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대명' 속 97그룹 단두대 매치.."2위면 차기, 컷오프면 위험"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차기 당 대표에 도전장을 내민 97그룹(90년대 학번, 70년생) 4명이 본격적인 2위 싸움에 돌입했다. 강병원·강훈식·박용진·박주민(가나다 순) 의원이 그들이다. 97그룹의 ‘반이재명’ 프레임이 끝내 이 의원 전대 출마를 막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이제부턴 “97그룹 사이에서 2위를 가리는 ‘단두대 매치’가 시작됐다”(중진 의원)는 말이 나돈다. 특히 본선 진출자 3명을 가리는 29일 예비경선(중앙위원 표결 70%·여론조사 30%)에서 탈락할 경우 향후 당내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위험성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의원과 어설프게 각을 세웠다가 득표가 저조하면, 차기 총선 공천마저 위태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이들이 중앙일보 통화에서 밝힌 각자의 당대표 도전 기치는 각각 ▶미래(강병원) ▶통합(강훈식) ▶떳떳한 민주당(박용진) ▶혁신(박주민)이었다.
‘친노·친문’ 기반 강병원…‘개혁 그룹’ 지지 강훈식
지난달 29일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강병원(서울 은평을) 의원은 이날 친노무현계 원로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만났다. 그는 지난 3일 첫 공식일정으로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친노무현계와 친문재인계 표심을 확실히 하려는 의도다. 강 의원은 친문재인계 의원 연구모임인 ‘민주주의 4.0 연구원’의 지지도 얻고 있다.
인지도면에선 약한 강 의원이지만 여전히 친노·친문의 당내 비중이 작지 않은 만큼 중앙위원 표결에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게 강 의원 측 계산이다. 다만 민주당 관계자는 “친이낙연계인 설훈 의원이 출마하면 지지층 표심이 분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계파 성향인 강훈식 의원(충남 아산을)은 이날 KBS라디오에서 “민주당은 현재 이재명의 시간이 아닌 혁신과 변화의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대선에서 선대위 전략본부장으로 이 의원을 도왔지만, 당 대표 선거에 나서면서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강 의원은 당 대표 후보군 가운데 유일한 ‘비(非)수도권’ 후보인 장점도 있다.
강 의원은 지난 5일 부산권 인사인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후원회장으로 영입하며 영남권 지지를 확보했고, 9일엔 충남 천안에서 황규영(93) 원로당원을 만나기도 했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개혁성향 의원 그룹인 ‘더좋은미래’나 86그룹들이 강 의원을 밀고 있다. 강 의원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의원만 30명 이상이어서 컷오프 통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민심’ 겨냥 박용진…‘진보 색채’ 내건 박주민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을 완주한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은 최근 각종 현안마다 윤석열 정부와 날을 세우고 있다. 박 의원은 BBS라디오에서 “전임 대통령 임기 말보다 못한 국정운영 지지율을 임기 시작 두 달 만에 받아놓고도 ‘여론조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 말에 국민들이 불안해한다”며 “민주당이 분명하게 비판·견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선 “응원한다”고 했다.
그는 조국사태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강행 국면에서 당에 쓴소리하며 중도층에게도 인지도를 쌓아왔다. 그래서 박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심에 다가가는 전략으로 승부를 볼 것”이라며 예비경선 국민 여론조사(30%)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다른 세 사람보다 다소 늦은 지난 8일 당권 도전을 선언한 박주민 의원은 이날 언론인터뷰에서 “민주당만의 가치를 관철하고 돌파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명한 진보 색채를 내걸고 컷오프를 뛰어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 여론조사에 강성 당원들이 대거 투표에 나서면 박 의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이번 여론조사는 지지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만큼, 박 의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의 숙제는 이재명 의원과 지지층이 겹치는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지다. 이 의원이 많은 표를 얻을수록 박 의원 표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내에선 “박 의원은 ‘이재명의 페이스 메이커’일 수도 있다”(재선 의원)는 말도 나온다.
만약 네 사람 중 두 사람이 컷오프를 통과하면 단일화를 시도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친문계 재선 의원은 “네 사람 중 일부는 단일화에 동의한 상태다. 이재명 대 반이재명의 1대1 구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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