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동안 200개가 넘는 빵... 매일이 기적이네 [낼 모레 육십, 독립선언서]

이정희 2022. 7. 11.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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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견습생의 하루, 몸은 힘들어도

인생의 새로운 길에 섰습니다. 늘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살아온 삶을 마무리하고, 이제 온전히 '내 자신'을 향한 길을 향해 가보려 합니다. <기자말>

[이정희 기자]

"네가 무슨 빵을 만들어?"

오랜만에 만난 동창이 내게 건넨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친구가 나를 봐온 지도 어언 30여 년, 그 시간 동안 '나'라는 사람과 '빵'은 '접점'이 없었다. 가정 주부로 지내온 시간 만두는 빚어 봤어도, 집에서 '찐빵'조차 쪄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빵을 만든다니. 더구나 낼 모레 육십인 내가 빵집의 견습생이 된다니.   

낼 모레 육십인 빵집 견습생

첫 출근을 한 날, '토끼띠' 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언니는 1층 매장과 2층 주방 보조 일에 잔뼈가 굵으신 '베테랑'이셨다. 

"내가 3일 동안 가르쳐 줄테니, 그 다음부터는 니가 혼자 알아서 해."
"네? 어떻게 3일 만에 저 많은 걸 외워서 해요?"

낼 모레 육십의 '견습생'은 그렇게 나이가 '어리다'며 가볍게 말을 놓으신 언니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쌤 나이면 저는 이제 염색을 안 하겠어요'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이 많은 축'에 속했는데, 여기서는 그저 나이가 무색하게 벌벌거리는 '견습생'에 불과했다.   

'눈이 핑핑 돈다', 딱 그 표현대로 였다. 빵을 만들기 위한 반죽, 이걸 '생지'라고 한다. 미리 꺼내서 녹여놓은 생지를 제품 모양에 맞춰 성형하는 것부터 일은 시작된다. 생도넛, 미니 찹쌀 도넛, 찹쌀 도넛 등등의 모양을 만들었다. '자'를 대고 가로, 세로 사이즈를 맞춰야 하는 것도 있다. 

일을 처음 시작한 계절은 겨울의 끝 무렵 미리 꺼내놓는다 해도 아직 생지들이 잘 녹지 않아 '얼음 덩어리'같을 때였다. 그걸 손의 온기로 녹여 모양을 만들어 내야 했다. 미니 찹쌀 도넛은 그래도 새알심 빚듯이 하면 됐는데, 큰 찹쌀 도넛은 가운데 묵직하게 들어간 팥 앙금 덕분에 모양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앙금이 조금만 잘못해도 삐져나왔다. 동그란 모양 하나 만들기가 녹록지 않았다. 세상 살 만큼 살았다 했는데, 이렇게 또 '생초보'의 길에 들어서니 '인생 참 알 수 없구나'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튀기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의 1부에 불과했다.
ⓒ envato elements
 
생지를 '성형' 하면 그 다음은 튀기기다. 튀김기에는 180도 정도의 기름이 끓고 있다. 그곳에  도넛, 꽈배기, 고로께, 왕슈 등을 한 시간 반 넘게 튀겨낸다. 가정주부로 주방에서 '오십견'이 생기도록 시간을 보낸 나였지만 기름이 잔뜩 든 튀김기는 '문외한'이다.

막상 찰랑찰랑한 기름 앞에 서니 '두려운 감정'이 앞섰다. 겁을 잔뜩 집어 먹고 멀찍이 생지를 던지다시피 하니 언니의 호령이 떨어졌다. 그러면 외려 기름이 튀어서 데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 튀기는 시간이 달랐다. 1분 30초, 2분, 애벌 구워져 나온 잡채 고로께나 팥도너츠는 구워 나온 상태에 따라 튀기는 시간을 조절해야 했다. 매번 타이머를 맞추고 튀기고, 다시 뒤집어 튀기고, 건져내서 기름을 빼고, 구분하기 쉽도록 파슬리 가루, 케찹, 치즈 가루 등을 뿌려 냉판에 세팅해서 덤웨이터(소형 승강기)로 1층에 내리는 것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그 튀기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의 1부에 불과했다. 

튀긴 도넛들에 맞게 흰 설탕, 황설탕, 도넛 슈가 등을 묻히는 것으로 2번째 텀의 일이 시작되었다. 연유, 땅콩, 모카, 등등은 빵 안에 넣을 크림의 종류들이다. 빵을 반으로 갈라 크림들을 넣어야 했다. 각종 크림 빵에서부터, 연유 바게트, 모카 식빵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크림빵'들이 있는 줄 몰랐다.
 
 빵을 반으로 갈라 크림들을 넣어야 했다.
ⓒ envato elements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공갈빵같은 고구마 빵에 구멍을 내서 생크림을 넣고, 그 위에 다시 생크림을 묻히고 '카스텔라 가루'를 묻히거나, 계절 상품으로 딸기 가루를 묻히기도 한다. 물론 계절 상품들은 '계절'의 변화와 함께 등장과 퇴장은 반복한다. 요즘의 '계절 상품'은 '마늘'이다. 크림치즈마요네즈를 넣고 마늘 크림으로 '마사지'한 둥근 소프트롤 빵을 매일 4개씩 만들고 있다. 

아직도 '빵 만들기'는 끝이 아니다.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 마늘빵이나 초코슈를 2판 가득 채워 만들기도 하고, 쿠키를 자르거나 세팅해 서너 판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의 빵'이 완료되면, 내일 아침 구울 수 있도록 통식빵을 잘라 슈거 토스트 제품들과 소프트 롤,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어 냉장칸에 넣어둔다. 

몸은 힘들어도 살아갈 힘을 얻다

이렇게 4시간 동안 열 몇 가지의 200개가 넘는 빵을 만드는 것만으로 내 일이 끝나는 건 아니다. 덤웨이터로 올라오는 '생지'와 케이크, 샌드위치 재료를 날라 정리하는 일, 양파 썰기, 튀김기 청소에서부터, 작업장 정리까지가 마무리 되어야 내 일이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들이 4시간이란 시간 동안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도너츠를 튀기는 동안, 다음 과정을 준비해야 하고, 덤웨이터에 올라온 '냉판'들을 정리하고, 또 그러면서 타이머를 체크해야 하는 식이었다.

"설탕 범벅을 만들지 말고!"

견습 기간 동안, '언니'의 지침은 쉴 사이없이 쏟아졌다. 가르치기 위한 것이니 기분나빠하지 말고라고 미리 한 자락 깔아둔 언니는 가차없이(?) '지도 편달'을 해주셨다. 내가 만드는 건 '공산품'이 아니었다. 도너츠에 설탕 하나를 묻히는 것에도 '품격'이 필요했다. 크림은 많이 넣어도 안 되고, 적게 넣어도 안 됐다.

손님이 빵을 베어물었을 때 한 입 가득 크림이 느껴지도록 크림을 리드미컬하게 배열해야 하는 동시에, 낭비가 되지 않도록 아껴서 넣어야 하는 '불가능'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듯했다.

이 나이에 휴지 한 장을 쓰는 것도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마우스를 똑딱거리는 것만으로도 터널증후군을 앓던 내 손은 묵직한 얼음 덩어리같은 생지들을 나르고, 냉판을 몇 개씩 거뜬하게 옮겼다. '아니 젊은 애가 왜 그렇게 손 힘이 없어' 언니의 지청구처럼 손아귀의 힘을 조절해 크림을 넣어야 하는데 난 '짤 주머니'를 제대로 쥐는 것조차 버벅거렸다. 

아니 무엇보다 4시간 동안 눈 뜨고 코 베어갈 것같은 저 많은 과정들을 '습득'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습득'도 습득이지만, 묻히는 거야 많고 적고 조절하면 되지만, 도대체 '그노무 도넛'들이 도통 제 모양이 나오질 않았다. 직접 만들어 보고 튀겨보면서 '감'으로 익혀야 한다는데 그 '감'이 내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글을 쓴 지 어언 10여 년, 며칠 이상을 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첫 날 일을 하고 돌아오니 녹초가 돼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오전 알바를 하고, 다시 오후에 글을 쓰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당분간 보류해야만 했다. 우선은 '노동'이 몸에 붙어야 했다. 

낯선 도시의 차 편이 생소해, 그리고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는 마음에서 매일 걸어서 오고가는 한 시간여의 시간,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아직은 집에 돌아가면 끙끙거리며 기어다니다시피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이 없었다면,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팔자 타령'을 하며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바닥을 기다시피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일어나 출근할 힘이 생겼다.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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