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비주얼 아트'.. 태싯그룹이 만드는 낯선 예술 장르

장지영 2022. 7. 16.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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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싯그룹 장재호·가재발 인터뷰
태싯그룹의 가재발(왼쪽)과 장재호가 지난 7일 서울 용산구의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태싯그룹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사운드,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가 결합된 ‘오디오비주얼 아트’를 선보여 왔다. 이한결 기자


미국 전위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1952년)는 연주자가 피아노 앞에서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퇴장하는 작품이다. 3악장으로 된 악보에는 음표 하나 없이 이탈리아어로 된 음악 용어 ‘TACET’(타켓·침묵)이라고만 적혀 있다. 침묵의 시간, 객석의 소음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음악이 되는 ‘우연성’을 도입한 이 작품은 클래식 음악의 전통적인 예술개념을 거부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테크놀로지과 교수와 대학원생으로 만난 장재호(53)와 가재발(본명 이진원·52)은 ‘4분 33초’처럼 21세기의 새로운 예술을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2008년 태싯그룹을 결성했다. 태싯(TACIT)은 타켓의 영어 표기다. 태싯그룹은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사운드,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가 결합된 ‘오디오비주얼 아트’를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스타일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대중적이진 않지만 태싯그룹은 이미 국내외 현대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15~16일에는 세종문화회관의 컨템포러리 시즌 ‘싱크넥스트 22’의 하나로 ‘ㅋㅋ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태싯그룹을 최근 만나 작품세계를 들어봤다.

“케이지의 ‘4분 33초’는 음악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작품입니다. 우리도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으로 태싯그룹이란 이름을 지었어요. 케이지가 속한 플럭서스 운동처럼 우리도 알고리즘 작곡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 또는 학파를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가재발)

1960~70년대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이었던 플럭서스는 예술을 박제화하는 전통적 예술 개념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케이지를 비롯해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등이 대표적 아티스트다. 장재호는 “처음 태싯그룹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오디오비주얼 아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개념을 이해한다. 오디오비주얼 아트를 추구하는 예술가들도 늘어나 이제 학파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태싯그룹이 공연중인 ‘드러밍’(Drumming)의 한 장면. 무대 위 사운드의 시각화가 뒤편 스크린에서 이뤄진다. 태싯그룹 제공


이들이 음악을 만드는 작업은 오선지에 음표를 넣는 작곡이 아니라 컴퓨터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일이다. 컴퓨터 등 각종 전자 장비가 이들의 악기인 셈이다. 태싯그룹이 무대 위에서 사운드를 들려주는 동안 뒤편 스크린에는 사운드의 시각화가 동시에 이뤄진다. 예를 들어 한글 음소에 음가를 부여해 만든 ‘훈민정악’이나 테트리스 게임 블록과 함께 음악이 만들어지는 ‘게임오버’ 등이 대표적이다. 태싯의 이런 작품들을 통해 관객은 사운드와 비주얼이 연결되는 방식을 직접 보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한 알고리즘 아트를 설명할 때 제가 비유로 드는 게 처마에 달려 있는 풍경입니다. 바람에 따라 풍경이 다양한 소리를 내잖아요. 태싯그룹이 하는 일이 풍경을 만들어 처마에 매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시스템을 만드는 거죠. 결과물은 실시간성, 즉흥성, 우연성의 특징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 예술은 대체로 결과가 중요하지만 저희가 추구하는 예술은 과정이나 방법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장재호)

수학이나 공학에 가까운 작업답게 태싯그룹의 두 멤버는 컴퓨터에 친숙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음악적 배경은 매우 다르다. 서울대 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전자음악을 전공한 장재호가 아카데믹한 작업을 해왔다면, 미국 뉴욕에서 엔지니어로 음악활동을 시작해 귀국 후 대중음악계에서 테크노 뮤지션으로 활약한 가재발은 주로 상업적인 작업을 했다. 가재발의 경우 한국인 최초로 영국 테크노 차트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BTS의 아버지’ 방시혁과 함께 댄스음악 프로젝트 그룹 바나나걸을 결성해 클럽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유학 직후엔 매우 실험적인 전자음악에 몰두했습니다. 저 자신은 재밌었지만 사람들은 너무 어려워했어요. 아카데믹한 세계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걸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할 때 가재발을 만나 태싯을 결성했어요. 디지털 기술의 변화와 다양한 음악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작품세계가 달라지게 됐습니다.”(장재호)

태싯그룹의 ‘모르스 쿵쿵’의 한 장면. 태싯그룹 제공


“저는 바나나걸의 ‘엉덩이’나 박지윤의 ‘성인식’ 리믹스 버전을 만드는 등 상업적인 대중음악 분야에서 테크노 음악을 했습니다. 작곡 편곡 리믹스 디제잉 등으로 바빴지만 늘 새로운 것에 목말랐던 거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아카데믹한 사운드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뒤늦게 학교에 갔다가 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가재발)

태싯그룹은 국내에서 낯설었던 사운드 아트 및 멀티미디어 퍼포먼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사운드와 비주얼이 융합된 이들의 작업은 공연장과 미술관을 오가며 새로운 예술장르로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 다만 대중과 소통이라는 점에선 아쉬움이 있다. 전통적 예술에 친숙한 사람들에겐 이들의 작업이 난해하게 느껴진다. 미술 장르에 비해 파격적인 실험이 어렵고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는 공연예술 분야에서 태싯그룹의 작업은 더욱 난감하게 다가온다.

가재발은 “저희 작업에 대해선 난해하다는 것보다 생소하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생소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뿐 실제로는 게임처럼 유희적으로 풀어내는 등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전자기기에 익숙한 젊은 관객의 경우 저희 공연에서 웃거나 환호하는 등 뜨겁게 반응한다. 저희의 컨셉트를 이해하면 비슷한 스타일처럼 보이는 작품들 가운데 차이를 알 수 있다”며 “최근엔 태싯그룹 작업에 대한 마니아 관객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갤러리 P21에서 열린 태싯그룹의 개인전 ‘인비트윈’(In-bitween). LED 전구를 사용해 만든 ‘헐’이 보인다. 태싯그룹 제공


태싯그룹은 2014년부터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WeSA’(위사·We are sound artist) 페스티벌을 개최해 왔다. 아카데미와 레지던시 사업을 통해 신인 오디오비주얼 아티스트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난해 12월 태싯그룹의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 작품 ‘CRYPTO 헐헐헐’이 4200만원에 팔리는 등 근래 NFT 열풍 속에 이들의 디지털 작업이 각광받는 것은 기대 이상의 소득이다.

장재호는 “태싯그룹은 WeSA 등을 통해 오디오비주얼 아트의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우리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우리 작품에 대한 비평이 별로 없다는 점”이라며 “태싯그룹의 작품에 여러 장르가 융합된 만큼 종합적으로 보고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싯그룹은 이번에 선보인 ‘ㅋㅋ프로젝트’에서 ‘훈민정악’ ‘게임오버’ ‘Morse ㅋung ㅋung’ 등 자신들의 대표작을 친절하게 해설하며 공연하고 있다. 태싯그룹의 작업은 글로는 충분히 전달하기 어려운 만큼 직접 라이브로 보는 게 좋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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