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맨틱 에러' 흥행에 BL도 양지로..'페그오'부터 '말딸'까지 승승장구

김기진, 윤은별 2022. 7. 1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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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도 존재감 키우는 서브컬처

서브컬처 콘텐츠는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세상에서도 갈수록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에서 넘어온 미소녀 캐릭터 게임이 매출 순위 상위권에 자리 잡는가 하면, 남성끼리의 사랑을 그린 웹소설(BL·남성 동성애)이 인기를 끌며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한때는 남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워 숨어서 즐기던 콘텐츠를 이제는 당당하게 플레이하고 읽고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웹소설이 원작인 ‘시맨틱 에러’는 웹툰, 애니메이션에 이어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로 탄생하면서 인기를 모았다. 지난 2월 16일 첫 공개된 드라마는 왓챠에서 8주 연속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왓챠 제공)

▶숨어 보던 BL·로판 양지로 올라와

▷10대부터 3040까지 ‘열혈 독자’

웹소설과 웹툰, 드라마, 영화 시장에서는 여성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한 콘텐츠의 ‘양지화’가 특히 눈에 띈다.

콘텐츠 플랫폼 리디에서 연재된 BL 작품 ‘시맨틱 에러’가 성공을 거둔 것이 시작이다. 웹소설이 원작인 IP 시맨틱 에러는 웹툰, 애니메이션에 이어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로 탄생하며 인기를 모았다. 지난 2월 16일 첫 공개된 드라마는 왓챠에서 8주 연속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트위터에서는 1월부터 3월까지 110만번 이상 언급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포토에세이는 8만부 넘게 팔려 나갔고, 대본집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시맨틱 에러가 성공을 거두며 BL 장르의 후발 콘텐츠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자회사인 크래들스튜디오는 카카오웹툰에서 연재 중인 BL 웹툰 ‘비밀 사이’의 드라마화를 추진 중이다. 카카오웹툰 BL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등을 제작한 NEW는 지난 3월 첫 BL 웹드라마 ‘블루밍’을 공개했다. 영화 ‘건축학개론’을 만든 명필름도 BL 드라마 ‘따라바람’을 공동 제작 중이다.

‘로판’으로 불리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 역시 최근 웹콘텐츠 시장에서 BL과 함께 급성장한 서브컬처 장르다. 대개 중세 마법 세계관 배경에서 대공과 귀족 영애 등을 주인공으로 하는 로맨스물이다. 네이버웹툰 ‘로어 올림푸스’, 리디 ‘상수리나무 아래’, NHN코미코 ‘아무튼 로판 맞습니다’ 등이 각 플랫폼의 대표작이다.

BL과 로판의 수요자는 90% 이상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여성향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웹소설과 웹툰 원작이 오디오 드라마, 영상 등 2, 3차 창작으로 이어지기 쉬운 플랫폼 환경 덕을 봤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중성이 낮고 자칫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장르지만, 다른 유형의 콘텐츠로 재탄생되며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분석이다. 시맨틱 에러 역시 ‘19금’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면서 12세 이상 관람가로 수위를 조정하며 대중성을 확보했다.

‘장르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는 카카오페이지의 로맨스 판타지(로판) 장르 대표작이다. 최근까지 84만명 독자의 선택을 받으며 인기몰이 중이다. (카카오페이지 제공)
‘음지 콘텐츠’가 양지로 나오며, 과거 ‘10대 여학생들만 보는 것’이라는 인식도 달라지는 중이다. 플랫폼 역시 대중성에 신경 쓴다.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는 “BL 작품이더라도 전 연령층 독자가 즐길 수 있는 양질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며 “자극적인 장면보다는 등장인물 간 관계성과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BL 작품을 원하는 독자가 주 타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결국 캐릭터 사이 사랑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며 “최근 10~20대뿐 아니라 30~40대 독자에게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비력이 좋고 팬덤이 두터운 시장이라는 점 역시 공급자 입장에서 유리하다. 한 웹툰 업계 관계자는 “BL, 로맨스 판타지 등 여성향 콘텐츠의 경우 무료 독자의 구매 전환율이 굉장히 높다. 젊은 여성은 마음에 드는 콘텐츠가 있으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층”이라며 “여성 선호도가 높은 콘텐츠를 앞세운 웹툰·웹소설 플랫폼은 네이버나 카카오보다 시장점유율이 훨씬 떨어지지만, 낮은 MAU(월간 활성 사용자 수)에 비해 매출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의 양지화는 콘텐츠 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후발 주자들이 ‘다양성’을 앞세우며 선두 주자와 차별화 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예를 들어 웹툰 시장의 후발 주자 리디, NHN코미코 등이 여성향 콘텐츠를 주력으로 성장 중이다. 전자책 플랫폼이던 리디는 여성향 웹툰, 웹소설에 주력하며 1조6000억원 기업가치의 유니콘으로 도약했다. NHN코미코의 글로벌 웹툰 플랫폼 ‘포켓코믹스’는 국내 시장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프랑스 시장에서는 카카오의 픽코마를 꺾고 앱스토어 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프랑스 지역 인기 순위 상위권 작품의 80% 이상을 로맨스 판타지가 차지하는 등 여성향 콘텐츠가 큰 힘을 발휘했다.

시맨틱 에러로 성공을 거둔 왓챠도 마찬가지로 OTT 후발 주자다. 역시 기존 OTT가 선점하지 않은 틈새시장을 공략해 차별화를 꾀하는 전략이다. 왓챠는 시맨틱 에러의 인기에 힘입어 연내 BL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신입사원’을 공개한다.

왓챠 측은 “기존에 왓챠에서 독점 스트리밍했던 브로맨스 콘텐츠인 ‘체리마호’ ‘진정령’ 등의 데이터를 통해 국내에서도 해당 장르에 대한 팬층과 잠재성이 높다고 판단했다”며 시맨틱 에러의 서비스를 결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넷마블이 국내 유통을 맡은 모바일 게임 ‘페이트/그랜드 오더’(좌). 일본 개발사 딜라이트웍스가 애니메이션 ‘페이트’ 시리즈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제작했다. 모바일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우)’는 국내 시장에서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아니면 매출 순위 상위권에 들기 어렵다는 인식을 깨고 흥행 중이다.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제공)
▶‘우마무스메’ 매출 2위 등극

▷탄탄한 스토리와 그래픽에 열광

국내 게임 시장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가 꽉 잡고 있다. ‘리니지 시리즈’ ‘오딘: 발할라 라이징’ 등이 앱마켓 매출 상위권을 장악했다. MMORPG를 제외하면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한 1인칭 총 쏘기(FPS)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와 같은 실시간 전략 게임이 주로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서브컬처 장르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서브컬처 게임’을 정의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보통 일본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그림체로 그린 미소녀 혹은 미소년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서브컬처 게임이라 부른다. 통상 캐릭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각 캐릭터에 부여된 서사를 감상하는 것이 게임의 키포인트다. 기사, 군주 등이 검이나 화살 같은 무기를 들고 등장해 전투하고 레벨을 올리는 것에 주안점을 둔 MMORPG, 총을 비롯한 무기로 무장한 캐릭터가 총싸움을 벌이는 FPS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서브컬처 게임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작품은 단연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이하 우마무스메)’다. 일본 사이게임즈가 만들고 카카오게임즈가 국내 서비스를 맡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일본에 실존하는 경주마 이름을 이어받은 미소녀 캐릭터를 육성하고 경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마무스메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게이머 사이에서 ‘말딸(우마무스메를 한국어로 직역한 표현)’이라 불리며 기대작으로 언급됐다. 6월 20일 본 서비스를 시작해 당일 애플 앱스토어 매출과 인기 순위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구글 플레이에서도 인기 순위 1위와 매출 2위를 찍었다. 증권가는 우마무스메가 하루 평균 매출 10억원 이상을 기록 중인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 시장에 나오기 전, 일본색이 짙은 게임이라 인기를 끌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이런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명백히 보여줬다.

시장에서는 우마무스메 흥행 비결로 탄탄한 스토리를 꼽는다. 라이벌 관계 등 경주마가 지닌 특성을 본떠 캐릭터에 부여했는데, 이런 스토리가 즐길 거리가 된다는 설명이다.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각 캐릭터의 서사와 인물관계 등이 몰입도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게임즈가 ‘뱅드림! 걸즈 밴드 파티!’ ‘프린세스 커넥트! Re:Dive’ 등을 선보이며 쌓은 서브컬처 게임 운영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는 분석도 일리 있다.

넥슨 ‘블루 아카이브’도 게임 업계 서브컬처 열풍에 힘을 실어주는 게임이다. 지난해 10월 14일 사전 예약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예약자 50만명을 돌파하며 화제가 됐다. 11월 9일 서비스 시작 직후 3대 앱마켓인 구글 플레이와 애플 앱스토어, 원스토어에서 모두 인기 순위 1위를 거머쥐었다. 지금은 매출 순위가 다소 하락했으나 한때 원스토어 1위, 앱스토어 2위, 구글 플레이 5위를 기록했다.

블루 아카이브는 학교가 여러 개 모인 도시 ‘키보토스’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게이머는 연합 수사 동아리 ‘샬레’ 고문 교사로 부임해 학생들을 인솔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도시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해결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품은 스토리를 듣고 교감하게 된다.

2017년 첫선을 보인 ‘페이트/그랜드 오더’는 지금도 순항 중이다. 일본 개발사 딜라이트웍스가 애니메이션 ‘페이트’ 시리즈 IP를 활용해 제작했고, 넷마블이 국내 서비스를 담당한다. 이용자가 주인공인 ‘마스터’가 돼 ‘서번트’라 불리는 부하 캐릭터를 이끌고 전투를 하는 콘셉트다. 앱마켓 최고 매출 순위는 애플 앱스토어 1위, 구글 플레이 3위다. 최근에는 순위가 다소 밀렸는데 6월 말 시작된 게임 내 이벤트 덕분에 다시금 상위권에 진입했다. 7월 7일 기준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는 10위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서브컬처 게임이 인기를 끄는 현상과 관련해 “게임 산업 태동기였던 1980년대 말~1990년대부터도 일본 문화를 비롯한 서브컬처에 관심을 보이는 게이머는 있었다. 이후 인터넷이 보급화되면서 서브컬처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카카오게임즈를 비롯한 대형 게임사가 서브컬처 콘텐츠를 내놓고 정교한 마케팅을 펼치며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소셜미디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서브컬처가 자주 언급되면서 소비자가 장르에 익숙해지고 거부감이 줄었다는 분석, 이해가 되지 않는 취향이라도 존중하는 ‘취향 존중’이 중요한 시대라 서브컬처가 양지로 나오고 있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한동안 국내 게임 시장에 MMORPG 작품이 잇따라 쏟아진 탓에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며 관심을 모으는 것이라는 설명 역시 일리 있다.

[김기진 기자, 윤은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7호 (2022.07.13~2022.07.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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