자폐증 학회에서 첫 대중 연설을 한 후 '나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을 얼마나 격려할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두 권의 책,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대학생이 알려주는 신입생 생존 가이드>를 썼다. 그리고 그녀는, '자폐증의 얼굴'이 되고자 결심했다.
"여러분은 '자폐증'이라는 단어가 제 정체성에 낙인을 찍었다고 해서 저를 불쌍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자폐증의 부정적인 관념보다 훨씬 강하고요, 그리고 이제 정말로 그게 자랑스럽거든요."
- 2014년 9월 22일 헤일리 모스가 Elitedaily에 기고한 글 <달라도 괜찮아> 중
그녀는 대중 연설에서 유창하게 말할 수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뉘앙스'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 눈을 굴리면 당신의 말을 지루해하고 있는 것이니, 대화 주제를 바꿔야 함"을 학습을 통해 알게됐다고 한다.
처음 모스가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 다른 부모들은 전염성이 있다고 판단해 자신의 아이들을 모스와 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는 사람을 만났고, '전문 변호사 교류 행사'에서 연방 판사는 모스가 '당연히' 로스쿨 학생일 것이라 생각하고 학교 생활은 어떻냐고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로스쿨 2학년 때, 인턴 자리를 알아보며 "적극적으로 다양한 지원자를 찾는다고 주장하는 거의 모든 고용주들이 채용 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2019년 1월, 미국 플로리다주 최초의 자폐증 변호사가 되었다. 로펌에도 들어가 반테러 및 의료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사진에 가까운 기억력'은 사건과 관련된 이름, 장소, 특이점 등 수 백만개 문서에 흩어져있는 정보를 이을 수 있는 능력으로 발현됐다. 2020년 그녀는 로펌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시작한 상태다. 신경 다양성(자폐나 난독 등을 잘못된 두뇌 기능의 발현이 아니라 정상 범주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성이라고 보는) 및 미국 장애인법과 관련된 직장 정책 컨설팅과 대중 연설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까지가 외신을 통해 파악한 헤일리 모스의 현재다. 실존하는 '우영우'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녀는 곧장 답장을 주었다. 다음은 지난 14일 헤일리 모스와 진행한 인터뷰 일문일답 전문이다.
▲ 헤일리 모스(Haley Moss)는 2019년 1월 미국 플로리다 최초의 자폐증 변호사가 되었다. |
ⓒ 헤일리 모스 제공 |
- 자폐증 진단 후 부모님이 의사로부터 '당신의 딸은 취업도 어렵고, 운전면허를 얻기도 어렵고, 친구도 사귀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말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어요. 만약 당신이 그 의사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요.
"자폐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잠재력이 무엇인지 그들은 알지 못해요. 저는 1997년 자폐증 진단을 받았고, (당시) 자폐증에 대한 사회의 이해는 오늘날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예측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의사의 진단이 전적으로 부적절했다고 봅니다."
- 아홉 살 때 부모님이 당신에게 자폐증에 대해 얘기해주며 '해리포터의 흉터'의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홉 살 때 부모님은 제게 자폐증에 대해 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때 저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푹 빠졌있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들은 '너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고, 해리처럼 (다른 사람과) 다르지만 다른 것은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단지 다를 뿐이고, 다른 것은 비범할 수 있다'고요. 이후 우리는 제가 하기 힘들어하는 것(잘하지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이는 자폐증 환자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저는 어린시절에 스스로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난 멋지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 당신이 부모님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국의 자폐아 비율은 38명 중 1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 자폐아 부모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자폐증 환자들은 '정상의 실패한 버전'이 아닙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자녀를 과소평가 하지도 마세요. 자폐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강점과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그런 재능에 관심을 갖고 격려하고 육성하여 '우리가 우리로서 있게 하는 것'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 당신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주변에 많은 지지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의 주변에는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당신의 경우, 부모님을 제외하고 누가 당신의 지지자였다고 말할 수 있나.
"나를 믿어준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저의 삶을 되돌아 봤을 때 매우 축복 받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가족, 선생님, 친구, 직장 내 동료들은 제 자폐증 진단을 넘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바라봐 주었습니다."
"플로리다 최초 자폐증 변호사, 영광... 그러나 이게 뉴스거리가 돼서는 안돼"
- 변호사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가 '매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나요.
"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고, 제가 받은 도움을 돌려주도록 배워왔습니다. 자폐증이나 그 유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저와 같은 장애물을 직면하지 않도록 그 길이 더 쉽고 접근가능해졌으면 합니다. 변호사들은 사회 내에서 많은 힘과 특권을 갖고 있죠. 그들은 법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옹호할 수 있으며, 진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빌런'이 아니기도 합니다) 로스쿨 졸업한 후 다른 장애를 가진 변호사들을 만나고 나니, 제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의뢰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나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대변될 수 있다'고 느끼는 게 얼마나 필요한지 더 확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 언론 인터뷰에서, 플로리다 최초의 자폐증 변호사가 된 것에 대해 '매우 영광이지만, 내 이야기가 뉴스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우리 사회 어디에나 속해 있습니다."
- '사진으로 찍은 듯한 기억력'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됐을 거 같은데요.
"좋은 기억력을 가진 것은 판례법을 떠올리고, 사실-사람-장소의 다른 부분들을 연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제가 변호사로서 처음 맡은 건 테러방지업무였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다른 정보들을 연결하고 세부 사항들을 즉시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유익했습니다."
- 2020년 로펌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잠재력을 제가 갖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 당신이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 '나처럼 신경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면, 기업은 앞서갈 수 있다'가 기억에 남는데요. 아직도 편견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 특히 채용 담당자들에게 어떤 점에서 이익인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 ENA |
- 현재 한국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여성 변호사가 활약을 펼치는 드라마가 큰 인기입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현재 한국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없는데요. 당신 같은 변호사가 한국에서 일할 수 있으려면 어떤 변화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전 세계에 자폐증 여성 변호사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직장에서 특히 상대의 약점을 찾는 법률가들에게는 자폐증에 대한 편향이 있어서 공개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돼요. 이 상황에서, 우리와 이미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완전히 포용하고 환영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이상하다'거나 사회적인 이해가 떨어진다고 생각할 겁니다. 다르게 대우 받거나 일할 능력이 떨어진다고 단정짓지 말고, 자폐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드는 것,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다음은 드라마 <우영우>의 유명한 독백의 한 부분인데, 이런 현실에 살고 있는 한국의 자폐증 환자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정말 흥미로운 독백입니다. 자폐증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지난 80년 동안 확실히 발전하고 변화해 왔습니다. 사회가 당신을 망가진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폐증으로 사는 것은 때때로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 당신도 사랑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모든 장애인들은 지원, 존경,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살아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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