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도 못했다"..하버드·예일 총동창회 임원 휩쓴 한국인
미국 예일대의 전 세계 동문을 아우르는 총동창회에 한국인 임원이 최초로 탄생했다. 주인공은 김영준(65) 변호사. 흥미로운 건 그가 하버드대의 전 세계 총동창회 임원도 역임했다는 것. 한국으로 치면 고려대와 연세대의 총동창회 임원을 모두 거친 셈이다. 예일대 총동창회 임원은 올해 초, 학교 측의 제안으로 지원했다. 그의 출마의 변은 “하버드대 총동창회에서도 일했던 것을 고백한다”고 시작해 “이 경험이 예일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이어진다. 예일대 관계자는 그에게 “하버드와 예일대 총동창회에서 모두 일한 사람은 미국인 중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1974년 경기고 2학년 재학 중,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곡절 끝 예일대 학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본사에서 최근 만난 김 변호사는 “총동창회 임원이 됐다는 건 감투가 아닌 책임이 늘어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나 자신이 여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아 올 수 있었던만큼, 이젠 후배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하버드와 예일 중 어디가 더 각별하냐는 우문에 “둘 다 특별하다”면서도 “학부에선 내 인생의 토대를 쌓았고, 대학원 위주인 하버드에서는 전문가로 성장해가는 교육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그가 손쉽게 예일대 입학허가서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학교와 교사진을 찾아 직접 발품을 팔고, 원하는 공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그 지역에서 가장 월세가 저렴한 원룸을 구해 자취를 했다. 한국에서 받아간 성적증명서의 교련 등은 도움이 안 됐고, 그는 학제가 다른 미국에서 자신의 학업 성취 잠재력을 증명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진심은 통했는지, 그는 예일대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음 문제는 전공 선택. 그는 “당시 아시아계 학생들은 의대 아니면 전자공학과를 택했지만 나는 법에 유독 끌렸다”며 “중학교 시절 누나가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라고 했을 때 ‘누나 웃지마, 나 『법학통론』 사줘’라고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들었던 비키 잭슨이라는 당시 현직 법조인의 강의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고 한다.
그는 “당시 유신독재의 한국에선 투옥된 사람들은 나랏돈으로 밥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있었는데, 잭슨 교수는 ‘무슬림 신자들인 수감자들이 (이슬람교 율법에 따라 도축된) 할랄 고기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논하라는 식의 교육을 했다”고 회고했다. 잭슨 역시 그를 눈여겨봤고, 변호사를 권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로스쿨 재학 중이던) 아들이 ’학교 강의가 어렵다‘고 하길래 교수님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비키 잭슨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인연이 2대로 이어진 셈이다.
그는 졸업 후 미국 유수 로펌에서 성공 가도를 달렸고, 변호사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여러 공익 관련 단체 일을 하며 삶의 외연을 확장했다. 그는 “오늘의 나를 만든 건 내가 모르는 남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도움의 손길을 갈구하는 절실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예일대 총동창회 임원이 된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강조했다. 예일대엔 그와 부인의 이름을 딴 아시아계 학생을 위한 장학금도 있다. 여성 교육에도 관심이 큰 그는 방글라데시에 본부를 둔 아시아여성대학(AUW) 재단에도 적극 관여했다. 영국 전 총리 토니 블레어의 부인 셰리 블레어가 명예 총장이며, 아시아의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예일대 총동창회 임원으로서 포부를 물었다. 그는 “(예일대 캠퍼스 소재지인) 뉴헤이븐에만 갇히지 않고, 보다 넓은 세계를 염두에 두는 학교가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아시아계, 그리고 한국계로서의 시선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 발로 뛰겠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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