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박범계에 혼쭐난 감사원 유병호, 이번엔 그가 면담 퇴짜
“2년 만에 처지가 뒤바뀐 것 같다.”
지난 13일 감사원을 항의 방문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과 이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두고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감사원이 표적 감사를 진행하고 여당의 전임정부 인사 찍어내기 행동대장 역할을 하고 있다”며 유 총장과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 마중을 나온 건 두 사람이 아닌 기조실장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를 지휘하는 상황에서 야당 의원과의 면담은 중립성 위반의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2년 전 국회서 마주한 유병호와 박범계
박 의원과 유 총장은 구면이다. 두 사람은 2년 전 이맘때 정반대의 입장에서 마주했다. 박 의원은 여당의 유력 정치인, 유 총장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 뒤 정권에 찍힌 국장급 공무원이었다. 박 의원은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현 국민의힘 의원)과 함께 국회에 출석한 유 총장을 일으켜 세워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고 몰아세웠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자격이 없다”“부적합한 인사”라며 질타를 쏟아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감사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불만이었다. 선배들보다도 국장 승진이 빨랐던 유 총장은 이듬해 비감사부서로 좌천됐다. 여당 관계자는 “그렇게 당했던 유병호는 감사원의 실세 사무총장이, 박 의원은 면담을 거절당한 야당 의원이 된 것”이라고 했다.
‘표적 감사’라는 의도성을 두고는 감사원과 야당의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전방위적 감사가 진행 중인 건 감사원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이다. 언론에 공개된 현황만 봐도 해양경찰청과 국정원, 방송통신위원회, KDI(한국개발연구원), 중앙선관위 등이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다. 이외의 여러 공공기관도 감사원의 비공개 자료 요청을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해경과 국정원은 서해 피살 공무원과 강제북송 의혹 등 야당이 “기획 사정”이라 반발하는 현안이 있는 곳이다. 방통위는 전임 정부에서 임명한 한상혁 방통위위원장이 재직 중이다. KDI의 경우 문재인 정부 경제수석 출신인 홍장표 전 원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하며 감사원의 표적 감사 의혹을 제기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이제 막 출범해 현재로선 전임 정부만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표적 감사라는 주장은 오해”라고 말했다.
감사원의 전방위적 감사를 두고 감사원 내부와 정치권에선 주로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첫째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2급 국장에서 차관급 사무총장으로 파격 발탁돼 ‘실세 사무총장’이라 불리는 유 총장 개인의 저돌적인 스타일이다. 이와 함께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뒤 감사원 감사 외엔 ‘알박기 기관장’을 밀어낼 방법이 없는 정치적 현실이 영향을 미쳤단 설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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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 “악폐 시리즈 진상 규명할 것”
이종격투기가 취미인 유 총장은 저돌적인 감사 스타일로 감사원에서 이름을 알렸다.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검찰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기소할 때도 유 총장이 쓴 감사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윤석열 정부 인수위 출신 인사는 “전형적인 마초 스타일로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감사원 관계자들은 그런 유 총장이 임명되며 감사원의 사정 드라이브가 자연스레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유 총장이 취임사에서 “새 정부 잘못에도 같은 잣대로 대처하겠다”고 밝힌 점을 거론하며 ‘정치적 의도성’을 부인하는 이들도 있다. 유 총장은 취임 뒤 감사원 쇄신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4일 확대간부회의에선 “감사원 내 여러 악폐에 대한 진상 규명을 시리즈로 해나갈 테니 놀라지 말라”며 “일부 간부에 대해선 재충전과 성찰의 시간 뒤 복귀시킬 것”이라고 경고 및 대규모 인사도 예고했다. 또한 “해야 하는 일을 안하면 형사처벌을 할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후 감사원은 14일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감사사항에 높은 평가등급 부여 ▶현장 조사 시 보고 최소화 ▶실력과 역량 중심의 인사평가제도 도입 등의 쇄신안을 발표했다. 평상시 “피라미가 아닌 고래를 잡으라”는 유 총장의 의지가 반영됐단 평가다.
하지만 개인적인 스타일 때문으로 넘기기엔 감사원의 감사 범위가 유달리 전방위적이란 주장도 나온다.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슈가 있는 부처마다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감사원을 항의 방문했던 야당 의원들은 “검찰이 수사정보 수집을 확대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여론몰이→감사원 감사→수사개시’라는 사실상의 검찰과 감사원의 짬짜미 협의체가 가동되는 것이란 우려가 크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특히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퇴를 요구한 홍장표 전 KDI 원장의 경우, 감사원이 KDI에 감사 자료를 요구한 사실과 맞물리며 ‘기획 사정’이란 야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강제로 알박기 인사들을 몰아내면 위법이다. 남은 합법적 수단은 감사원의 감사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 관계자는 “KDI는 한 총리가 사퇴 발언을 하기 이전에 이미 자료 요청이 갔었다”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일각에선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감사원이 정권 입맛에 맞춘 감사로 정치적 오해를 자초했단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선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를, 문재인 정부에선 이명박 정부의 4대강을 재감사했던 이력을 거론하며 감사원의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주장을 있는 그대로 믿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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