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쇼와 시대로 시간 여행..'레트로 리뉴얼' 2년 새 관광객 8배↑

노승욱 2022. 7. 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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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시장 혁신 현장을 가다 (4) 쇼와노마치

# 지난 6월 23일 오후 1시 일본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에 위치한 전통시장 ‘쇼와노마치’. 시장 입구에 설치된 전시관에는 1950~1980년대에 일본에서 쓰던 각종 생활용품과 영화 포스터 등이 진열돼 있다. 백발이 성성한 두 할머니 관람객은 “그래, 이런 느낌이었어”라고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이내 추억에 잠긴다.

시장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한순간에 ‘타임 슬립(시간 여행)’을 한 듯하다. 낡은 나무판자에 두꺼운 붓으로 거칠게 갈겨 쓴 간판들, 개화기 사극에서나 본 듯한 브라운관 TV와 가구들이 상점마다 그득 진열돼 있다.

30대 후반인 기자도 어린 시절 추억 속 한 자락에 남아 있는 풍경이다.

쇼와노마치를 관리하는 분고타카다시의 직원은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일본 전역에서 연간 4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한동안 침체됐지만 최근 방문객이 76% 정도 회복됐다”고 전했다.

일본 규슈섬 동쪽 한가운데에 위치한 쇼와노마치는 일본 전통시장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 인근 철도역 상권이 붕괴돼 지역 주민 발길이 뜸해지자 시장을 통째로 20세기 초반 풍경으로 리모델링해 관광지 상권으로 재탄생시켰다. 쇼와노마치는 1926년부터 1989년까지 재위한 일왕 ‘쇼와’의 거리라는 뜻이다.

상권 침체를 걱정하던 쇼와노마치는 어떻게 기적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쇼와 시대로 복고풍 리뉴얼 화제

▷반세기 전으로 타임 슬립…관광객 밀물

분고타카다시는 오이타현 동북부에 동그랗게 튀어나온 쿠니사키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에도 시대부터 기항지로 번창했고, 쇼와 일왕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한때 300여 점포가 들어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쇼와 시대가 저물고 1990년대가 되자 상권 침체가 시작됐다. 자동차가 보급되며 철도역 인근 상권이 붕괴하고 주민 왕래가 급감했다. 4개 상점가에는 53개 회원 점포 중 빈 점포가 절반에 달했다. ‘개와 고양이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야유가 흘러나올 지경이었다.

‘이러다가는 다 죽겠다’. 위기감을 느낀 상인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섰다. 1992년 일본 광고 전문 대기업 ‘덴쓰’에 용역을 주고 상권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덴쓰가 1년간 연구 끝에 내놓은 대책은 허탈할 정도였다. 바로 ‘대형 경기장’을 만들라는 것. 예산과 권한이 한정된 상인회에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무리였다.

다시 머리를 맞대 시가지 활성화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존 상점가 재생연구의회’를 결성하고 상공회의소, 행정기관에도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의 물음은 ‘왜 상권을 활성화해야 하는가?’에서 시작됐다. 답을 찾기 위해 일단 1996년 분고타카다 시가지의 ‘거리 이야기(Street Story)’를 작성하기로 했다. 에도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 자료를 조사해 다른 상점가와 차별화된 거리의 개성을 찾았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받아 하나씩 가능성을 점검했다. 일단 16~17세기에 유행했던 ‘조카마치(城下町·성 밑에 건설한 도시)’ 콘셉트는 이미 다른 곳도 많이 하고 있었다. 일본이 전성기를 구가했던 1910~1920년대 ‘다이쇼로망(다이쇼 일왕 시대의 낭만주의 사조)’도 차별점이 없었다.

그러던 중 수도권에서 쇼와 시대를 테마로 한 라면 박물관이 문을 여는 등 전국적으로 쇼와 붐이 이는 흐름이 읽혔다. 마침 2000년 ‘상가의 거리 풍경 조사사업’을 통해 중심 상가 301건을 조사한 결과와 부합했다. 모든 가옥의 토지도면, 건물도면 대장을 전수조사한 결과 상가 건물 중 약 70%가 1955년대 이전 것으로 판명된 것. 쇼와 시대를 테마로 한 관광지 조성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2001년 9월 상업과 관광 부흥을 위한 ‘쇼와의 거리’ 건설 작업이 시작됐다. 상권 활성화를 결의하고 방법을 찾아 나선 지 8년 만의 일이다.

“쇼와 시대를 테마로 한 상점가는 다른 곳도 많았지만 재생만 했을 뿐, 실제 역사적 근거는 없었습니다. 반면, 쇼와노마치는 실제 쇼와 시대에 가장 번영했고, 3~4대에 걸쳐 살고 있는 주민도 많았어요. 현재 남아 있는 56개 가게 중 15개는 100년 이상 된 가게입니다.”

분고타카다시 직원의 설명이다.

일본 오이타현 분고타카다시의 상점가 쇼와노마치는 일본 전통시장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로 꼽힌다. 상점가가 번성했던 쇼와 일왕 시대 모습을 재현해 관광객이 급증했다. (노승욱 기자)
이후는 일사천리. 쇼와 시대의 거리, 역사, 상품, 그리고 사람을 재생한 ‘4대 재생’이 시작됐다.

우선 1950년대 도시 경관 조성을 위해 건축 재생에 나섰다. 현대식 알루미늄 간판을 뜯어내고 나무로 만든 옛날식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쓰던, 이제는 골동품이 된 옛 물건을 수집해서 가게마다 비치했다. 쇼와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귀한 물건과 상품을 하나씩 선보이는 ‘일점일보(一店一寶)’ ‘일점일품(一店一品)’에 나섰다. 아이스캔디, 카레고로케 등 옛날 먹거리도 팔았다.

재생 대상은 거리 풍경과 상품만이 아니었다. 상인도 그 시절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쇼와 시대 상인 재생’도 추진했다. 접객 매뉴얼에 따른 판에 박힌 서비스가 아니라, 이웃처럼 환대하며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접객에 나선 것.

거리 입구에는 관광 거점 시설로 ‘쇼와 로망구라’ 창고를 정비했다. 마을의 대표 부자였던 노무라 씨가 쌀 1만포대를 저장하던 농업 창고를 쇼와 시대 물건이 진열된 박물관과 식당으로 리뉴얼했다.

박물관은 후쿠오카시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고미야 유센 씨가 보유한 10만점 넘는 쇼와 시대 장난감 컬렉션으로 채워졌다. 상공회의소가 중심이 돼 고미야 씨에게 쇼와 로망구라에 출점해달라고 삼고초려해서 유치(2002년)한 덕분이다. 동화 삽화가 구로사키 요시스케의 그림책을 모은 ‘쇼와 그림책 미술관(2005년)’, 1950~1960년대 민가와 상점, 교실을 재현한 ‘쇼와 꿈마을3초메관(2007년)’도 잇따라 문을 열었다. 식당에서는 지역 토산품으로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마을 역사를 방언을 섞어 안내하는 전문 안내인도 배치했다. 옛날 사람들이 타고 다니던 보닛 버스를 복원해 일요일마다 운행하기도 했다.

결과는 대성공. 거리 전체가 대변신하자 관광객들은 반세기 전으로 타임 슬립한 듯한 재미에 빠져들었다. 입소문이 퍼지며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관광객이 밀려들었다.

2001년 2만5000명에 불과했던 관광객 수는 이듬해 8만명, 2003년에는 20만명으로 불과 2년 만에 8배 급증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 2007년부터는 매년 30만~40만명이 거리를 찾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언덕길 아폴론’ 등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타며 외국인 관광객도 밀려들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포함, 쇼와노마치의 외국인 관광객은 2014년 1900명에서 2019년 1만6500명으로 5년 만에 8배 이상 늘었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40~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주로 찾았습니다. 여행사에서 버스를 대절해 단체 관광객을 모셔 왔죠. 요즘은 미디어와 SNS를 통해 알게 된 젊은이가 절반에 달합니다. 부모, 조부모 세대가 옛날에는 어떻게 생활했는지 보며 즐거워하더군요.”

관광객이 밀려와 상권이 살아나자 상인들도 다시 찾아왔다.

쇼와노마치에서 가게를 운영하겠다는 외지인들의 신청도 줄을 이었다. 분고타카다시는 이들의 월세와 상가 리모델링을 지원하며 상권 활성화를 돕고 있다. 덕분에 한때 9개까지 줄어들었던 쇼와노마치 상점은 최근 약 60개까지 다시 늘어났다. 쇼와노마치가 브랜드화되며 인지도가 높아지자 지역에 대한 주민들 자부심도 높아졌다.

▶지역의 특성 살려 성공

▷“외부 지원 의존 말고 상인들이 나서야”

전문가들은 지역 개성을 살린 것이 쇼와노마치의 성공 비결이라고 꼽는다. 미쓰하시 시게아키 전 일본 마치즈쿠리협회 이사장은 저서 ‘전통시장 이렇게 살린다’를 통해 쇼와노마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상점가는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각 상점가마다 번영 조건, 침체 요인, 활성화 방법이 모두 다르다. 쇼와노마치는 신설 테마파크가 아닌, 기존 상점가 거리에 쇼와 시대 마을의 분위기를 재현함으로써 지역 자원을 살려 관광 산업력을 만든 사례다.”

분고타카다시 직원은 “쇼와노마치는 상권 침체에 위기감을 느낀 상인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주효했다. 지자체 등 외부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상인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혁신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됐습니다.

[오이타(일본) =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7호 (2022.07.13~2022.07.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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