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시대 상황"..'노근리 사건' 유족들, 7년만 최종 패소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총격으로 수많은 피란민이 목숨을 잃은 ‘노근리 사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쟁 당시 혼란스런 상황에 비추어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노근리 사건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피해 유족들이 2015년 소송을 제기한 지 7년 만이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 부근에서 미군의 공중 폭격과 총격으로 주민 수백 명이 숨진 사건이다. 한미 양국은 1999년 10월부터 2000년 1월까지 노근리 사건을 공동조사해 미군의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우리 정부는 희생자 226명(사망자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해 63명), 유족 2240명을 공식 인정했다.
유족들은 1950년 한미 양국이 ‘피란민 통제 지침’을 공동 결정해, 한국 정부도 책임이 있고 미군 구성원이 대한민국 안에서 대한민국 정부 이외의 제3자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의 국가배상 책임을 규정한 주한미군민사법이 노근리 사건에도 유추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며 지난 2015년 5월 소송을 냈다. 또 당시 경찰이 직무를 유기했다며 이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국회는 2004년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안에는 희생자 보상 조항이 빠지는 바람에 유족은 한국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은 게 없다.
그러나 1·2심은 유족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리에 맞지 않고 전쟁 특수성을 고려할 때 정부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다.
1·2심 모두 피해자들이 노근리 사건으로 사망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한국전쟁 중 혼란스러웠던 시대적 상황, 경찰이 피난민 통제업무를 수행하게 된 경위, 미군의 피난민 통제방향 등에 비추어 볼 때 경찰의 직무유기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경찰이 당시 충북 영동군 일대에 주둔하면서 피난민 통제업무를 수행하던 미 제1기병사단의 철수 명령에 따라 철수한 것으로 보일 뿐 직무유기를 인정할 증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 1967년 제정된 주한미군민사법의 경우 부칙상 1968년 2월10일부터 적용될 수 있기에 그 이전에 일어난 노근리 사건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봤다. 법률 시행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므로 미국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 부칙의 문언을 넘어 유추적용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날 이 같은 원심 판단을 모두 수긍하고 상고를 기각했다.
김수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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