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본세상](40) 나는 왜 아직도 '낄끼빠빠'가 안 될까?
세상 모든 일 '타이밍(timing)'이다. 시의적절 행동해야 '매너 있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지 않으면 '무례하다', '푼수 같다'라는 뒷말이 돈다. 심하면 주변으로부터 따돌림당할 수도 있다.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라는 뜻. '타이밍의 예술'을 표현한 요즘 세대 말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카드 유 대리에게 맡기고 갈 테니, 다들 더 놀다 가.' 젊은 직원들이 원하는 말은 이거다. 그러나 대표는 기어코 노래방까지 직원들을 따라간다. 뭐 그리할 말은 많은지, 쉼 없이 얘기한다. "나 때는 말이야..." 그러니 '꼰대'라는 얘기를 듣는다.
'지갑은 풀고 입은 닫아야지...' 술만 먹으면 이 다짐이 흐트러진다. 멈출 때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참 군자라 했거늘….
어쩌다 비트코인을 아주 조금 갖게 됐다. 옛날 친구 채굴 회사에 투자해 받은 가상 물건이다. 잊고 있던 게 어느 날 거의 1억까지 올랐다. '와~ 1억. 팔까?' 아니다. 좀 더 기다리자. 거의 공짜로 얻다시피 한 코인, 1억 벌었으면 됐을 법한데 욕심이 생겼다. 2억 되면 팔아야지….'
그때 팔걸…. 후회한 들 뭔 소용이 있겠나. 폭락 장세에 지금 가치는 3분의 1 토막이다. 그래서 2억이 됐다고 치자. 아마 그때도 팔지 못할 것이다. '3억 될 때까지 기다리자..' 또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 도대체 멈출 줄 모른다.
욕심의 불똥은 큰 손실을 부른다. '당신이 밟은 땅 다 줄게..' 이 말에 죽어라 달린 농부 바흠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톨스토이).
60의 나이, '이제 어지간히 됐다' 싶은데도 여전히 욕심은 살아있다. 돈을 보면 벌고 싶고, 자리를 보면 출세하고 싶다. 젊은 직원들 노래방에 따라 나선다. 무엇인가 더 해보고 싶은 욕망이 꿈틀꿈틀 동(動)한다.
아내는 '정년퇴직이면 할 만큼 다 한 것이니 시골로 가 땅 갈고 지내자….'라고 말한다. 아직 그 말에 답을 못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봐, 혹시 알아 어디선가 오파가 올지...' 마음속 미련이 그득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은퇴 즈음에 주역 52번째 괘 '간위산(艮爲山)'을 만났다. 산을 상징하는 간(艮, ☶)이 위아래로 겹쳐있다. '중산간(重山艮)'이라고도 한다.
산은 육중하다. 언제나 그 자리, 그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그래서 간(☶)괘는 그 자체가 그침(止), 머무름을 의미한다. 그 산이 겹쳐있으니 괘 전체가 그침을 주제로 하고 있다. '머무름의 괘'로 통한다.
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無咎
등에 머무르니 몸을 전체를 얻지 못하고, 마당을 거닐어도 사람을 보지 못하니, 허물이 없다.
괘사(卦辭)는 이렇게 시작한다. '등에 머물러 몸체를 얻지 못한다?'이건 뭔 소린가. 이게 그침(止)과 무슨 관련이 있나...? 주역은 역시 어렵다.
등(背)은 몸을 받쳐주는 기능을 한다. 그냥 벽의 모양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건 모두 신체의 앞면에 있다. '등에 머문다'는 것은 곧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감각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을 닫으라는 얘기다.
욕심(欲心)은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면서 생긴다. 견물생심이다. 돈 번 친구를 보면 돈 벌고 싶고, 높은 데 오른 친구를 보면 출세욕이 발동한다. 외물과의 접촉이 욕심의 시작이다. 주역은 그걸 끊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욕심이 사라지고, 비로소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정원에서 돈 번 친구를 봐도 보지 않은 듯, 출세한 후배를 봐도 보지 않은 듯해야 한다. 그래야 욕심이 안 생긴다. 그럴 때라야 허물이 없다고 주역은 말한다.
노자(老子)가 이 괘를 받았다. 그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이렇게 말한다.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욕심낼만한 것을 보지 않게 하니, 민심이 동요하지 않는다.
이 말이 21세기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다이내믹 코리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건 논외로 치자. 한 가지 분명한 건 온 국민의 눈빛이 욕심으로 이글거리면 사회가 편할 리 없다는 점이다. 욕심이 줄어야 사회가 안정되고, 그 안정 속에서 발전이 온다. 나라 발전의 목표 역시 국민이 함께 어울려 믿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등(背)에 머물러야 한다.
주역의 대전제는 변화(change)다. '그침(止)' 역시 움직임(動)의 다음 단계다. '간위산' 괘에서는 머무름에 방점이 찍혔을 뿐이다.
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 其道光明
멈춰야 할 때 멈추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에 옮긴다. 움직임과 멈춤이 시의적절하니, 그 도가 빛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 광고 카피 한 문장이 전 국민을 열광하게 했다. 맞다. 죽어라고 일만 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적절한 휴식(止)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해야 더 멀리 갈 수 있다. 멈춤은 또 다른 전진을 위한 축적의 시간이다. 요즘 말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다.
워라밸이 깨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세 번째 효사(爻辭)는 이렇게 말한다.
艮其限, 列其夤, 勵薰心
허리에서 멈추니 상하 척추가 단절된다. 위험에 마음이 타들어 간다.
세 번째 효는 양효(─)라 왕성하지만 안정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하반신은 쉬는데 상반신은 계속 일을 하는 꼴이다. 멈춰야 함에도 계속 움직이려 하니 위아래가 단절되고, 초조하다.
놀 때 확실히 놀지 못하는 사람은 일도 지지부진이다. 말끔하게 끝내지 못하니 놀아도 찜찜하다. 많은 사람이 세 번째 효의 상황에 빠져있다.
'당신 할 만큼 했어. 사회가 요구하는 건 다 한 거야.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퇴직해도 돼.' 아내는 이렇게 위로한다. 그런데도 내 마음에 미련이 남는 것은, 열심히 살지 않아서인가…. 나는 무엇이 부족해서 미련이 남는 것일까. 이러다 '상갓집 개' 신세가 되는 건 아닐까…. 모를 일이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도 있다. '리더의 효'로 통하는 다섯번 째 효는 이렇게 말한다.
艮其輔, 言有序, 悔亡
뺨에 머무니 말에 조리가 있다. 뉘우침이 사라진다.
'뺨에 머문다'는 건 말을 조심한다는 뜻이다. 유능한 리더는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이말 저말 함부로 내뱉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져나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헛말 많으면 권위만 깎일 뿐이다. 차라리 말을 안는 게 낫다.
주역은 3000년을 뛰어넘어 필자 회사의 회식 자리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뺨에 머물라'는 것은 '지갑은 풀고 입은 닫아라'는 것과 같은 뜻이다. 낄끼빠빠 염두에 두라는 충고다.
'간위산' 괘는 이렇게 마지막 효사를 정리한다.
敦艮, 吉
머무름이 돈독(敦篤)하면 길하다.
'돈독한 머무름'이란 무엇을 말할까. 공자(孔子)는 '독실한 마무리를 이루게 된다(以厚終也)'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사욕을 억제하고) 적당한 선에서 그칠 줄 알아야 아름다운 마무리를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그쳐야 할 때 응당 그쳐야 한다(時止則止), 필자에게 던지는 충고 같다.
군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兼山, 艮, 君子以思不出其位
산이 나란히 있으니 간(艮)괘다. 군자는 이로써 생각이 그 위치를 벗어나지 않게 한다.
산은 높고 낮음을 시샘하지 않는다. 움직임 없이 멈춰 서로 어울린다. 군자는 그래야 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재물을 보고 시샘하거나, 높은 자리를 보고 출세를 꿈꾸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야 끝이 아름답다.
은퇴 즈음에 만난 '간위산' 괘는 '너도 이제 그런 나이는 되지 않았느냐'라고 묻고 있다. 그 물음에 필자는 궁색한 답을 내놓는다.
'그래, 이제 쫓아다니며 뭘 하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그러나 내 뜻과 상관없이 무슨 일이 맡겨진다면, 그건 하자..." 여전히 비굴하다.
한우덕
한우덕 기자/차이나랩 대표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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