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쇄신은 없어.. '비호감1위 정의당', 그게 가장 무서웠다"
[박소희 기자]
▲ 정의당 여영국 대표와 이은주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6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 참석,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정의당 대표단은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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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다음이다. 지도부 총사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 이후 정의당의 행보는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거대 양당이 내부 권력다툼으로 시끌시끌한 상황에는 전혀 못 미치는, 너무나도 '차분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정의당이 소란스러워졌다. 지난 5일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이 페이스북에 "정의당 2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강은미, 류호정, 배진교, 이은주, 장혜영) 사퇴권고 당원총투표를 대표발의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그는 "지방선거 이후 한 달 여간 당의 각종 회의와 간담회, 그리고 당원들의 1인 시위 등을 통해 비례대표 총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며 "비례대표들은 이 요구를 피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며칠 뒤 비대위는 이 일이 '당원소환'이라며 '투표 불가'를 결정했다. 정 전 대변인은 '징계성격의 당원소환과 사퇴권고 당원총투표는 다르다'며 반박했고, 이의제기는 받아들여졌다. 투표 발의를 위해선 오는 8월 7일까지 910명(당권자의 5%)의 서명이 필요해 그는 서명을 받고 있다. 정 전 대변인은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조용한 쇄신은 없다"며 "국민들에게 '정의당의 몸부림'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정호진 전 정의당 수석대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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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례대표 국회의원 사퇴권고 당원총투표 발의를 준비 중이다.
"극약처방이자 고육지책. 그리고 정말 읍참마속의 심정이다. 한 달 정도 고민했다."
-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지방선거 끝나고 난 뒤 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 지역위원장 연석회의 등에서 이야기가 나왔다더라. 사실 어느 정당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정의당으로선 비례대표 사퇴를 얘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당사자나 비대위에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제가 당원총투표를 제안하기 직전에 나온 의원단 쇄신안에도 한 마디 언급이 없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비대위가 구성돼서 너무나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러다 9월 27일 당직선거를 치를 테고.
우리가 밑바닥까지 갈아엎겠다고 지방선거 끝나자마자 지도부 총사퇴를 했는데, 말로는 혁신과 쇄신을 얘기하면서 왜 아무런 움직임은 없을까? 과연 이게 맞나 싶었다. 이 상태로 당직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 후보들이 나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텐데, 그런다고 돌아선 국민들이 우리에게 눈길을 줄까? 그러다가 2024년 총선 때 더 처참한 선거 결과를 받는다면? 그런 결과에 직면해서 후회하기 전에 일단 당내에 울림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가까운 이들에게 의견을 구했을 때 '나서지 말라'고 한 경우도 있다. 제가 너무 힘들어질까봐 걱정스럽다며. 그런데 어떤 분은 그러더라. '안 되더라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하는 게 정치하는 사람의 책무 아니냐.' 저도 이 과정 자체가 순탄할 거라 생각하지 않고, '정호진이 당의 분란을 만드는 건 안 맞지 않냐'는 얘기도 이해한다. 하지만 '조용한 쇄신'은 없다. 쇄신이나 혁신은 늘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 고통스럽더라도, 비례대표 전원 사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인가.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 그런데 제가 가장 위협적이라고 느꼈던 건, 20대 국회까지만해도 정의당은 대개 정당 호감도, 후원금에서 1등이었는데 지금은 호감도 꼴등, 후원금도 1등이 아니다(2022년 4월 한국갤럽 조사 결과 '호감 가지 않는다'는 답변 비율은 정의당 63%, 더불어민주당 59%, 국민의힘 52%순이었음 - 기자 주). 후원금은 그렇다 쳐도, 비호감 정당이 되어버렸다. 저는 이게 가장 무서웠다."
▲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및 제8회동시지방선거 평가: 정의당의 성찰과 혁신’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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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이 왜 비호감 정당이 됐을까.
"여러 가지 따져봐야 한다. 제가 당원총투표 제안 글에도 남겼지만, 정의당이 이렇게 되기까지 모든 원인이 비례대표들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대중정당은 노선과 정책, 대표정치인 세 가지가 있는데, 일반 국민들은 정의당의 면모를 대표정치인으로 받아들인다. 비례대표는 결국 정의당의 상징이다. 지방선거 후 지도부가 즉각 사퇴하긴 했지만, 죄송한 얘기인데, 우리 대표단을 국민들이 잘 아는가? 반면 우리 당에서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크고 권한을 행사한 분들은 비례대표 아닌가. 그런데 왜 그들은 정치적 책임을 피하고 있는가."
- 정치적 책임을 묻는 방식이 꼭 사퇴여야 하냐는 이들도 있다.
"지방선거 끝나고 많은 분들이 '다 내려놓고 밑바닥부터 다시 당을 재건하자'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비호감 1등'이 된 정의당이 내려놓을 수 있는 자산이 무엇일까. 저는 비례대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새롭게 밟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창당부터 당명, 당헌당규 다 바꾸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동의한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정의당이 이렇게까지 몸부림치는구나'라고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 '상징성'을 따지면, 비례대표 1·2번인 류호정·장혜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 간 당의 정체성, 노선 관련 논쟁이 두 의원을 중심으로 불거지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이번 당원총투표 추진이 두 사람을 노린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그랬다면 제가 두 명만 콕 집어서 이야기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비례대표 5명 전체에 대한 사퇴권고다."
- 정치적 책임을 동일하게 나눠서 묻는다는 뜻인가.
"그렇다. 우리 의원들의 책임이다. 비례 1·2번이 청년 할당 때문에 당원들로부터 정말 적은 지지를 받고도 된 것은 당의 결정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모두가 당원에 의해서 선출된 분들 아닌가. 그 책임을 비단 류호정·장혜영 의원에게만 지우겠다는 게 아니라 비례대표 전체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만 노렸다는 이야기는) 좀 이해가 안 간다."
▲ 3월 10일 오전 국회 정의당 대표실에서 열린 20대 대통령선거 정의당 심상정 후보 선대위 해단식에서 심 후보가 열심히 뛰어준 당원들과 성원해준 국민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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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누구나 '정의당' 하면 떠올리는 대표정치인은 심상정 의원 아닌가.
"'사실 설계자는 심상정'이라는 말이 나오더라(웃음)."
-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어쨌든 '왜 심상정 의원의 책임은 묻지 않는가'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도 왜 고민을 안 했겠나. 심상정 의원은 왜 책임이 없는가. 그런데 심 의원은 지역구 유권자들이 뽑았고, 비례대표는 우리 손, 당원들의 손으로 선택했다. 저희는 비례대표는 '당원들이 파견한 공직자'라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총사퇴 권고 대상을) 비례대표로 한정했다. 그리고 만약 총투표가 성사되고, 가결된다면, 저는 심 의원도 마땅히 본인의 거취 등을 이야기하리라고 믿는다. 그만큼의 책임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제가 사퇴를 '권고'한 데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의 권한과 책임만큼 그들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담겼다. 지난 2년 동안 다들 고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판단의 최종 종착점은 본인들이 스스로 판단하라는 뜻으로 '사퇴 권고'를 했다."
- 총투표 가결 후 비례대표 전원이 사퇴하더라도 승계 문제가 남는다. 후순위 후보들이 이어받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셈'이란 지적도 있고, 혹자들은 '정호진 본인이 후순위라서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당원총투표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이후'까지 말씀드리는 것은 많이 앞서나가는 일이다. 다만 저는 총사퇴가 이뤄질 경우 기존 비례대표 명부 후보들이 전원사퇴하는 방법도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놔야 한다는 쪽이다. 그리고 저 역시 '내 욕심으로 보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걱정마라. 정호진한테 안 돌아간다'더라(최종 순번 17번). 또 만약 제가 그럴 생각이었으면 왜 대표발의자로 나섰을까? 그럴거면 차라리 뒤에서 움직였다. 저는 그럴 일이 없다고 보지만, 혹여나 제가 순위가 된다면 저는 비례대표 명부에서 사퇴하겠다."
▲ 정의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된지 한달이 지난 가운데 이은주 비대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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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원총투표에 돌입하려면 8월 7일 오후 6시까지 당권자 5%에 해당하는 910명의 동의를 모아야 한다. 지난 9일부터 서명이 진행 중인데 어느 정도 참여하고 있는가.
"지금 보니까(오전 10시경) 140명 정도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부분이, 현재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데 사실 거의 실명 서명이다. 본인 아이디로 로그인한 뒤 실명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에 (당내) 활동가들은 못한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을 보면 제가 기대한 것보다 많은 당원들이 참여했다. 나쁘지 않은 시작 같다."
- 어쨌든 정의당이 힘들어진 원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래도 '꼭 이것만은 바뀌어야 한다'고 여기는 대목을 꼽는다면.
"당이 정체성과 관련해서 치열하게 한 번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 정의당을 가리켜 '민주당 2중대'라고도 하던데, 저는 우리가 우리의 중심을 굳게 갖고 간다면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듣든 '국민의힘 2중대' 소리를 듣든 직진해서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의당이 혼란스러웠던 이유는 스스로 중심을 분명히 두지 않다보니 '민주당 2중대'라고 하면 갑자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국민의힘 2중대'라고 하면 갑자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아쉬움이 큰 부분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의제를 제시하는 데에 우리가 게을렀다는 점이다. 이건 진보정당의 존재이유이자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였다.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살림살이 나아졌냐'면서 무상급식 등을 공약으로 내놨다. 그때는 '빨갱이'라고들 했는데, 이제 무상급식은 상식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정의당은 가십만 만들었다. 사실 처참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뜨거운 논란 속에서 또 하나의 집단지성이 모이고, 정의당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정의당에는 아직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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