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차이나 드림'서 '차이나 쇼크'로..삼전 직원 급감·K뷰티 고전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탈(脫)중국’의 파고가 거세졌다. 올해 한중수교 30주년이 무색할 정도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기조를 ‘안미경세(安美經世·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세계와)’로 확실하게 틀었다.
탈중국 기조가 극명하게 드러난 건 최상목 대통령 경제수석의 발언이었다. 그는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며 “지난 20년간 우리가 누려왔던 중국을 통한 수출 호황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며 탈중국을 언급했다. 또 “우리 경제가 지금 직면하는 근본 문제로 돌아가보면 ‘성장동력의 확충’이라고 할 수 있다”며 중국 대안 시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나토의 중국 견제에 가세한 발언이지만, 한국의 제1수출국이 중국인 현 상황에서 부담스러운 발언일 수밖에 없다.
정부의 기조 변화로 재계도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박근혜정부 시절 결정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미 중국 비즈니스가 쪼그라진 상태에서 향후 암운은 더 짙게 드리워질 듯 보인다.
삼성전자 갤럭시가 중국에서 ‘폭망’ 수준의 실적을 기록한 것이 한 사례다. 2013~2014년만 해도 삼성전자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20% 이상 점유율을 보였다. 그러나 사드 배치 이후의 반한(反韓) 감정 확산, 중국 브랜드 급성장 등으로 2019년부터 1%대로 몰락했다. 그 결과, 30%가 넘었던 삼성전자 점유율은 20%대에서 10%대로 추락 중이다.
스마트워치도 사정은 비슷하다. ‘애플워치’는 중국에서 무서운 기세로 파고들었다. 반면 삼성전자 갤럭시워치는 존재감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스마트워치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전자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도 ‘중국의 편애’다. 시장조사 업체 캐널리스(Canalys)에 따르면, 애플은 1분기 중국 손목용 웨어러블기기(스마트워치·스마트밴드) 시장에서 8% 점유율로, 4위를 차지했다. 상위 5개 기업 중 애플만 유일하게 출하량이 늘었다. 중국 1분기 스마트워치 시장이 주춤하는 와중에도 전년 동기 대비 20%나 더 팔렸다. 반면 지난해 8월 출시된 ‘갤럭시워치4’는 글로벌 출하량이 늘었지만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삼성전자는 지난 5년간 중국 현지 임직원 수를 절반 넘게 줄였다. 반한 물결, 미·중 무역 분쟁, 중국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공급망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다.
삼성전자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 현지 법인에 고용된 인원은 총 1만7820명이다. 5년 전인 2016년(3만7070명)과 비교하면 51.9% 감소했다.
2016년과 2017년 3만명대 중반을 유지하던 중국 임직원 수는 미·중 무역 분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2018년 2만9000명대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이어 2019년에는 2만명대 초반, 2020년과 2021년에는 1만명대 후반으로 줄었다. 중국 임직원 급감은 2010년대 이뤄진 현지 생산거점 효율화 영향도 크다. 삼성전자는 2018년 5월 선전 통신 공장을, 그해 말 톈진 스마트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어 2019년 후이저우 스마트폰 공장, 2020년 7월 쑤저우 PC 생산설비를 철수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중국 생산기지는 쑤저우 가전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 공장, 시안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전부다. 삼성전자 측은 “중국 생산라인이 이전과 비교해 줄어들며 자연스럽게 현지 법인 고용 인원도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축소는 중국 현지 제조시설로 얻을 수 있었던 기존 이점이 다수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공장이 남아 있는 반도체 부문에서의 변화도 감지된다. 미·중 패권 다툼이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사업에서 강도를 더해가는 동시에,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 세계적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올해 하반기 평택3라인 가동을 앞뒀다. 또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20조원을 투자한 제2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세계 정세와 관련 깊다. 중국 현지 임직원 절반이 줄어드는 기간에 국내 임직원 수는 9만3000명에서 11만1126명으로 20% 가까이 증가했고, 북미·중남미 지역에서는 2만5000명대가 유지됐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현대차·LG도 사업 축소
▷사드 이후 미중 갈등·코로나까지
중국 사업을 줄이는 기업은 삼성전자뿐 아니다. 사드 사태 이후 가장 타격이 가장 컸던 그룹은 롯데였다. 사드 부지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노골적인 보복을 당했다. 유통·식품 등 전방위적으로 중국 내 사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롯데는 2016년 일찌감치 탈중국으로 기조를 변경했다.
현대차그룹도 사드 사태 이후 중국 내 점유율이 급락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난해 베이징1공장을 매각했다. 중국 둥펑자동차그룹은 기아와 합작해 ‘둥펑위에다기아’를 설립한 지 20년 만에 결별을 선언했다. 현대차그룹의 최근 임원 인사에서는 중국 사업을 총괄하던 이광국 사장이 고문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는 현대차그룹 중국 유한공사(HMGC)에서 총경리를 맡고 있는 이혁준 전무가 임명됐다.
SK그룹 중국 지주사인 SK차이나의 경우 지난 8월 SK렌터카 지분 100%를 중국 토요타에 500억원에 매각하며 탈중국을 선언했다. 중국 렌터카 시장에 진출한 지 10년 만이다. SK는 앞서 지난해 6월 베이징 SK타워도 매각하는 등 점차 중국 사업 비중을 축소하는 분위기다. 과거 SK는 중국 각 지역에 ‘지역 전문가’를 파견하며 중국 시장 연구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최근 SK그룹 내에서 중국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사라졌다.
LG는 지난해 80억위안(약 1조3900억원)에 베이징 트윈타워를 매각한 한편, LG전자 쑤저우 쿤산 생산 법인을 정리했다. ‘K소비재’ 부활 기대감도 사라졌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중국에서 한국 화장품이나 의류 등 소비재가 다시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의 ‘탈중국’ 흐름이 구체화하며 업계의 시름이 짙어졌다. 최근 대표적인 중국 소비주인 국내 화장품과 패션주가 줄줄이 하락하고, 투자 토론방에서는 “윤석열정부에서 중국 소비주에 투자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글이 난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美 기업에도 기회의 땅이었지만
▷아마존·이베이·구글 철수
미국 기업의 탈중국 현상도 거세다. 지난 수십 년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온 중국은 미국 기업에 기회의 땅이었다. 중국은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중산층 규모가 3.1%에서 50.8%로 오를 정도의 파괴력이 컸다. 이베이·아마존·야후·구글 등 미국 기업들은 속속 중국 진출을 선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2022년도 현재, 중국 땅에서 살아남은 미국 기업은 많지 않다. 이베이는 2003년 진출했다가 3년 만인 2006년 철수했다. 이외에도 아마존(2004~2019년), 야후(1999~2021년), 구글(2006~2010년) 등은 눈물을 머금고 중국에서 빠져나왔다.
인터넷 기업뿐 아니라 제조사도 공급망을 조정하고 있다. 당초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탈중국이나 리쇼어링(reshoring·본국으로의 회귀)이 약해질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경제 수도’ 상하이에서의 2개월 ‘도시 봉쇄’와 이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마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대만 침공 가능성 등으로 되레 중국과의 거리두기는 더 심해졌다.
주요 제품 95%를 중국에서 만들어온 애플은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생산 차질을 겪은 이후 인도와 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생산거점 다변화에 나섰다. 위탁생산 업체에 중국 외 지역 생산량을 늘릴 것을 요청하는 식이다.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폭스콘은 이미 인도에 아이폰 공장을 완공해 아이폰을 생산한다.
미국 대표 반도체 생산 업체 인텔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두 개의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다. 또 대만의 TSMC도 생산시설을 한곳에 짓고 있다. 블룸버그는 앨라배마주 베이 미네트, 아칸소주 오세올라, 켄터키주 브랜던버그 등 미국 남부에는 알루미늄·철강 공장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흐름은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건설 데이터 업체 ‘닷지 건설 네트워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국의 신규 생산시설 건설은 116% 급증했다. 같은 기간 미국 내 모든 건설 프로젝트 증가율인 10%를 훨씬 웃돌았다. 미국 기업이 생산 기반 시설을 본토로 옮기는 중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UBS가 지난 1월 미국 내 기업 최고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0% 이상이 중국 내 생산시설을 중국 밖으로 이전 중이거나 그럴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 또한 80%는 미국 귀환을 고려 중이라고 답했다.
▶삼성전자 협력사 인도로 이동
▷K뷰티 이끈 화장품 기업, 북미 집중
급격한 탈중국화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제조 기반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은 뚜렷하다. 최근 삼성전자 협력사 중 중국 현지 생산 공장을 축소하고, 인도로 옮기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베트남 스마트폰 생산 물량을 줄여나가고 인도 스마트폰 생산 물량을 늘린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발맞춰 삼성전자 협력사도 생산기지를 인도로 옮겨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생산법인은 국내 구미를 포함해 전 세계 7곳이다. 업계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지역별 생산 비중은 베트남 50~60%, 인도 20~30%, 브라질 10~15%, 구미 3~5%, 인도네시아 3~5%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코로나19로 베트남 지역이 봉쇄되면서 생산이 중단되는 일을 겪은 바 있다. 이런 경험으로 삼성전자는 지역별 생산 비중을 30%가 넘지 않도록 분산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전자가 인도를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다. 인도와 중국 인건비는 5~6배 차이가 난다는 게 업계 관계자 얘기다. 중국이 월 250만~300만원이라면, 베트남이 월 80만원, 인도가 월 50만원 수준이라는 것.
국내 화장품 업계는 중국 불확실성을 벗어나기 위해 북미 시장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지난해 한국 화장품 수출액 가운데 중국 비중은 53%에 달했다. 하지만 그 비중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 화장품 수출액은 8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31.5% 증가하며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최근 북미에서는 ‘오징어 게임’ 등 K컬처가 주목받으며 한국 화장품도 덩달아 매출이 늘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북미 사업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60% 이상 늘어났다. 아모레는 북미 시장에서 모든 브랜드가 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중 설화수와 라네즈가 고성장하며 실적을 이끌었다. 한국콜마도 5월 미국콜마로부터 ‘콜마(KOLMAR)’ 글로벌 상표권을 인수했다. LG생활건강은 4월 북미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을 인수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K뷰티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북미 시장 개척은 필수”라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7호 (2022.07.13~2022.07.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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