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생보다 온실가스 배출 적은 원전..안전성, 폐기물은 난제
지난 6일 유럽연합(EU) 의회는 원자력발전을 ‘그린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하는 방안을 의회에서 의결했다. 그린 택소노미란 탄소 중립이나 친환경으로 분류되는 범주를 의미하는데, 그린 택소노미로 분류되면 원전 관련된 기술도 친환경 기술로 취급돼 투자를 받기가 더 수월해진다. 유럽이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한 것은 원전이 온실가스 발생량이 적으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당초 EU 내에서 그린 택소노미 논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원전이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배출한다는 점 때문에 원전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데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글로벌 지상 과제로 부상하면서 ‘가성비’가 좋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은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을 배제할 수 없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다만 광범위하게 퍼진 원전의 안전성 문제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 등 난제도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발표한 ‘발전원별 전주기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원전은 전체 22개 발전원 가운데 ㎾h(킬로와트시)당 온실가스 배출량 측면에서 가장 친환경적 에너지다. 원전의 발전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은 ㎾h당 5.1g에 불과, 수력(360MW 기준·11g)이나 풍력(12~14g), 태양광(11~37g), 태양열(22~42g) 등 재생에너지보다도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점유율도 ㎾h당 0.058포인트로, 풍력(0.11포인트), 지붕 위 태양광(0.15~0.86포인트), 수력(0.21포인트), 천연가스(0.24포인트) 등보다 낮다고 조사됐다. 부지에 비해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의미다.
전력 1㎾h 생산에 따른 수질 부영양화(수질오염) 유발량에서도 원전은 ㎾h당 5.8g으로, 1.3g인 수력발전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 풍력(6.7~7.0g), 태양광(8.8~39g), 태양열(11~14g) 등 재생에너지나 천연가스(20~24g), 석탄화력(420~690g)에 비하면 수질오염 유발 효과도 적은 셈이다.
전력 생산에 들어가는 설비용량 대비 효율이 높다는 점도 원전의 강점이다. 한국전력의 전력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발전 설비용량 중 원자력 비중은 17.4%로 신재생에너지(18.5%)보다 적었지만, 원자력의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27.4%로 신재생 발전량(7.5%)의 3.7배나 됐다. 부경진 서울대 공과대학 객원교수는 11일 “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가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에너지는 현실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만 갖고는 안 된다. 원전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달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로나 이후 경기회복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맞물리면서 연료 가격 급등과 에너지 안보 중요성이 커지면서 많은 국가가 원전 신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정부도 신한울 3·4호기(경북 울진) 건설을 재개하는 등 2030년까지 전체 발전에서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공식화했다. 영국은 2050년까지 원전을 최대 8기 추가 건설하기로 했고, 프랑스도 신규 원전 6기를 건설하기로 한 데 이어 8기를 추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프랑스의 전체 발전 가운데 원자력 비중은 66%에 이른다. 체코와 폴란드도 각각 2040년까지 4기, 2043년까지 6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IEA는 지난 2020년 기준 415GW 수준인 전 세계의 원전 발전설비량이 2050년에는 812GW로 2배가량 늘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원전에 대해서는 방사능에 대한 불안감이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원전은 원자로 안에 우라늄을 투입하고 핵분열을 유도해 여기서 나온 열에너지를 발전 기제로 삼는데, 핵분열 연쇄 과정에서 많은 방사성 물질들이 생산된다. 원전이 정상 가동될 때에는 이 방사성 물질들이 원자로 밖으로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처럼 예기치 않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대규모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있다. 발전소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 생태계까지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으로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이후 44년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지만, 불안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전문가들은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게 삼중수소 검출 논란이다. 지난해 초 월성원전 부지 내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된 일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이 삼중수소가 인근 주민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중수소 관련 토론회에서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삼중수소로 인한 원전 주변 지역 주민의 피폭량은 바나나 6개와 멸치 1g을 섭취했을 때 정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강건욱 서울대 의대 교수도 “쌀, 버섯, 육류, 생선 등 우리가 섭취하는 모든 음식에 삼중수소가 들어있으며 미량의 삼중수소는 대부분 소변으로 배출된다”고 덧붙였다.
UNECE 조사에서도 원전은 전력 1㎾h 생산 시 인체에 암을 유발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유해성 지표(μCTUh)에서 0.51로, 0.35인 수력에 이어 두 번째로 암 유발 정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1.1~4.1), 천연가스(1.3~1.7), 태양열(2.1~6.3), 풍력(5.5~7) 등이 오히려 원전보다 암 유발 유해성 지표가 높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역임한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안전성과 폐기물 등 문제점이 하나도 없는 100% 완벽한 에너지는 지구상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전이 위험하니까 쓰지 말자는 주장은 마치 교통사고가 위험하니 자동차를 몰지 말고 자전거 타고 다니자는 말과 똑같다. 자동차 사고를 줄이기 위해 과속 단속을 하고 안전벨트 의무화 등 위험을 관리하듯 원전도 위험을 관리하면서 운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원전의 또 하나의 과제는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문제다. 경수로형 원전의 경우 4~5년, 중수로형 원전은 약 10개월 정도 주기로 발전에 들어간 핵연료를 교체해줘야 하는데, 사용후핵연료는 열이 많고 방사능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그냥 폐기하지 못하고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별도로 저장·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사용후핵연료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총 50만4809다발에 이른다. 향후 국내 가동 중인 모든 원전의 설계수명 만료 시점까지 사용후핵연료가 13만520다발이 더 발생, 총 63만5329다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31년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더는 원전부지 내에 보관할 수 없는 ‘포화’ 상태가 줄줄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포화율이 이미 98%를 넘긴 월성원전은 급한 대로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지난해 추가 완공하면서 2029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 등을 저장할 수 있게 됐지만, 영구처리시설을 마련하는 작업은 아직도 걸음마도 못 뗐다.
원전 가동 중인 대부분 국가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지하 500~1000m 깊이의 심지층에 매립하는 식으로 처분한다. 핀란드는 2015년, 스웨덴은 올해 초에 각각 지하 500m 깊이에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 승인됐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관련 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 되는 대로 국무총리 산하의 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영구저장시설 부지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37년 이내에 영구처리시설을 만든다는 목표만 제시한 상태다. 그러나 대상지로 거론되는 원전 주변 지역의 거센 반발이 우려돼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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