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선박, 귀순 묻지말고 보내라" 靑안보실 지침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 직전 월남한 북한 선박과 주민에 대한 대응 지침을 만들어 직접 관련 사태를 통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지침에는 해군ㆍ해경 등이 초동 대응 단계에서 귀순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 등을 “자제하라”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4일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국가안보문란 실태조사 TF 위원장)에 따르면 문 정부의 국가안보실은 ‘북한 선박ㆍ인원이 관할 수역 내 발견 시 대응 매뉴얼’이란 이름의 지침을 지난 2019년 9월 제정했다.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이 발생하기 두 달여 전의 일이다.
이전엔 북한 선박과 주민이 남측으로 내려오는 사태가 발생하면 국가정보원이 주관해 대응했는데, 안보실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나선 게 지침의 핵심이다. 당시는 삼척항 목선 입항(2019년 6월),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선박 나포 사건(2019년 7월) 등 잇따라 관련 사태가 발생하던 시기였다.
청와대는 이같은 사건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급기야 “안보실 지시를 어기고 북한 선박을 나포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군 작전 최고 책임자인 박한기 당시 합참의장을 조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현재 해당 지침의 전문은 문 정부가 물러나면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최장 15년간 볼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한 의원실에서 입수한 일부 지침 내용에 따르면 당시 청와대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겼다.
우선 지침에선 “상황 처리 담당기관(해군ㆍ해경ㆍ해양수산부)은 북한 선박이 단순 진입으로 확인 시 현장에서 퇴거 또는 현지 송환하라”고 돼 있다. 이는 수상한 선박과 인원을 발견해도 일단 북측으로 돌려보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탈북민 강제 북송 사건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군 소식통은 “북한에서 선박이 내려왔을 때, 당시 군은 SI(군 특수정보)를 통해 북한에서 범죄자를 찾고 있다는 내용을 포착했다”며 “이후 해군은 안보실 매뉴얼에 따라 북한 선박을 이틀 이상 따라다니며 내려오지 못하도록 조치하려 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안보실은 또 지침을 통해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합동조사 필요성이 인정되거나 북한인의 자행, 기상 악화 등으로 근접 검색이 곤란할 경우 주관기관(안보실)에 보고하고 국정원과 협의해 조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국정원을 제쳐놓고 안보실이 직접 보고받고,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하려 한 정황”이라고 짚었다.
한 의원에 따르면 안보실 지침에는 해군ㆍ해경의 초동조치와 관련해 “기타 불필요한 내용은 확인을 자제한다”는 내용도 명시돼 있다. 한 의원은 “귀순 의사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안보실로 넘기면 알아서 하겠다는 얘기”라면서 “이 매뉴얼만 봐도 탈북민 강제 북송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안보실이 이처럼 지침까지 내리며 직접 나서게 된 배경과 관련, 일각에선 “당시 문 정부가 남북관계 경색을 심각하게 여겨 북한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게 하기 위해 유화책을 편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2019년 8ㆍ15 경축사를 통해 남북경협을 상징하는 ‘평화경제’라는 메시지를 냈지만, 당시 북한은 “삶은 소대가리” 등 모욕적인 표현으로 남측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와 관련,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의 잇따른 비난에 일종의 패닉 상태에 빠진 정부가 합리적인 정책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이같은 매뉴얼을 만들어 북한의 눈치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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