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받던 나라서 공여국 된 한국, 식량위기 해소에 앞장 서길"
“한국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눈부신 모범사례(Shining example)’입니다. 원조 받던 나라에서 주요 공여국(구호 식량과 자금을 후원하는 나라)이 된 유일한 나라니까요. 굶주림의 고통을 알고, 이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한국이 이번 초유의 식량 위기 극복에 적극 나서 주길 바랍니다.”
방한(13~15일) 중인 데이비드 비즐리(65) WFP 사무총장이 1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더 플라자호텔에서 중앙일보를 만나 “식량 위기 극복에 특별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국이 개발도상국들의 롤 모델이 돼달라”고 호소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주(州) 하원의원을 역임한 그는 2017년 WFP 사무총장에 취임했다. 초유의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해 일본(11~13일)에 이어 한국을 찾아 김진표 국회의장,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 등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현재 식량 위기가 어느 정도 심각한가.
A : “한마디로 ‘2차대전 이후 최악’이다. 극심한 식량 위기에 빠진 인구가 전 세계 3억4500만 명,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인구는 8억2800만 명이다. 45개국 5000만 명은 기근 직전 상태다. 당장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면 대량 이주, 국가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수준이다. 즉각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Q : 이런 초유의 사태가 왜 생겼나.
A : “기후위기·코로나19로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고 생각한 순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4억 명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곳인데, 이게 끊기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거다. 러시아의 경제 제재로 비료 수출이 끊겼는데, 이는 아시아·아프리카 농작물의 작황에 2024년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장 올 가을, 내년 이 지역에 큰 식량난이 예상된다. WFP가 개입해야 할 식량 위기 지역이 빠르게 늘면서 필요한 예산 규모도 커지고 있다.”
Q : 한국에 방한한 것도 이 때문인가.
A : “맞다. 한국은 배고픔을 극복해낸 WFP의 위대한 파트너다. 이런 특별한 경험 때문에 단순히 지갑을 여는 데 그치지 않고, 개도국에 성공 모델을 제시하고 사회 시스템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나라다. WFP는 한국이 이들 나라의 본보기 역할을 맡아주길 기대한다.”(※한국은 58년 전인 1964년, WFP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에서 식량 지원을 받았다. 20년 만인 1984년에 원조를 조기졸업하고, 현재는 상위 15위의 공여국이 됐다.)
Q :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을 열고, 전쟁을 종식하는 게 궁극적 해결책 아닌가.
A : “유엔이 중재에 적극 나서고 있다. WFP도 하루빨리 인도주의적인 결론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항구를 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 세계 식량 위기에 대한 선전포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입장과 무관하게, 항구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WFP는 이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스리랑카·아프가니스탄·페루 등 식량 부족으로 국가 시스템 붕괴 직전에 놓인 급박한 나라가 너무 많다. WFP가 긴급 지원을 늘리고 적극 대처해 급한 불을 꺼야 한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건 자금(money)이다.”
Q : WFP는 현재 식량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A : “자금 부족으로, 배고픈 아이가 먹어야 할 음식을 줄여 죽기 직전의 아이에게 주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억만장자와 부유한 나라가 나서야 한다. 위기에 닥친 가난한 나라를 돕는 것이 결국 부유한 나라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지금의 식량 위기를 방치하면, 나중에 폭동‧정세불안‧난민 문제 등 국제사회가 떠안아야 할 리스크는 수천배가 된다. 미리 나서서 적극 돕는 것이 최선이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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