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떠돌다 돌아온 문화재 40여점, 처음으로 일반인 만난다
환수 문화재의 가치·환수 경로 등
상세히 알수 있게 스토리텔링식 전시
9월2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서 열려
2014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도쿄사무소 직원은 골동상점을 탐문하다 분청사기로 제작된 조선시대 묘지(墓誌·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를 발견했다. 무덤 부장품인 묘지가 버젓이 골동상점에 전시된 걸 수상히 여긴 직원은 출처를 조사한 끝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집현전 관리를 지내며 조선 전기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선제(李先齊, 1390∼1453)의 무덤에서 도굴된 뒤 1998년 6월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밀반출된 ‘이선제 묘지’였던 것이다.
불법반출 문화재라 국가 예산을 써서 구입할 수도 없는 상황. 환수 방법은 기증뿐이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임산 팀장이 소장자를 설득하는 미션을 띠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말기 암을 앓던 소장자가 세상을 떠나며 이태가 그냥 흘렀다. 강 팀장은 포기하지 않고 고인의 부인을 설득했다. 그는 거듭된 설득 끝에 묘지가 후손에게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기증을 결심했다. 15세기 분청사기 제작기법을 잘 보여줘 학술적 가치가 큰 이선제 묘지는 이듬해 보물로 지정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환수문화재 40여점을 한 자리에 모아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특별전(9월 25일까지)을 통해서다. 전시 유물 중 일본에서 환수한 ‘나전 매화, 새, 대나무 무늬 상자’와 미국에서 환수한 ‘열성어필’(조선시대 왕들의 글씨를 모아 수록한 책) ‘백자동채통형병’ 등 3점은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은 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근현대사 100여년은 격동의 시기로 요약된다. 일제강점과 6·25전쟁을 겪으며 사람도 수난을 겪었지만, 문화재도 도난과 약탈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렇게 해외에 흩어진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 국외소재문화재단이 2012년 7월 출범했다. 현재 21만4200여점 유물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대륙 등 전 세계 25개국에 산재해 있다. 이 중 일본(44%)과 미국(25.3%)에 가장 많다. 이런 이유로 재단은 워싱턴과 도쿄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재단 직원들은 크리스티 소더비 등 전 세계 400여개 경매 사이트를 매주 모니터링하고 해외에서는 도쿄 사무소의 그 직원처럼 현장을 조사한다. 눈에 띄는 유물이라는 보고가 올라오면 본부에서 긴급 매입 심의위원회를 열어 진품 여부, 유물 가치, 가격 등을 고려해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해외 유물은 ‘이선제 묘지’처럼 밀매범에 의해 20세기 후반에 유출된 것도 있지만 대다수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6·25전쟁 와중에 불법으로 흘러나갔다. 오대산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은 1913년 일본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교)으로 불법 반출됐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돼 761책 중 74책만이 살아남았다. 그중 27책은 1932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된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소장하고 있지만 나머지 47책은 민간차원의 반환운동에 힘입어 2007년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문조비 신정왕후(1808∼1890)를 1819년 왕세자빈으로 책봉하던 당시 제작한 죽책은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돼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됐지만 그 죽책을 2017년 프랑스의 한 경매에 개인이 내놓은 걸 확인한 재단이 경매에 참여함으로써 국내에 돌아왔다. 재원은 온라인 게임 회사 라이엇게임즈가 후원했다.
소장자가 기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문인석은 불법 반출 사실을 확인한 박물관 측이 반환을 결심하면서 환수됐다. 조선 후기 보병이 입었던 면피갑(면으로 된 갑옷으로 안에 돼지가죽을 덧댐)도 독일 상트오틸리엔수도원이 자발적으로 기증했다. 덕혜옹주(1912∼1989) 당의와 스란치마는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이 기증했다.
문화재 환수를 위해 다른 나라와 수사 공조도 한다. 호조태환권 원판은 6·25전쟁 당시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한·미 수사 공조를 통해 환수됐다. 1892년(고종 29) 근대적 화폐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신설한 관서인 태환서에서 구화폐를 회수하기 위해 발행한 교환권의 인쇄원판이다. 비록 화폐는 유통되지 못했지만 조선이 만든 최초의 근대적 화폐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환수 문화재의 가치와 환수 경로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게끔 외국으로 나간 과정을 살펴보는 1부, 여러 환수 방법을 보여주는 2부, 현지에서 활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3부로 구성됐다. 각종 도표와 알기 쉬운 설명을 곁들여 친절함이 돋보이는 전시다. 국새의 경우 밑면을 볼 수 있도록 머리 위에 위치한 진열장에 전시했다. 빛 반사로 효과가 적은 게 옥에 티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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