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권성동 손 들어줬지만..장제원 불참, 김기현 굳은 표정
사상 초유의 집권당 대표 당원권 정지라는 직격탄을 맞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11일 권성동 원내대표 직무 대행체제에 손을 들어줬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약 2시간에 걸친 의원총회가 끝난 직후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당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발표했다. 결의문에는 “위기 극복을 위해 당력을 하나로 모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에 최선을 다해 함께 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전날만 해도 당내 기류는 오락가락했다. 일부 친윤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조기 전당대회를 개최하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하루 만에 직무대행 체제로 교통 정리됐다. “치밀하게 당헌·당규 해석을 마친 권 원내대표의 판정승”(당 관계자)이라는 평가지만, 오래잖아 친윤계 의원들이 ‘이준석 복귀 불가론’을 내세워 흔들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날 여당의 하루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오전 권 원내대표 주재로 최고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초·재선 및 중진 의원들이 각자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오후 3시부터는 의총에서 최종 논의를 이어갔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대행 체제를 거듭 강조하며 선수를 쳤다. 그는 “전당대회를 할 방법이 당헌·당규상 없다”며 “최고위원 전원도 '당원권 정지는 당 대표의 궐위가 아니라 사고라는 당 기획조정국의 보고가 맞다'고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대행 체제를 6개월이나 지속하는 것이 무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누구든 당헌·당규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이 대표를 겨냥해서는 승복을 요구했다. 권 원내대표는 “대표도 독립기구인 윤리위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며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는 당원과 국민의 승리이고 특정인의 인기나 개인기로 이뤄낸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선거 승리에 공을 세운 당 대표를 토사구팽한다는 이 대표 측 주장을 반박하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초선의원 모임에는 42명이 모였다. 일부 의원들이 “이 대표가 하루빨리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조기 전대를 주장했지만, 대체로 대행 체제에 힘을 싣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종성 의원은 모임 뒤 “윤리위 결정을 존중하고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재선 의원들도 대행 체제를 동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3선 이상 24명이 모인 중진의원 모임에서는 다수 의원이 대행 체제에 손을 들었지만, 조기 전대를 요구하는 주장도 있었다. 5선의 조경태 의원은 “이 대표가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새 지도부 구성을 주장했고, 4선의 홍문표 의원도 “이 대표의 거취 정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의원도 모임 참석 뒤 “궐위가 아닌 사고라는 기조국의 입장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총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비공개 의총에서 다수 의원이 대행 체제에 힘을 실은 가운데 소수 반대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 초선의원은 “비대위 체제로 가지 않는다면 이 대표가 자신이 당 대표라고 주장하며 방송 등에서 인터뷰하고 다니는 것을 막을 수 있겠나”라고 우려를 표했다. 다른 의원은 “대행 체제가 6개월 동안 이어지고, 이 대표가 버티기에 들어가면 갈등만 연장되는 셈”이라며 조기 전대를 주장했다.
이 대표를 두고 “당을 위해 결자해지 해야 한다”(중진의원)며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하태경 의원이 “이 대표는 선거 승리에 공을 세웠고, 국민과 20·30세대의 지지를 이끌었다”고 두둔했지만, 이외에 이 대표를 엄호하는 발언은 없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다만 이 대표 징계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김웅 의원은 비공개 의총 시작 전 “짜고 치는 거냐”고 불만을 표하면서 의총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결국 2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를 실시하기로 의총이 정리되자 조기 전대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기현 의원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의총장을 빠져나왔다.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 온 친윤계 핵심 장제원 의원은 중진 모임과 의총 모두 불참했다.
당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가 당 기조국의 해석을 근거로 궐위가 아닌 사고로 인한 대행 체제임을 얄미울 정도로 깔끔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반박하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대표 궐위(직이나 관직 따위가 빔) 시 전당대회를 개최할 수 있지만, 사고 시엔 원내대표가 직무를 대행하게 돼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직무대행 체제가 닻을 올렸지만, 조기 전대의 불씨는 사그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대행 체제는 일시적”이라며 이 대표의 복귀에 반대하는 친윤계 및 중진들이 적지 않다. 이 대표 거취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도 변수다. 익명을 원한 중진의원은 “대행 체제가 6개월이나 이어지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라도 조기 전대로 넘어갈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뒤 대행 체제가 언제까지냐는 질문에 “6개월이지만 정치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저녁 방송 인터뷰에서는 “이 대표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앞으로 지도 체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의 당원권이 정지된 순간 차기 당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윤리위 처분에 불복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준석 대표는 난처한 상황이 됐다. 이날 당내에선 직무대행이냐 조기 전대냐를 놓고 이견이 표출됐지만, 이 대표 징계가 부당하다는 의견은 극소수였다. 공식 일정을 잡지 않고 잠행에 들어간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와 의총에 불참했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이날 라디오에서 “이 대표가 사퇴할 뜻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 제가 10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 관계자는 “이 대표가 지지층을 등에 업고 여론전을 펴면서 가처분 신청을 할 순 있지만, 눈앞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전에 이 대표와 통화를 했다”며 “이 대표에게 ‘윤리위 결정은 난 거고, 지금은 좀 인내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고 밝혔다. 윤리위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오 시장은 지난 6일 “이 대표가 중도 사퇴하는 일이 벌어지면 당으로선 득보다 실이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민지ㆍ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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