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대통령 배출' 라자팍사 가문..스리랑카 경제난에 퇴장했다
스리랑카의 고타바야 라자팍사(73)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혔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고타바야 대통령은 TV 성명을 통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하겠다”며 13일 사퇴를 공식화했다. 고타바야 대통령은 형 마힌다 라자팍사(77) 전 총리가 사퇴한 후에도 2개월간 자리를 지켰지만, 이날 시위대 수천 명이 대통령 관저까지 장악하자 버티지 못했다. 시위대 진입 전 긴급 대피한 그의 행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고타바야 대통령의 사임은 스리랑카의 극심한 경제난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국가 부도를 공식 선언했다. 코로나19로 주력 산업이던 관광업이 붕괴됐고 급등하는 대외 부채와 재정 정책 실패까지 겹쳤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하루 13시간 정전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병원에선 휴대전화 조명으로 수술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국민의 분노는 라자팍사 가문으로 향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20년 가까이 스리랑카 행정부와 내각, 의회까지 장악했다.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이었던 DA 라자팍사의 9남매 중 둘째인 마힌다 전 총리가 이 가문의 대표 격이다. 마힌다는 24세 때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1994년 노동부를 시작으로 수산자원부 등 2001년까지 장관을 지냈다. 2004년 총리에 올랐다가 2005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취임, 재선까지 성공하면서 2015년까지 재임했다.
마힌다는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9년, 30년 가까이 이어졌던 타밀 반군의 내전을 종식했지만, 민간인 4만여명을 사살해 인권탄압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마힌다는 동생 고타바야에게 군사를, 또 다른 동생 바실(70)에겐 경제를 각각 맡겼다.
부패 혐의도 끊이지 않았다. 마힌다는 재임 시절 중국 차관 70억 달러를 들여오면서 중국의 국영기업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고타바야도 2006년 우크라이나 전투기 구입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 조사를 받았다. 결국 마힌다는 3선 연임에 실패했다.
라자팍사 가문은 2019년 고타바야의 집권으로 부활했다. 2019년 4월 연쇄 폭탄테러로 260여 명이 숨지자 이슬람 극단주의 거부감이 확산됐다. 고타바야는 형 마힌다를 총리로 앉히고 큰형 차말을 관개부 장관에, 동생 바실을 재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다 올 초 경제난에 국민 여론이 악화하면서 라자팍사 형제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고타바야는 지난 4월 국민 여론을 잠재우려 형과 동생, 조카를 포함한 내각 장관 26명을 전원 사퇴시켰지만, 마힌다는 5월까지 버텼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형을 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고타바야는 시위가 격화하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장 병력을 투입했지만, 국민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디언은 고타바야의 사임을 두고 “지난 20년간 스리랑카 정치에 막강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던 라자팍사 가문의 종말”이라고 평가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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