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시 성장률 저하 우려..기업들 "생산비용↑·이자 부담 이중고"
이르면 7월 말 한미 정책금리 역전..성장률 둔화 불가피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역전이 임박한 가운데 7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에 나설 경우 이미 생산비용 증가·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11일 '한미 정책금리 역전 도래와 시사점'보고서를 통해 "한미 정책금리가 이르면 7월말 역전될 가능성이 있다"며 "고공행진 중인 국내 물가와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인상이지만 기업과 가계에도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SGI는 "금리역전 자체가 반드시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성장 둔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대외 경제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하게 돼 과거보다 고통이 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미 원자재가격 상승·임금인상 압력 등으로 체력이 약해진 기업들이 견딜 수 있도록 금리인상 속도 조절을 비롯해 법인세 인하 등 조세부담 완화 정책이 함께 시행 될 필요가 있다는 게 SGI의 설명이다.
기업들 생산비용 증가에 이자 부담마저 높아지며 이중고
SGI는 국내 정책금리 변동 시 주목해야 할 요인으로 단기적 경기 위축, 기업 금융 부담, 외국인자금 유출 등을 꼽았다.
우선 보고서는 단기적 경기 위축에 대한 가능성을 진단했다. SGI 분석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정책금리를 높일 경우 경제성장률에서 일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이를 '희생률(sacrifice ratio)'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 하락에 수반되는 성장 손실의 비용을 뜻한다.
SGI가 과거 물가상승률 둔화기 바탕으로 연구해본 결과 물가상승률 1%포인트 하락시키려면 경제성장률을 0.96%까지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선진국들의 평균 희생률(0.6~0.8)에 비해 다소 높아 국내 경제가 금리인상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금리인상 시 기업 금융부담 증가를 우려했다. SGI는 코로나 이후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크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국내 한계기업 비중은 16%로 코로나 위기 이전인 2019년 12.4%보다 약 3.6%포인트 높아졌다.
이어 보고서는 "한은이 빅스텝에 나설 경우 기업들의 대출이자 부담 규모는 약 3조9000억원이 늘어날 것"이라며 "그간 장기화된 저금리 기조에 익숙해진 기업들이 아직 코로나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한 채로 기업대출금리가 인상될 경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금리인상에 따른 영향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게 더 클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는 "중소기업들은 매출 규모가 크지 않고 신용등급이 높지 않아 자금조달 시 주식·채권 발행보다 은행 대출에 크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시 대기업은 1조1000억원, 중소기업은 2조8000억원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국인자금 유출 가능성도 고려사항이다. 보고서는 "과거 한미 정책금리 역전기를 살펴보면 내외금리차가 축소 및 역전되더라도 외국인자금은 채권 중심으로 유입됐다"며 "외국인자금은 양국 간 금리 수준 이외에도 환율, 국내경제 펀더멘털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SGI는 "현재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파르고 원화환율 평가절하 기대심리가 있어 과거 한미 정책금리 역전 시기보다 외국인자금 유출 가능성이 높다"면서 "갑작스러운 외국인자금 유출로 금융과 실물에 부정적 영향 생기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업들 보완책 마련 주문…기업 금융·조세 부담 완화·급격한 자본유출 대비·성장동력 확충
국내경제에서 물가안정이 가장 중요한 이슈지만 물가하락을 유도하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경기둔화, 가계·기업 부채 리스크 확대 등 부작용이 커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거시경제 및 금융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 이외에 추가적인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또 정책적 보완 중 하나로 기업의 금융·조세 부담 완화를 제시했다. SGI는 "최근 기업들이 원자재가격 상승 등 생산비용 부담을 판매가격에 충분히 전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자 부담마저 높아지면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원자재가격 인상을 제품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기업은 15.8%에 불과했다.
이어 "정책금리 변동 시 기업들이 견딜 체력 고려해 속도 조절하고 취약 중소기업 대출에 추가적인 만기연장, 상환유예 등 정부의 금융지원 조치가 지속돼야 한다"며 "주요국보다 높은 법인세율 인하, 투자·상생협력 촉진세 폐지 등 기업들의 조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격한 외국인자금 유출 대비도 주문했다. "미국의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과 국내경제 펀더멘털 약화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며 "현재 외환보유고가 충분한지 점검하고 통화스왑 확충 등 외환건전성 유지 노력 통해 금융불안 가능성 차단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성장동력 확충 필요성을 언급했다. SGI는 "국내경제는 물가안정, 단기적 경기침체 대응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성장동력 높여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국내 잠재성장률은 인구구조 변화 영향으로 지난해 2%에서 2030년 1.5%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금리인상의 부정적 효과를 중장기적인 성장 정책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미래 신산업과 기술혁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기업들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규제시스템의 전반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탄소중립 전환처럼 변하고 있는 글로벌 트렌드를 기업들이 위기 아닌 기회로 인식하도록 인센티브 시스템 마련, 정부의 금융지원 강화 등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김천구 대한생의 SGI 연구위원은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 전반에 방대하고 장기적 효과를 가져온다"며 "통화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경제상황 진단과 경제주체의 체력을 고려한 금리인상 속도 조절, 미래 성장동력 확충 등 다양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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