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풀까지 뒤진다"..요즘 여성 사외이사 몸값 확 뛴 이유

백일현 2022. 7. 10. 1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성 직장인 이미지. [사진 pixabay]


헤드헌팅 업체인 A사는 얼마 전 대기업에서 여성 사외이사 후보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글로벌 인맥관리 사이트인 ‘링크드인’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국 인재풀이 부족해 외국 여성 기업인 중에서라도 후보감을 찾기 위해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업은 (사외이사로) 현장에서 일해 본 기업인을 선호하는데 후보군이 부족한 형편”이라며 “그동안은 대학교수 중에서 주로 찾았지만, 그 또한 부족해 외국 기업인까지 검토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런 경우 사업 관련 전문성은 확인할 수 있지만, 한국어가 안 되다 보니 각종 회의자료를 영어로 따로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 등이 있어 결국은 기업이 선임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 사외이사 ‘귀하신 몸’


기업들이 중량감 있는 여성 기업인 출신 사외이사를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다음달 5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은 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이 독식하지 않도록 규정해 사실상 여성 이사 선임을 의무화했다. 이에 대한 처벌 조항은 따로 없지만 상장사에 대한 ESG(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 경영 평가에선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은 사내이사 중에 여성이 거의 없으니 우선 신규 사외이사로 여성을 선임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헤드헌팅 회사에 따르면 여성 기업인 출신이 거의 없어 여전히 고민이다. 그간 여성 근무인력이 적은 편이던 건설·석유화학 등의 업종에서 “창사 이래 첫 여성 사외이사 선임” 발표가 잇따랐으나 대부분은 교수나 변호사 출신이었다.


대부분은 교수나 법조인 출신


그나마도 후보 풀이 한정돼 있다. 기업들은 자기 사업 분야를 전공한 교수를 사외이사로 원하고, 변호사는 다른 기업과 자문 계약 등을 맺으면 사외이사 결격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전히 여성 이사를 선임하지 못한 곳도 있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자산 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 172곳 중 30곳(17.4%)은 여전히 사외이사 전원이 남성이었다. 자산 2조원 미만 기업 중 여성 사외이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기업은 8.2%(168곳)에 불과했다.

직장인 일러스트 실루엣. [사진 셔터스톡]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여성들이 기업 임원으로 등장한지 이제 10년쯤 됐다”며 “아직도 고위 임원이 별로 없고, 서치펌에 의뢰해도 여성으로 몇 가지 조건(경력 나이 등)을 내걸면 더욱 구인난”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나이를 40대까지 낮춰서 찾고 있지만 여성 리더급을 찾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주요 기업에서 활동하는 여성 임원의 비율은 한 자릿수에 그친다. 기업분석기관인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으로 대기업 임원 1만4612명 중 여성 비중은 6.3%(915명)에 그쳤다.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53개 기업의 여성 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삼성전자도 10% 비율 약속 못 지켜


국내 기업 중 여성 임원 수가 가장 많다는 삼성전자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삼성전자 전체 임원 1526명 중 여성 비중은 6.5%, 국내 임원 1083명 중 여성은 5.5%(60명)에 불과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1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10년 이내에 여성 임원 비율을 1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1분기 기준 주요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현대차 4%, LG전자 3.8%, 포스코홀딩스 2.9%,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 각각 2.5% 등이었다.


메타 35%, 애플 23%, TSMC도 10%


반면 해외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메타(옛 페이스북) 35.5%, 애플 23%, 인텔 20.7%, 대만 TSMC 10% 등으로 한국보다 높았다. 여성 인력을 꾸준히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최근 한 대기업의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된 한 법조인은 “직원 중에 여성이 많지만 여성 임원이 별로 없더라”며 “이사회에 들어가 보니 예상보다 젠더 이슈가 많지는 않지만 성적 다양성 측면에서 남성들만 있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점, 다양한 의견을 반영시킬 수 있다는 차원에서 여성 이사 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유럽연합(EU)은 지난달 상장기업 이사회 구성원의 40%를 여성으로 채우도록 하는 데 합의했지만 한국에선 한 명도 못 구하는 기업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여성 이사들이 기업의 여성 고급 인력이 양성될 수 있는 인사 정책 구조를 만드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baek.il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