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 부추기는 가장 안 좋은 습관은…" [헬스조선 명의]
'변비 명의'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태희 교수
배변은 사실 내 의지와 큰 상관이 없다. 장이나 항문은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에 의해 조절된다. 대장이 이제 다 찼다는 신호를 뇌에 보내면 변의를 느낀 우리는 변기를 찾는다. 그러나 변이 잘 나오지 않는 것만큼 사람 미치는 하는 게 또 없다. 하루종일 배가 더부룩해 컨디션이 떨어지는 건 기본이고 3일만 배변을 못 해도 복통을 느낀다. 수개월을 앓았다면 우울증에 따른 변비약 남용까지 겪을 수 있다. 변비는 절대 간단한 질환이 아니다. 생각보다 종류도 많고 그에 따른 치료법도 다양하다. 식이섬유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변비도 있다. 변비의 원인, 증상, 치료법에 대해서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태희 교수에게 물었다.
집안에 쓰레기가 쌓이면 처음엔 불쾌한 감정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파리도 꼬이고 곰팡이도 피면서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 대변도 마찬가지다. 대변을 못 보면 처음엔 단순 불쾌감을 겪다가 가스가 차기 시작하고 복통이나 복부 팽만감을 느낀다. 그러다 장 속에 쌓인 대변이 대장을 막는 장폐쇄으로 이어져 대장이 늘어난다. 대장 내부 유해균들이 늘어난 대장 벽을 통과해 혈관으로 이동하면 패혈증이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대장이 터지는 장 천공이 발생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이상적인 배변 주기는 어느 정도인가?
주당 3회에서 9회 정도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주관적인 느낌도 중요하다. 3~9회 화장실에 갔다고 하더라도 대변을 보고 난 후 잔변감이 있다면 변비일 가능성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변비를 앓는 비율이 높다. 특히 변비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나?
여성 변비 환자가 많은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여성호르몬이 장운동을 느리게 만든다. 또 분만하게 되면 골반저근육이나 직장이 구조적으로 변하는데 이게 변비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성별로 나눌 순 없지만 체중 감량을 하려고 식사량을 낮추면 대변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노인도 취약하다. 당뇨병이나 고혈압, 파킨슨병과 같은 기저질환뿐만 아니라 이를 치료하기 위한 약도 변비의 원인이 된다. 또 노인은 치아를 상실해 음식물을 잘 씹지 못하거나 식욕이 떨어져 식사량이 적다.
변비는 특별한 원인이 없는 특발성 변비와 약물, 기저질환, 생활습관 등에 의한 이차성 변비로 나뉜다. 특발성 변비를 앓는 환자들이 자주 호소하는 6대 증상이 있다. 먼저 주당 대변을 보는 횟수가 3회 미만일 때다. 두 번째는 변을 볼 때 과도하게 힘을 주는 것. 세 번째는 잔변감, 네 번째는 단단한 변, 다섯 번째는 항문폐쇄감, 여섯 번째는 수조작이 필요한 경우다. 수조작이란 손가락으로 대변을 직접 파내거나 대변이 잘 나오도록 회음부를 눌러주는 걸 뜻한다. 6가지 증상 중 2가지 이상을 겪고 있다면 변비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특발성 변비와 이차성 변비가 있다. 원인이 불분명한 특발성 변비는 다시 세 가지로 나뉜다. 서행성 변비, 배변 장애형 변비, 정상 통과형 변비다. 서행성 변비는 말 그대로 장운동이 느리다는 특징을 갖는다. 서행성 변비를 앓는 사람들은 변의를 잘 느끼지 못하므로 일주일, 열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배변 횟수 자체가 적다.
배변 장애형 변비는 변의를 느끼긴 하는데 막상 변기 위에 앉으면 힘을 많이 줘야 하는 변비다. 대다수 환자가 항문 막힘을 호소하며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경향이 있다. 정상 통과형 변비는 장통과나 항문 열림은 정상인데 장운동이 너무 격렬하다는 특징이 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연관성이 있으며 흔히 복통이 관찰된다.
환자의 병력, 즉 증상과 몸 상태에 대한 소견으로 진단한다. 그런데 나이가 50세 이상이거나 대장암 같은 기질적인 질환이 의심되는 경우 대장내시경이나 복부 CT를 적용한다. 변비 정도가 심환 환자에게는 변비기능검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대장과 항문의 기능을 검사해 변비의 병태생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먼저 대장의 운동성을 평가하기 위해 바이오마커를 활용한다. 환자가 표지자가 든 알약을 삼키면 표지자의 이동 시간을 통해 장의 운동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대장을 완전히 빠져나가는 데 36시간 이상 걸린다면 서행성 변비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항문 기능 평가다. 사람이 배변할 땐 복압이 증가하고 항문조임근은 이완한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원활한 배변은 어렵다. 그리고 이 과정에 여러 생리적 기능들이 관여하는 만큼 검사 방법도 다양하다. 항문직장내압검사, 풍선배출검사, 배변조영술 등이 있다. 여기서 기능 이상이 발견되면 배변 장애형 변비라 볼 수 있고 없다면 정상 통과형 변비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치료법은?
공통적인 건 섬유질 섭취, 유산소 운동 등의 생활습관 개선이다. 최근엔 변비약 말고도 대장 운동을 개선하는 세로토닌계 약물이나 대변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PEG계열 약물, 그리고 배변을 촉진해 변비를 개선하는 분비형하제 등의 약물들이 쓰이고 있다.
특별히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알로에엔 세나(Senna)라는 자극성하제 성분이 있어서 장운동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복통이 생길 수 있고 알로에에 의존하게 되면 정상적인 배변 생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 또 양배추에는 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쉽게 발효되는 포드맵(Fodmap)이라는 성분이 많아서 가스가 많이 찬다. 알로에나 양배추 모두 변비약과 비교했을 때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지 불확실하다.
-일상에서 변비를 부추기는 가장 안 좋은 습관은?
대변을 참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참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이게 반복돼 습관으로 이어지면 항문조임근이나 치골직장근이 변의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게 된다. 배변 장애형 변비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에 가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는 물이다. 노인은 물을 잘 안 마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제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물을 너무 많이 마신다. 하루에 2L는 기본이고 3L, 4L씩 마시는 환자들도 있다. 수분 섭취가 변비 증상을 완화한다고 알고 있어서다. 다 소변으로 간다. 밤에 화장실을 들락날거리면서 수면의 질도 나빠지고 자율신경계 기능도 저하해 오히려 변비가 악화할 수 있다.
변비라는 게 워낙 흔한 증상이라서 바쁘다는 이유로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방치하면 대장이 늘어나 거대결장으로 이어진다거나 직장항문협응장애가 심해져 약물치료에도 반응이 불량해질 수 있다. 또 여성은 60대 이후엔 대변이 새는 변실금이 생겨 삶의 질이 곤두박질칠 수 있으며 특히 노인은 변비가 장폐쇄, 장천공 장출혈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변비를 겪은 지 오래됐고 일상을 방해한다면 전문의를 만나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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