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대신 선택한 이것..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영아씨의 채소밭

임유진 2022. 7.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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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를 꿈꾸는 미호동 사람들] 영아씨의 '자연스러운' 넷제로 활동 이야기

[임유진 기자]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과 바람, 반짝이는 모래사장. 1981년 대청댐이 지어지기 전 대전 대덕구 미호동 풍경이다. 지금은 상수원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 이중규제 속에 있지만 여전히 작은 아름다움이 살아있다. 이곳 주민들은 미호동복지위원회를 만들어 '정다운마을쉼터'를 여는 등 공동체를 일구었고 지금은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이 그 노력을 받아안았다.

해유가 미호동에 미호동넷제로공판장을 만들고 넷제로장터를 열어 미호동 농산물과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등 넷제로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넷제로(Net Zero)는 온실가스의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해 순(Net)배출을 0(Zero)으로 만들자는 뜻이다. 기후위기 시대 희망의 씨앗을 심는 대전 미호동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 기자주
      
 영아씨가 기르는 슈퍼복분자
ⓒ 임유진
 
6월, 미호동 거리를 걷다 보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알알이 검붉은 열매가 맺혀 있는 오디나무다. 햇빛이 뜨거워 입에서는 연신 '덥다'는 말이 나오지만, 주렁주렁 맺힌 오디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그곳에 손길을 뻗다 보면 어느새 손끝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디나무도 그렇고, 복분자나무도 그렇고 번식력이 정말 강해요. 땅에 닿으면 바로 뿌리를 내리는 것만 같아요." 미호동에서 복분자와 오디 등을 기르는 조영아(76)씨의 말이다.

나무와 함께 뿌리내리다  
 
 조영아씨
ⓒ 임유진
   
영아씨는 2010년 남편의 고향 동네인 이곳 미호동에 왔다. 처음엔 할 수 없이 따라온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농사일도 전혀 모르고, 연고도 전혀 없는 미호동이 그에게는 꼭 갇혀 사는 기분을 주었다.

"저녁만 되면 거리가 컴컴해지고 암흑 같으니까 그게 무섭고. 또 버스도 얼마 없어서 어디 나가기도 어렵고. 몇 년 동안은 갇혀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어요."

그러던 그가 이곳에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땅에 직접 심은 나무가 싹이 나고 열매가 열리는 순간을 경험하면서부터다.

"2012년 즈음 호두, 오디, 복분자, 대추, 감나무 등을 사다 심었어요. 그중에서도 복분자, 오디가 번식력이 세더라고요. 나무 심은 자리 주위로 나무들이 퍼져나갔어요. 그걸 다시 한 줄로 가지런하게 정리하면서 나무들을 늘렸어요."

한번 땅에 뿌리내린 복분자나무는 7년 내지 8년동안 열매를 맺으며 산다. 한번 열매 맺은 자리는 잘라주고, 다음해 새순에서 또 새롭게 열매를 맺어낸다.

"복분자는 약을 치지 않아도 돼요. 병이 쉽게 생기지 않아요. 흙만 잘 돌봐주면 돼요."

첫 수확을 했을 때가 2013년. 영아씨는 세 살배기 손녀를 만나러 갈 때 복분자를 챙겨갔는데, 복분자 한 웅큼을 연신 집어먹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매해 6월 보름 동안 수확되는 복분자 양은 17~18kg 정도다. 가족과 지인에게 나눠주던 것 너머 이제는 동네에 현수막을 걸고 판매도 직접 한다. 미호동넷제로공판장이 생긴 이후에는 직접 담근 효소를 판매하고 있다 

"판매를 직접 하면서부터는 밭에 조금씩 더 가보게 돼요. 열매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도 해요."
 
 밤나무, 고사리밭을 걷고 있는 영아씨
ⓒ 임유진
영아씨가 미호동에서 새롭게 심은 또 다른 작물은 고사리다.

"다들 산에서 고사리를 캐는 것만 익숙하지, 밭에 심는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저희가 마을에서 처음 심었을 거예요. 고사리도 번식력이 정말 강해요. 약도 안 줘도 되고요."

영아씨는 오랫동안 농사 지으며 산 시어머니 김완득(96)씨의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채소밭 옆으로 과일 나무들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처음엔 농사일 하나도 못하고 집안 살림만 했었는데, 이제는 농사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실 돈을 벌고자 하면 한 가지 작물을 크게 심어야 하는데, 지금은 여러가지를 조금씩 심고 기르긴 해요.

얼마 전에는 한 동네 사는 미영씨에게 모종을 나눔받아 수세미도 새롭게 심었어요. 이렇게 하는 게 '돈이 안 되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먹거리를 스스로 재배한다는 생각으로 농사지어요. 무엇보다 여러 작물을 심고 그것이 자라나는 모습 보는 것이 재밌어요."
  
'자연스러운' 넷제로 활동 
 
 영아씨가 새롭게 기르기 시작한 수세미
ⓒ 임유진
   
땅에서 나무가 늘어나고 열매가 맺히는 동안, 갇혀 있는 기분을 주었던 동네가 이제는 '우리 동네'가 되었다. 그렇지만 올해 가뭄 탓에 복분자, 고사리를 비롯해 밭에 있는 모든 작물의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그가 기후위기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산불, 가뭄 등 자연재해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미호동넷제로공판장 교육을 통해 접했어요. 그 교육을 듣고 나서 뭐라도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영아씨는 지난해 지구온난화로 점점 가라앉는 남태평양 투발루를 다룬 <투발루에게 수영을 가르칠 걸 그랬어> 그림책을 가지고 미호동넷제로공판장에서 그림자극단 활동에 참여했다. 

"지금 손녀가 초등학생이 되었는데, 손녀도 기후위기를 주제로 연극을 하더라고요. 꿈이 환경활동가라서 그런지 채식도 실천하고 있어요. 저도 손녀에게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인형극을 했다는 얘기도 해주고, 지구 온도가 지금보다 1.5도가 높아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얘기를 했어요. 할머니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느껴요."
 
 양배추잎에 담은 쑥떡. 넷제로장터에서 미호동 주민이 판매하는 먹거리다.
ⓒ 임유진
미호동넷제로장터는 에너지전환해유 사회적협동조합과 미호동 주민들이 함께 미호동넷제로공판장 앞 마당에서 플라스틱 배출을 전혀 하지 않고, 채식을 기반으로 여는 농산물장터로 매달 넷째주 토요일 열리고 있다.
      
또 채식김밥이나 쑥떡을 연잎이나 칡잎, 양배추잎에 포장하는 방법을 새롭게 구상한다. 집에서 달력을 찢어 봉투를 만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회용기와 장바구니 가지고 방문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영아씨는 "우리가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넷제로공판장에서 기후위기 교육도 받고, 운영위원회 회의도 꾸준히 하면서 지구를 위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제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 같아요. 플라스틱 배출없이 채식을 기반으로 한 장터가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으니까요."

예전 같았으면 '유난스러운 행동이 되지 않을까' 염려하던 행동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됐다. 일상에서도 텀블러를 챙기는 것이 필수가 되었다.

"미호동에서의 넷제로 활동은 이제 시작 단계인 거잖아요. 저는 뭐든 함께 하고 싶어요. 활동을 하다 보면 젊어지는 기분도 들고 삶에 생기를 느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호동넷제로공판장도, 넷제로장터도 활성화되어서 더 많은 사람이 넷제로활동에 동참하는 길이 열리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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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에너지전환해유 블로그에도 게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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