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원 받으려 만보 걷는다"..MZ가 꽂힌 '디지털 폐지줍기'
직장생활 3년 차인 한모(28)씨는 얼마 전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정리했다. 배달과 쇼핑 앱은 지우고 할인이나 적립금을 쌓을 수 있는 앱을 깔았다. 매월 들어오는 수익은 일정한데 대출이자와 물가 인상으로 생활이 팍팍해져서다.
한씨는 2년 전 은행에서 신용대출 8000만원을 받았다. 당시 금리는 연 3.1%였고, 이자는 월 20만원 정도였다. 슬금슬금 오르던 금리는 이달 연 5.1%까지 상승해 이자만 월 30만원이 됐다. 생활비도 크게 늘었다. 아침 식사 대용으로 마시는 우윳값은 1년 새 20% 가까이 올랐다. 매달 배달음식에만 30만원 넘게 지출했는데 이제는 편의점 도시락을 택한다.
한씨는 편의점 앱을 깔고 멤버십에 가입해 ‘2+1’ 쿠폰이나 다양한 할인 혜택을 받는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을 풀 때마다 포인트가 쌓이는 리워드 앱,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가 쌓이는 만보기 앱도 깔았다. 한씨는 “대출받아서 원룸 전셋값에 보태고 암호화폐와 주식도 샀는데 수익률이 마이너스라 팔수도 없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 부담이 커지고 물가가 치솟으며 '짠테크’(짜다+재테크) 바람이 불고 있다. 그간 플렉스(Flex·과시형 소비)에 집중하던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푼돈도 아끼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빚을 내 주식이나 암호화폐 등에 투자하는 ‘한 방’ 재테크를 했다면 금리 상승기에는 밥값도 아끼는 짠테크로 돌아선 것이다.
이처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씀씀이를 줄이는 건 기준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지갑이 얇아진 탓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10개월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다섯 번 올렸다. 13일엔 0.5%포인트를 한 번에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해 기준금리가 연 2.25%로 뛰었다. 게다가 지난달에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6% 뛰었다.
“한 번에 1~2원 적립 노리는 수요도 늘어”
금리 인상기 주가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예·적금 금리가 오르자 한 방은 아니라도 차곡차곡 돈을 모으는 식으로 투자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예·적금 수요가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의 저축성 예금은 42조3000억원으로 1년 전(15조원)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시중은행의 예·적금 금리가 오른 영향이다. 한은이 빅스텝 인상에 나서자 하나은행은 14일부터 예·적금 30종의 기본금리를 최대 0.9%포인트 인상한다. 적립식 예금 금리는 0.25%~0.8%포인트, 거치식 예금 금리는 0.5%~0.9%포인트 올린다. 신한은행도 지난 8일 예·적금 금리를 최대 0.7%포인트 인상했다.
'짠테크 수요'를 겨냥한 금융상품도 있다. 카카오뱅크는 체크카드 사용자를 대상으로 통장에 1000원 이하 잔돈을 모아서 알아서 10만원까지 모아주는 상품을 내놨다. 케이뱅크의 자동 목돈 모으기 상품인 챌린지박스는 개인 목표 금액(500만원 이내), 목표 기간(30~100일)을 설정하면 매주 모아야 하는 돈을 자동으로 계산해 이체해준다.
할인 등으로 지출을 줄이는 수요도 늘고 있다. BGF리테일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CU 구독 쿠폰 서비스’ 가입자는 올들어 지난달까지 51.4% 증가했다. 월 구독료를 내고 평소 자주 이용하는 품목을 정하면 한 달 내내 해당 품목을 할인받는 서비스다. 예컨대 월 구독료 2000원을 내고 ‘GET아메리카노’를 선택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30% 할인 쿠폰(1일 1회)이 발급된다.
출석이나 설문, 광고 시청, 걷기만으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가 쌓이는 이른바 ‘디지털 폐지 줍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캐시슬라이드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뜨는 광고를 보면 포인트가 쌓인다.
네이버 마이플레이스는 영수증을 인증하면 10원씩 적립 받을 수 있는 앱이다. 캐시워크는 100걸음당 1캐시가 적립되는데 하루 최대 100캐시까지 쌓을 수 있다. 토스 만보기도 하루 최대 140원을 적립할 수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금리에 고물가, 주식·암호화폐의 위험성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티끌 모아 태산' 전략으로 돌아서게 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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