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안받아주자 몰디브로 도망..대통령 튄 스리랑카 내분 격화
대규모 반정부 시위 후 사임을 약속했던 고타바야 라자팍사(73) 스리랑카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몰디브로 도피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그의 동생이자 전 재무장관인 바실 라자팍사도 미국으로 향하는 등 2005년부터 이어진 라자팍사 가문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국가 부도까지 이어진 심각한 경제난을 종식할 차기 지도부 구성을 놓고 스리랑카 정치권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스리랑카 공군기 안토노프-32에 탑승해 스리랑카를 떠난 라자팍사 대통령과 영부인, 경호원 등이 이날 오전 3시쯤 몰디브 말레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그의 국외 도피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 9일 분노한 군중이 관저로 몰려들자 몸을 피한 라자팍사 대통령은 은신처에서 다양한 해외 탈출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스리랑카 공군기 착륙을 허가해주지 않고, 미국 대사관도 라자팍사 대통령 일행에 대한 방문 비자를 내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12일 아랍에미리트(UAE)로 향하는 일반 여객기에도 탑승하려 했으나, 대기줄에 설 것을 거부한 대통령 일행의 탑승을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수차례 거부해 공항 인근 공군 기지에서 밤을 보냈다.
BBC는 “라자팍사 대통령은 헌법상 면책특권을 갖고 있을 때 해외로 탈출해 체포를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식통에 따르면 그의 동생인 바실 전 재무장관도 미국으로 향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공식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2019년 대규모 감세 등 포퓰리즘성 경제 정책을 펼쳤다. 여기에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주력인 관광 산업이 붕괴하면서 스리랑카의 취약한 경제 구조가 드러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세계 식량위기와 유가 상승도 스리랑카 경제에 타격을 줬다.
결국 연료와 식료품 등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워진 시민들은 그간 라자팍사 가문의 부패와 실정을 비판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스리랑카 국민이 전체(약 2200만 명)의 약 14%인 300만 명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이에 라자팍사 대통령은 지난 9일 마힌다 야파 아베이와르데나 국회의장을 통해 13일 공식 퇴임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스리랑카 의회는 오는 15일 의회를 소집하고, 20일 비밀투표를 통해 의원 중 한 명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할 계획이다. 새 대통령은 2024년까지인 라자팍사 대통령의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빠른 협상을 통해 국가 부도 사태를 종식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지만, 지난 20년가량 스리랑카의 권력을 독점한 라자팍사 가문을 대체할 지도자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11일 스리랑카 야권 지도자들은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회담에서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연합(SJB) 대표 사지트 프레마다사가 대통령 후보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대중의 지지가 부족하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하다고 BBC는 전했다. 또 여당인 스리랑카인민전선(SLPP)은 여전히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13일 더인디안익스프레스는 스리랑카 현지 언론을 인용해 현재 SLPP가 앞서 대통령과 함께 사퇴를 약속한 라닐 위크레메싱게 총리를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위크레메싱게 총리는 여러 차례 총리직을 수행한 중량급 정치인이지만, 그가 이끄는 통합국민당(UNP)의 스리랑카 의회 내 의석은 본인의 자리인 1석 뿐이다.
이와 관련 스리랑카 언론인 아미르타나야감 닉슨은 12일 독일 공영 도이치벨레(DW) 기고를 통해 “스리랑카의 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인도 이 위기를 끝낼 위치에 있지 않다”며 “식료품과 연료 등 필수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은 정치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분노하고 실망하고 있다. 완전한 변화 없이는 권력 남용과 부패를 근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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