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식량·에너지·의약품에 활용하는 야생 생물..무려 5만 종
지구 상에는 1000만 종이 넘는 생물 종이 살고 있는데, 이 중에서 인류가 식량·에너지·의약품을 얻기 위해 활용하는 야생 생물은 몇 종이나 될까.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인류가 이용하는 야생 생물은 약 5만 종에 이른다. 이는 농작물이나 가축을 제외한 것으로 사냥·어업·채집을 통해 거둬들이는 육지 동물, 바다·담수 물고기, 약초와 버섯 등이 포함된 숫자다.
세계 인류의 5명 가운데 1명꼴인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야생 생물에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독립적인 국제기구인 생물 다양성 과학기구(IPBES)가 최근 승인한 '다양한 가치 및 자연 가치 평가 보고서'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1만3000개 이상의 참고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됐는데, IPBES가 공개한 '정책 입안자를 위한 요약본'에는 지구촌 생물 다양성 실태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야생종 이용은 식량 안보와도 직결
전 세계 빈곤층의 약 70%가 야생 생물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24억 명이 취사용 연료로 땔감을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 8억 8000만 명이 땔감을 얻기 위해 벌목하거나 숯을 생산하고 있다.
물고기를 잡고 조개를 줍는 소규모 어업에 종사하는 인도도 1억 명이 넘는다.
야생 생물의 가장 큰 용도는 식량이다. 인류가 이용하는 야생 생물 종 가운데 20% 이상이 식용이기 때문에 식량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업의 경우 연간 9000만 톤의 어획량을 보이는데, 약 6000만 톤은 인류가 직접 소비하고, 나머지는 수산양식이나 축산업에서 사료로 이용한다. 사냥을 포함한 육상 동물 포획 역시 개도국 주민들의 식량 안보에 기여한다.
자연 생태계에는 부담으로 작용
야생 포유동물 1341종과 다양한 조류가 사냥으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다.
남획으로 인해 지난 50년 동안 상어와 가오리의 멸종 위험이 증가했다. 최근 1250종의 상어·가오리 종 가운데 1199종을 조사한 결과, 449종(37.5%)이 멸종 위기에 처한 것으로 평가됐다.
상어와 가오리는 99%가 공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포획(부수 어획, 혼획)을 통해 잡히지만, 그대로 식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상어와 가오리뿐만 아니라 바다거북, 바닷새, 해양 포유류 등도 혼획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보고서는 "특정 종이나 개체 또는 특정 속성(큰 몸집이나 큰 뿔)을 가진 개체군에 대한 선택적 사냥은 생태계 구조와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 개체군의 유전 구조와 영양 상태, 종 분포를 변화시킬 수 있고, 생태계 기능까지 바꿀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거래 연간 최대 1990억 달러 규모
애완동물로 거래하기 위해 포획하는 것도 야생 동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적으로 1000종 이상의 조류와 파충류, 어류, 포유류가 합법적 또는 불법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애완동물로 거래되는 종의 가치는 야생종의 총 거래의 1% 미만이지만, 그래도 거래되는 규모는 무시 못 할 수준이다. 1980~2015년 사이 세계적으로 살아있는 앵무새 약 1200만 마리가 국제적으로 거래됐다.
야생종의 불법 거래 규모는 연간 690억~1990억 달러(90조~264조 원)로 추정된다.
전쟁이나 무력 충돌도 야생 생물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야생 생물 관리 제도를 붕괴시키기 때문이고, 군대에 의한 종의 과잉 착취는 분쟁을 겪고 있는 많은 지역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야생 생물 종의 이용은 인수공통 전염병을 가져올 수도 있다. 야생종 숙주에서 가축이나 인간에게 새로운 혹은 알려진 병원체가 옮겨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의사 결정에 다양한 사회 수준의 여러 부문이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거버넌스(원 헬스)는 야생 생물 종 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수공통 전염병의 위험을 제한하고 긍정적인 생태학적 및 사회적 결과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태관광 경제 효과 적지 않다
특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 19) 대유행 이전에는 전 세계 보호구역 방문객이 연간 80억 명에 이르고 이를 통한 경제적 이익도 연간 6000억 달러(약 800조 원)에 이르렀다.
보고서는 "향후 기후변화는 야생종 분포에서도 다양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 전 세계 해양에서 생물량(biomass)이 감소하고 어획량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해양 생물 종이 극지방을 향해 이동한다면 중위도에서 고위도 해양에서는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전 세계 물고기 수요는 21세기 중반까지 거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야생식물이나 버섯 등에 대한 수요도 대체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목재 기반 바이오에너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기후 변화로 인한 벌목과 나무의 폐사 증가로 인해 전 세계 산림이 지속해서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속가능한 이용, 공평한 이익 분배로
하지만, 새 기술은 생물 자원을 추출하는 관행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야생종 시장에 대한 접근 측면에서 소규모 생산자·수확자에게 더욱 불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역 공동체에서 해당 종이 살아가는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동기를 낮출 수도 있다.
보고서는 "공정성과 권리·이익의 공평한 분배가 야생종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승인된 전체 보고서는 오는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 즈음해 공개될 예정이다. 당사국총회에서 대표자들은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한 새로운 목표와 지표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편, 보고서를 낸 IPBES는 한국과도 관련이 깊다. 지난 2010년 6월 부산에서 유엔 환경계획(UNEP)과 환경부 주관으로 열린 '제3회 생물 다양성 및 생태계 서비스에 관한 정부 간 회의'에서 IPBES 구성이 제안됐고 2012년에 설립됐다. UNEP의 지원을 받지만, 유엔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정부 간 기구로, 독일 본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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