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테러 암시글.. '협박죄' 경찰의 고민

조성필 2022. 7. 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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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심 유발이 관건.. 범죄 입증 까다로워
대법 "해악 고지만으로 범죄 성립" 판결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조성필 기자, 유병돈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유세 연설 중 총격으로 사망한 이튿날 새벽 국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테러를 암시하는 글이 올랐다. 게시글엔 "서울 관광하러 갈 것인데 어디가 구경하기 좋으냐, 일단 용던(용산)부터 갈까 생각 중이다", "아직 6발 남았다" 등 내용이 담겼다. 아베 전 총리 저격 도구로 알려진 산탄총에 관한 언급도 있었다. 해당 게시글을 올린 40대 남성은 자신에 관한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경찰에 자수했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이 남성에 대해 협박 미수 혐의로 입건하고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신병 처리 방향을 결정하지 못했다"며 "검찰 송치 여부는 좀 더 조사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 사건은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과 시점이 맞물려 주목받았으나, 윤 대통령에 대한 테러를 암시하는, 유사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 5월 윤 대통령 취임식장을 폭하겠다는 글을 한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린 20대 남성이 시작이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인 5월 9일 오후 "내일 취임식에 수류탄 테러하실 분 구합니다"란 글을 올리며 일제감정기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언급했다. 그는 다음날 경찰에 붙잡혔다. 6월 2일에는 윤 대통령 자택을 테러하겠다는 게시물을 올린 10대 남성이 경찰에 검거됐다. 대학교 1학년 휴학 중인 그는 네이버 ‘건사랑’ 카페에 "윤 대통령 자택에 테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사건은 모두 경찰이 수사를 진행 중이다. 12일 본지 취재 결과, 경찰은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게는 2달 동안 비교적 간단한 형사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수사가 제자리 걸음에 그치고 이유는 범죄 혐의 입증이 까다로운 데 있다. 경찰은 이들 사건 피의자에 협박, 또는 협박 미수 혐의를 적용해 수사 중이다. 형법상 협박죄는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해악을 고지하는 행위를 구성 요건으로 하고 있다. 이들 사건의 경우는 피의자들이 인터넷상에 올린 글만으로 상대방인 윤 대통령에게 과연 공포심을 유발했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의미다. 이 부분을 판단하기 위해선 윤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데, 경찰로선 미수 단계에도 못 미치는 사건 규모를 고려했을 때 쉽사리 시행에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대통령을 불러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느냐"고 했다.

우리 형법은 독일이나 일본 등 대륙법과 달리 미수범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동법 제286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협박죄의 본질과 관련해선 당사자가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느끼지 않아도 기수가 된다는 ’위험법설‘과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느끼지 않았다면 미수에 그친다는 ’침해법설‘이 대립한다. 이는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는 물론이고, 법원에서도 사건 판단에 있어 엇갈리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앞서 위험법설 손을 들어준 바 있다. 현재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주심을 맡은 200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사건을 심리하며 이처럼 결정했다. 당시 전합의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협박죄 성립되는 데 있어 반드시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까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악을 고지함으로써 상대방이 그 의미를 인식했다면 현실적으로 공포심을 일으켰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구성요건은 충족된다"고 판시했다. 물론 해당 전합 판결에는 침해법설을 채택한 소수 의견도 존재했다. 현행 형법에서 협박죄는 침해범으로서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의 고지가 도달해야 성립된다는 것이다.

지난 5월부터 발생해 경찰에 접수된 여러 윤 대통령에 대한 테러 암시글 사건은 위험법설과 침해법설 사이에서 어떠한 채택 없이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 사건은 각각 인천 미추홀경찰서와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맡고 있다. 어느 경찰서에서든 이 사건에 대해 위험법설 또는 침해법설 가운데 하나를 채택해 수사 결론내린다면, 향후 유사 사건의 가늠자가 될 공산이 크다. 경찰은 조만간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한 뒤 검찰 송치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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