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덕질할 순 없나요" 외치는 팬들..K팝 친환경 시대 올까

박현주 2022. 7.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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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팬들, '지속가능한 K팝'에 대한 요구
실물 앨범 재활용 어렵고 폐기 시 유해물질 나오기도
"포토카드 등 앨범 과도 구매 부추기는 기획사 마케팅 변해야"
업계선 일부 변화도..CD 없는 앨범, 콩기름 잉크 인쇄 등
케이팝포플래닛 관계자들이 지난 4월21일 서울 용산구 BTS소속사 하이브 사옥 앞에서 친환경 앨범 선택지 도입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K팝 세계에도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실물 앨범 판매를 늘리려는 기획사의 마케팅이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든다는 인식이 K팝 팬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면서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K팝'을 외치며 K팝 산업 전반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앨범 대신 음원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지만 실물 앨범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판매 상위 400개 국내 발매 음반 기준, 실물 앨범의 국내외 판매량은 총 5708만9160장으로 전년 대비 37% 늘었다.

많은 팬들이 실물 앨범을 구매하는 이유는 포토카드, 포토북 등 굿즈를 얻기 위해서다. 기획사들은 한 앨범을 다양한 버전으로 발매하거나 여러 종의 포토카드를 만들어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굿즈는 앨범에 무작위로 들어있기 때문에 구매자가 고를 수 없고, 원하는 굿즈를 갖기 위해서는 앨범을 더 많이 구매해야만 한다. 팬 사인회 참여 기회 또한 앨범을 구매해야만 주어지기 때문에 앨범을 여러 장 살수록 당첨확률이 올라간다. 유명 아이돌 그룹 내에서는 앨범을 몇 장 이상 구매해야 팬 사인회에 갈 수 있다는 이른바 '팬싸컷(팬 사인회에 갈 수 있는 정도의 평균 구매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결국 팬들은 음악 감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굿즈나 팬 사인회 응모권을 얻기 위해 수십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상황에 놓이는 셈이다. 앨범 여러 장을 구매한 뒤 굿즈만 꺼내고 CD는 버리는 이른바 '앨범깡'이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음악 산업백서'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음반을 이용해 음악을 감상했다고 답한 비율은 11.5%에 불과했다.

방탄소년단(BTS) 팬이라는 A씨(25)는 "앨범마다 무작위로 들어있는 포토카드를 멤버별로 다 모으려고 여러 장 사는 사람이 많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사실 다른 내용물은 똑같은데 (포토카드 등 굿즈 때문에) 앨범을 여러 장 사게 만드는 것은 상술이자 자원 낭비"라고 지적했다.

기획사의 상술이 아니더라도 앨범 과도 구매를 부추기는 요소는 있다. 바로 그룹 간 앨범 판매량 경쟁이다. 특히 초동 앨범 판매량(앨범 발매 후 첫 1주 간 판매량)은 아이돌 그룹의 자존심이자 팬덤의 규모·충성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이기 때문에 팬들은 경쟁하듯 앨범을 구매한다.

오는 15일 발매되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의 솔로 음반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 구성품 소개. 카드홀더와 포토카드, QR카드가 동봉돼 전용 앱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앨범 전곡과 포토북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위버스샵 캡처

일부 K팝 팬들은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친환경적으로 변화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K팝 팬들이 모인 기후행동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 4월21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HYBE) 앞에서 'K팝 앨범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버려지지 않는 대책 마련 촉구'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기획사들이 앨범을 과도하게 판매해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팝포플래닛은 또 음반이 재활용이 되지 않아 환경에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음반은 투명 폴리염화비닐(PVC)로 포장되는데 PVC는 소각 시 염화수소 가스라는 유독성 물질이 나오는 등 폐기 과정에서 환경에 유해하는 것이다. 국내에는 PVC를 재활용하면서 나오는 유독성 물질을 처리할 만한 시설이 부족해 사실상 재활용이 어렵다. 포토카드와 포토북 등에 쓰이는 코팅 종이 또한 비닐과 종이를 분리해 버려야 하지만, 분리 과정이 번거롭다보니 한꺼번에 버려져 재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특히 기획사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지난해 6~7월 K팝 팬들을 상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K팝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를 조사한 결과, 엔터테인먼트 기획사가 1위(95.6%)로 꼽혔다. 이어 팬덤(59.4%), 아티스트(39.5%) 순이었다.

일부 기획사는 친환경을 외치는 팬들의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 오는 15일 출시되는 BTS 멤버 제이홉의 솔로 음반 '잭 인 더 박스(Jack In The Box)'에는 CD가 없다. QR 카드, 카드 홀더, 포토 카드 등으로 구성돼 앱을 통해 QR코드를 인식하면 앨범 전곡과 사진 콘텐츠 등을 온라인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오는 13일 발매하는 보이그룹 SF9의 새 앨범 '더 웨이브 오브9(THE WAVE OF9)'는 콩기름 잉크, 수성 코팅 등 친환경 소재로 제작됐고, 지난 1월 발매된 가수 청하의 정규 1집 '케렌시아'도 재생 종이로 사용하고 라미네이팅(코팅) 과정을 줄였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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