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세대 갈등, 인종차별.. 스페인 장르영화의 현재
'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이학후 기자]
▲ 영화 <더 패신저> 포스터 |
ⓒ 부천판타스틱영화제 |
‘배니’란 애칭의 낡은 승합차를 모는 운전기사 블라스코(라미로 블라소 분)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 마리엘라(세실리아 수아레스 분), 전 남편을 만나러 가는 리디아(크리스티나 알카사르 분)와 반항적인 딸 마르타(파올라 가예고 분)를 승객으로 태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요량으로 국도 대신에 지름길을 선택한 블라스코는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달리다 길가에 추락한 정체불명의 비행체와 괴생명체를 목격한다. 두려움에 쫓겨 그곳을 떠난 블라스코는 급히 차를 몰다가 그만 도로에 서있던 여자를 치는 사고를 일으킨다. 일행이 충돌한 여자를 살펴보던 중 갑자기 그녀가 일어나 공격하기 시작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덴 ‘로드 무비’ 만큼 적절한 장르가 없다. 또한, 상반된 캐릭터를 생존이란 공동 목표 아래 함께 모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포 장르가 ‘밀실 공포물’이다. 영화 <더 패신저>는 낯선 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로드 무비(여행길)와 밀실 공포물(승합차)을 적당히 섞었다. 공동 연출을 맡은 라울 세레소 감독과 페르난도 곤살레스 고메스 감독은 시체스 영화제에 가기 위해 합승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차 안에서 흑인을 혐오하는 노인이 소란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서 <더 패신저>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밝힌다.
▲ 영화 <더 패신저>의 한 장면 |
ⓒ 부천판타스틱영화제 |
자동차 안에서 벌어지는 1막은 운전기사와 승객(passenger)들이 충돌이 일으키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는 블라스코, 마리엘라, 리디아, 마르타를 주인공으로 삼아 트라우마, 가족 갈등, 여성 혐오, 세대 문제, 인종 차별까지 다양하게 건드린다. 외계에서 온 승객(passenger)인 괴생명체와 마주친 이후를 다룬 2막은 생존 게임을 그린다. 남성 성기(에이리언과 무척 흡사하다)를 닮은 괴생명체의 형체와 끈적거리는 점액은 그 자체로 소름 끼친다. 그렇게 3막까지 내달린다.
영화의 핵심 인물은 블라스코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은 복수를 원한다"고 주장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을 내뱉으며 성희롱과 인종 차별도 일삼는 인물이다. 블라스코가 모는 승합차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으며 내부에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브이>의 스틸 사진이 붙어있다. 이것은 레트로일뿐만 아니라 그가 ‘과거’에 머문 인물임을 상징하고 있다.
▲ 영화 <더 패신저>의 한 장면 |
ⓒ 부천판타스틱영화제 |
<더 패신저>는 독창성은 떨어질지언정 유쾌한 즐거움과 장르적 재미는 확실히 보장하는 작품이다. 장르의 팬이 원하는 긴장감, 피, 점액, 폐소 공포, 신체 훼손, 괴물, 추격전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장르를 잘 버무렸고 그 안에 적절한 수준으로 사회적, 문화적 이슈를 녹인 영리함도 갖췄다. 특수 효과, 촬영, 조명, 편집 등 기술적인 면에서도 저예산 영화치곤 완성도가 상당하다. 자동차 안과 바깥, 어두운 숲, 외진 주유소 등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더 패신저>는 오는 17일까지 부천에서 열리는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상할 수 있다. 부천 방문이 어려운 관객을 위해 같은 기간 동안 웨이브에서 온라인 상영도 가능하니 현대 스페인의 저예산 장르 영화의 현 주소를 확인하고 싶은 분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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