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강국' 벨기에 피핑톰의 정훈목에 주목할 때

장지영 2022. 7.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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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일 신작 '아난'으로 국내 관객과 만나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에서 14년째 활약하고 있는 정훈목(왼쪽)과 이번에 국내에서 선보이는 신작 ‘아난’의 포스터. ©Kenneth Rawlinson

벨기에는 1980년대 이후 현대무용의 성지가 됐다.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로사스 무용단, 빔 반데키부스의 울티마베즈 무용단, 얀 라우어스의 니드 컴퍼니, 알랭 플라텔의 세드라베 무용단 등 재능있는 벨기에 안무가들이 이끄는 현대무용단이 잇따라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단체가 있는 벨기에에 전 세계 재능있는 무용수와 안무가들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벨기에의 대표적 현대무용단 중 하나로 내한공연을 여러 차례 가진 바 있는 피핑톰 무용단은 아르헨티나 출신 가브리엘라 카리조와 프랑스 출신 프랭크 샤르티에가 세드라베 무용단에서 활동하다가 2000년 의기투합한 단체다. 무용, 드라마, 영상, 음악의 결합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앞세워 현대무용계의 선도적인 단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피핑톰 무용단은 안무가만이 아니라 무용수들도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협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무용수에게는 크리에이터라는 지위를 부여한다.

벨기에의 현대무용단 가운데 한국 무용수들이 거쳐 간 곳이 적지 않은데, 피핑톰 무용단에는 2009년부터 2명이 활동하고 있다. 당시 오디션을 통해 함께 입단한 김설진과 정훈목이다. 다만 김설진의 경우 2014년 Mnet ‘댄싱 나인’ 시즌 2 우승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활동이 많아진 상태다. 김설진은 2014년 자신의 무용단 ‘무버’를 창단해 무용계를 포함한 국내 공연계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는 한편 최근 배우로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피핑톰 무용단에선 자신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작품 투어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김설진과 비교해 정훈목은 현대무용 관계자들 이외엔 다소 낯선 편이다. 현대무용 장르의 속성상 팬층이 넓지 않은 데다 2010년대 들어 피핑톰 무용단의 2차례 내한 공연 외에 정훈목의 국내 무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훈목이 출연한 피핑톰 컴퍼니의 32 RVD(왼쪽)와 Vader의 한 장면. Vader에는 정훈목과 함께 또다른 한국인 단원 김설진의 모습도 보인다. ©Peepingtom

단국대 무용과 학부와 대학원을 다닌 정훈목은 국내에서 ‘주목댄스시어터’라는 이름의 무용단을 만들어 활동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진예술가로 선정돼 유럽에 갔다가 피핑톰 무용단의 오디션에 합격하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당시 국제적 명성의 현대무용단에 한국인 2명이 동시에 입단한 것은 국내 무용계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피핑톰 무용단에서 꽃을 피운 정훈목은 지난 14년간 크리에이터 및 댄서로서 6개 작품으로 43개국 133개 도시의 투어에 참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피핑톰 무용단의 투어가 중단되자 오랜만에 개인 작업에 나섰다. 첫 성과물이 그가 감독한 댄스필름 ‘우라가노’(Uragano)다. ‘우라가노’는 지난해 파리 국제 필름 페스티벌, 도쿄 국제 숏필름 페스티벌 경쟁 부문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는가 하면 올 초 미국 할리우드 인터내셔널 골든 에이지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댄스 숏(Best Dance Short), 베스트 싸이-파이(Best Sci-fi) 등 2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탈리아로 ‘허리케인’이란 뜻의 ‘우라가노’는 15분 분량으로 이탈리아 출신 여성 무용가 엘리아나 스트라가페드의 몸짓을 통해 무의식 속에 일그러진 기억의 파편을 그렸다.

정훈목의 댄스필름 ‘아난’(ANON)의 한 장면.

정훈목이 오는 15~1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신작 ‘아난’(ANON)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댄스필름 ‘우라가노’의 연장선상에서 만든 작품으로 왜곡된 기억을 가진 75세 남성, 신체장애가 있는 9세 소년, 판타지 캐릭터 같은 20대 여성과 이들을 돕는 건장한 남성 3명이 출연한다. 제목 ‘아난’(ANON)은 영어의 ‘soon’(곧)과 ‘anonymous’(익명의)에서 가져와 만들었다. 구체적인 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고립감을 느끼는 각각의 인물들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내면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모습을 그렸다.

정훈목은 ‘아난’ 공연을 앞두고 “한국 관객들이 작품의 캐릭터나 스토리라인을 분명하게 이해하려는 시선에서 조금 벗어났으면 한다”면서 “관객이 각각 투영하는 캐릭터의 관점에 상상력을 조금만 더하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는 현대무용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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