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서 설거지..샤워도 못한다" 대학 청소노동자 절규
50대 여성 김미현(가명)씨의 일과는 새벽 4시 50분 고려대학교 교문을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15일 오후 2시 30분쯤 고려대 학생회관 5층에서 만난 김씨는 “이 학교 청소노동자로 15년간 일해 왔다고 말했다. 정규 출근 시간은 오전 6시지만 학생이 많으면 청소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김씨와 동료들은 매일 5시 10분까지 출근해 옷을 갈아입는다. 이후 6층짜리 학생회관 건물을 2개 층씩 3명이 나눠 청소한다.
밤사이 쌓인 쓰레기를 모아 1층 쓰레기장에 내놓는 게 근무의 시작이다. 층마다 큰 원형 쓰레기통 4개가 있다. 학기 중에는 큰 쓰레기봉투가 매일 25~30개가 나와 쓰레기통을 비우는 데만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김씨의 머리는 핀으로 바짝 틀어 올려져 있었다. 땀이 나면 금세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다.
화장실 청소까지 마치면 오전 8시 45분이 된다. 오전 9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아침 식사 및 휴식 시간이다. 김씨는 “보통 집에서 떡이나 빵을 가져와 요기를 한다”면서 “점심은 12시부터 1시까지인데 휴게실에서 집에서 싸 온 밥과 반찬을 데워 먹는다”고 했다. 이 시간을 제외하고 김씨는 쉼 없이 움직인다. 대걸레로 바닥과 계단을 닦고 휴지가 떨어져 있진 않은지, 바닥에 물이 고여 있지는 않은지 수시로 확인하면서 건물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다.
걸핏하면 술에 취해 화장실이며 복도에 흔적을 남기는 학생들 뒤처리가 가장 힘들다는 그는 “그래도 오래 봐 왔던 학생들에게 김치라도 챙겨주면서 친하게 지낼 때, 졸업생들이 동아리방에 찾아온 김에 나에게 알은체할 때 제일 기분이 좋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씨가 쓰는 휴게실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서다. 폭염이 이어지던 2018년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김씨와 동료 2명이 10만원씩을 갹출해 아는 전파상에 30만원을 주고 중고 에어컨을 설치했다. 복도엔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아 땀을 식힐 곳이 필요했다. 회사에 에어컨 설치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샤워실 사용도 그림의 떡이다. 김씨가 일하는 학생회관엔 학생들과 함께 쓰는 샤워장이 층마다 한 칸씩 있는데, 대부분 온수기나 수전이 고장 난 상태라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고려대에 샤워실이 갖춰진 건물은 학생회관과 경영본관, 교양관 등 일부다. 캠퍼스에서 일하는 약 300명의 청소노동자가 쓰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김씨는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수건으로 땀을 닦고 말린 뒤 학교를 나서거나 화장실의 마대함에서 수건에 물을 묻혀 땀을 훔친다”면서 “그러려니 하고 사는데도 너무 덥다. 샤워실과 휴게시설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를 포함한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3월부터 처우 개선을 위해 시위에 나서고 있다. 시급 440원 인상과 샤워시설 설치, 휴게시설 개선이 주 요구사항이다. 지난 6일부터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가 본관 점거 농성에 나섰다.
함모(62)씨가 일하는 국제관 상황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이 건물에선 청소노동자 12명이 일한다. 함씨는 “일하고 나면 속옷까지 흠뻑 젖는데 샤워실이 없으니 휴게실에서 옷을 벗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매일 아침 집에서 수건과 새 속옷을 가지고 온다”고 말했다. 임모(59)씨는 “휴게실이 있지만 12명이 쓰기에는 공간이 부족해 대부분 각자 일하는 층에서 옷을 갈아입고 쉰다. 휴게시설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씨는 화장실 앞 수도 계량기함에 가방과 옷, 물통 등 짐을 넣어 두고 여자장애인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휴게실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면 설거지도 여자장애인 화장실에서 한다.
재학생이 고소한 청소노동자, 졸업생이 법률 대리
지난 5월 연세대 재학생 3명은 교내에서 집회를 벌인 청소노동자들의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며 김현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 분회장 등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고소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금, 정신과 진료비 등을 명목으로 630여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졸업생들이 나섰다. 법무법인 도담의 김남주 변호사를 비롯한 연세대 출신 법조인 26명은 연세대 노동자들을 법률 대리하기로 했다.
김 변호사는 “열악한 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는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문제이고 사람에 대한 존중의 문제”라며 “시설 소유자인 학교가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응급피임약 먹고, 하혈했는데 "임신하셨네요"…대체 무슨일
- 집 절반 떼줬더니 "월세도 달라"는 딸, 증여 취소 안되나요
- "클럽 갔다 피 토해" 공포의 강남역병…'의심되는 놈' 찾았다
- 2년만에 매출 50억→500억…"미쳤네" 말 나온 마뗑킴의 비밀
- "우영우가 판타지? 정명석이 판타지죠" 전문가 뼈있는 일침
- "의붓딸과 두번째 아이 가졌다"…머스크 아버지의 고백
- 박한이 0.065% 박순애 0.251%…이 4배가 민심과 윤심 간극
- '순금이 아빠' 홍준표, 복날 개고기 식용 묻자 "신도 아니고…"
- 1200년만에 처음...'돌하르방'이 산티아고 순례길 간 까닭
- 고교생에 마약 먹여 성매매 강요…반신불수 만든 20대 결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