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두고 4시간 31분간 격론.. "생명, 절대적 가치" vs. "응보적 정의"
[김종훈, 이희훈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앞두고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판사들이 입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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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세 번째 사형제 위헌 여부 판단을 앞두고 사형제 폐지를 요구하는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과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법무부(장관) 대리인이 장장 4시간 31분에 걸쳐 격론을 펼치며 팽팽하게 맞섰다.
"생명은 절대적 가치라서 법적평가를 통해 박탈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형이 집행된 경우 후일 오판임이 판명되어도 시정할 방법이 없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일치된 과학적 연구결과도 없다." -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
"사형은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엄중한 제재를 통해 '응보(응징과 보복)적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적 차원의 심리적 '위하(위협)'를 통해 범죄 일반 예방을 한다." - 이해관계인 법무부장관 대리인
양측은 14일 2시부터 오후 6시 31분까지 271분간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논쟁인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박탈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따졌다. 형법 41조 1호에는 '사형'이 형의 한 종류로 규정돼 있고 형법 250조 2항에는 '직계존속을 살해하면 사형 등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은 2018년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인 윤아무개씨다. 그는 1심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윤씨와 함께 2019년 2월 사형제 헌법소원을 냈다. 이후 윤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이해관계인은 법무부장관이다.
앞서 헌재는 지난 1996년에는 재판관 7대2, 2010년에는 재판관 5대4의 의견으로 '사형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이번 공개 변론을 실시한 뒤 평의 등 심리를 거쳐 선고 기일을 잡을 예정이다. 사형제가 위헌으로 결정되기 위해서는 재판관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110개국 사형제 폐지... 국가가 국민 생명 관여할 수 있나?" 청구인 대리인은 "전 세계 110개 나라에서 이미 법률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했다"면서 "사형이라는 것이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느냐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자연이 부여한 생명에 대해 국가가 관여할 수 있나. 대전제부터 따져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리인은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강조했다.
또 대리인은 "사형제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 등에 의해서도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함으로써 사회를 보호한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서 "사형은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로지 다른 사람의 병행 방지라는 일반예방이나 사회방위만을 지향하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라고 밝혔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사형제도 존치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법감정(응보)을 제시하지만 사형제도에 관한 문제는 이성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면서 "국가가 개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국가의 본질을 반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허 교수는 사형제도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흉악범을 사형에 처하는 것에 찬성하냐라는 심판자적 의견을 물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행위를 했을 때 사형을 감수할 것인가라는 당사자적 의견을 물어야 올바른 조사"라고 덧붙였다.
▲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오른쪽부터) 김형태, 박수진, 좌세준, 박은하 변호사가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을 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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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인인 법무부장관 측 대리인들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 중에는 미국과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포함돼 있다"면서 "사형제를 존치하는 것만으로 그 나라가 후진적이거나 야만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형은 국민 일반에 대한 심리적 위하를 통해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이를 집행함으로써 특수한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해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리인은 "형벌의 본지인 응보라는 측면에서 사형은 생명을 잔혹한 방법으로 해하는 등 인류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그 잘못을 따른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정의의 발로"라고 강조했다.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응보적 정의관은 사형을 정당화시키는 가장 뿌리 깊은 논거"라면서 "근대 형사법 체계에서 형사처벌의 목적이 보복이 아닌 교화에 있는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응보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국민의 법 감정은 여전히 응보적 정의를 요청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도 없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공개변론에서 이선애 헌법재판관은 "(사형제) 위헌 결정이 내려질 경우 사형 확정 수감자들이 재심을 청구하면 구금상태가 적법하게 유지될 수 있냐"면서 "재심을 청구하면 (사형미결수가) 석방돼 사회로 나오는 것 아니냐"라고 청구인과 이해관계인 측을 향해 따져 물었다.
청구인 대리인은 "사형이 이미 무기징역보다 심한 형벌 상태이기 때문에 구금 상태는 유지돼야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해관계인 대리인은 "사회로 석방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형집행과 관련돼 있는데 만약 형조항이 무효가 된다고 하면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해도 당장 형사 소송법 체제에서는 구금할 근거가 없을 거라고 본다"라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는 1949년부터 1997년 12월30일까지 모두 920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이들 중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위반 등 사상범은 250명에 달한다. 김영삼 정권 시절인 1997년 12월 30일을 기해 우리나라에서 사형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복역 중인 사형 미결수는 59명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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