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미술관 옥상에 끌어들인 풍경 "또 하나의 작품"

이은주 2022. 7. 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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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에 설치된 구조물 ‘시간의 정원’. 안으로 2층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밖으로 청계산과 저수지 등이 보인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요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꼭 봐야 할 작품이 하나 더 생겼다. 전시장은 건물 내부가 아니라 옥상이고, 작품은 그곳에서 둘러보는 풍광 그 자체다. 미술관 1층 내부에서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보며 원형 경사길을 따라 올라가면, 3층 옥상 탁 트인 하늘 아래 청계산과 관악산, 저수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이 과천관 3층 옥상을 새롭게 가꿔 개방했다. 미술관이 추진하는 과천관 특화 및 야외공간 활성화를 위한 공간재생 프로젝트 일환이다. 지난해 과천관 3곳의 순환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건축가 김사라)에 이어 올해는 옥상을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으로 꾸몄다.

난간은 점차 높아져 최고 높이(4.2m)에 다다랐을 때 바깥 풍경을 활짝 보여준다. [사진 조호건축]

공모에 당선된 건축가 이정훈(조호건축 대표)이 설계한 ‘시간의 정원’은 원형인 옥상 공간에 설치한 캐노피(덮개) 구조의 지름 39m 대형 구조물이다. 선(線)으로 배열된 흰색 파이프가 벽과 지붕처럼 이어진 구조물은 사람들의 동선을 이끌며 풍경을 여닫는 역할을 한다. 입구에서는 2.1m의 낮았던 캐노피가 가운데서는 4.2m로 높아지며 활짝 열린 무대에 자연을 펼쳐놓는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이 대표는 “옥상에 처음 올라왔을 때 마주한 비경(祕境)에 깜짝 놀랐다”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성균관대)에서 건축학과 철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프랑스에서 유학했고, 반 시게루, 자하 하디드 설계 사무소를 거쳤다.

Q : 처음 봤을 때 놀랐다고.
A : “미술관에 와도 옥상까지 올라온 적은 없었다. 2017년부터 개방했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풍경을 너무 쉽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Q : 그럼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A : “조망점에서 시야를 점진적으로 열어 전면의 청계산과 관악산이 극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체 없이 캔틸레버(한쪽 끝만 고정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된 보) 구조 그 자체의 긴장감으로 전면 풍광을 드러내기로 했다.”

밤에 조명을 켠 ‘시간의 정원’. [사진 조호건축]

이 대표는 “옛날 아름다운 정자 건축을 보면 올라가는 길을 만든 뒤, 올라가서야 시야를 활짝 열어주는 방식으로 풍광을 보여준다”며 “바로 한눈에 들어오게 하기보다 보일 듯 말 듯 한 경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Q : 설치물이 난간 형태다.
A : “지붕이 있어도 안 되고 벽도 만들 수 없는 게 조건이었다. 처음 와본 옥상에 각각 90㎝, 120㎝ 높이의 난간이 있었다. 과거 건축법규에 따라 다르게 증축된 것이다. 이 흔적을 살려 시간이 흘러 난간들이 자라난 것처럼 보이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미술관 옥상은 두 개의 원을 품고 있다. 안으로 뚫린 원 아래 2층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바깥 둘레 원으로 주변 풍광이 보인다. ‘시간의 정원’은 이 밑부분을 지지하는 기둥 없이 안과 밖의 원을 팽팽하게 당기며 맞잡고 지탱하는 구조다. 여기에 바깥 원은 한옥 처마선처럼 서서히 올라간 형태다.

Q :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A : “안과 밖의 원을 연결하는 파이프 각도를 맞추는 일이었다. 진입 부분에선 위에 있는 파이프가 직각이지만 점차 높이가 올라갈수록 각도가 틀어진다. 파이프 각도가 하나씩 다 달라지니 일일이 맞춰 재단해야 하고 용접 시공이 정교해야 한다.”

Q : 거대한 해시계를 염두에 두었다고.
A : “해가 움직일 때마다 파이프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다. 잠깐만 앉아도 시간에 따라서 빛과 그림자가 속 변화하는 것을 보며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의 정원’의 합리적 구조미와 경제성, 기존 문맥과의 조율을 높이 평가했다. 심사에 참여한 건축가 김찬중(더 시스템랩 대표)은 “‘시간의 정원’은 시간에 따라 회화적으로 변화하는 그림자 밀도까지 옥상 경관의 다양함으로 해석했다”며 “해가 진 후 구조체와 어우러진 조명이 만들어내는 경관도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옥상 공간의 장소적 특수성을 살려서 재생하는 데 가치가 있다”고 자평했다. 임대근 현대미술 2과장은 “전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감상하며 위로 올라가도 달리 보여줄 게 없었는데, 옥상정원을 통해 미술관 프로그램이 밀도 있게 완성됐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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