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편찬 『고종실록』 다시 써야..명성황후 시해범도 참여"

신준봉 2022. 7. 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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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짜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 집필에 참가한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오른쪽)와 서영희 한국공학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비판 총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우상조 기자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망은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양국은 모처럼 화해 모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계를 떠올리면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바짝 관계 개선에 나섰다가도 과거사나 영토 문제에 발목 잡혀 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반복돼 왔다.
그렇다고 관계 개선이라는 미래를 담보로 과거사를 어물쩍 덮고 지나갈 수는 없다. 최근 출간된 8권짜리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이하 비판 총서, 사회평론아카데미)도 그런 생각의 산물이다. 한국인의 역사인식에 드리운 일제 잔재인, 식민사학의 문제를 이제라도 제대로 짚자는 취지다.

이태진 교수는 "일본 국민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의식은 전혀 없이 우월의식만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양국이 정치적인 역사 화해를 시도해봐야 소용이 없다. 일본의 역사학계부터 과거를 바로 봐야 한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우상조 기자


식민사학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 등 일본 학자들이 개발한 왜곡된 역사연구 방법이다. 한국과 일본은 조상이 같다는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한국인의 특성을 폄하한 당파성론·사대주의론 등이 주요 이론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조선의 식민지화는 불가피했다는 논리다. 식민사학은 1960년대 이기백 등의 연구 이후 상당 부분 극복됐다는 게 국내 역사학계의 자체 평가다. 하지만 미흡한 점도 있다는 게 비판 총서의 시각이다. 비판 총서 집필을 주도한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명예교수는 "식민사학의 실체와 왜곡의 뿌리를 바닥까지 헤집어보는 확장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그런 판단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등 일제의 학술연구 기관들이 어떻게 공모해 식민사학을 생산했는지, 식민사학의 확장판 격인 동양 제패 이데올로기가 일제가 조선을 넘어 만주나 동남아에 진출하는 데 어떻게 활용됐는지 등으로 연구 반경을 넓혔다. 해방 이후 실천돼 온 식민사학 비판에 대한 반성, 재검토라고 할 수 있다.

서영희 교수는 "일본인 사학자들이 주도해 편찬한 『고종실록』은 사료를 변형하거나 바꾼 거짓은 아니지만 무수한 사료를 의도적으로 빠뜨렸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비판 총서 집필에 참여한 이태진 교수와 서영희 한국공학대 교수를 함께 만났다. 이 교수는 비판 총서 1권 『일본 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8권 『일본제국의 대외 침략과 동방학 변천』에서 일제가 한국사를 외국사로 분류하지 않고 일본사의 일부로 슬그머니 편입한 '만행'을 폭로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한국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복속국이 된다. 서 교수는 총서 5권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에서 유독 고종시대사에 대해서는 식민사학 비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망국의 책임을 고종에게 주로 돌리는 잘못된 인식이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특히 『고종실록』의 사료적 권위를 전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인들이 편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종실록』을 『조선왕조실록』의 하나로 여기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다 보니 고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고종실록』 편찬에는 명성황후 살해사건(을미사변) 가담자인 일본인 기쿠치 겐조도 참여했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이 그에 대한 공적 기록인 역사 편찬에 참여했는데도 한국인들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이태진 교수가 집필한 『일본 제국의 '동양사' 개발과 천황제 파시즘』.


-『고종실록』을 일본인들이 편찬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서영희(이하 서)=이왕직(李王職)이라는 조선 왕실 업무 담당 기관에서 『고종실록』 편찬을 주도했는데 오다 쇼고(小田省吾, 1871~1953)라는 식민사학자가 총책임자였다. 기쿠치 겐조는 사료모집위원이었다. 정만조·이능화 등 조선인들도 참여했는데, 이들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사료로서 『고종실록』을 평가한다면.
서=일본인들이 『고종실록』 편찬에 활용한 기초사료를 어떻게 수집했는지부터 한 땀 한 땀 찾아봤다. 깜짝 놀랄 만큼 방대한 분량의 자료조사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현지답사도 했다. 그런데도 그 많은 자료를 정작 실록에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고종실록』은 굉장히 소략하게 돼 있다. 거의 연표 수준이다.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은 다 빠져 있다.
-『고종실록』에 사실관계 왜곡이나 오류는 없나.
이태진(이하 이)=사료를 변형하거나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식민사학 입맛에 맞는 사료만 선별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역사 왜곡이다.
두 사람은 "한글로 번역돼 쉽게 접근 가능한 『고종실록』을 바탕으로 드라마 같은 콘텐트를 제작하거나 블로그 글을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니 일반 국민의 근대사 인식에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했다. 고종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망국 프레임'의 논리적 귀결이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론, 즉 망해가는 나라를 식민지로 받아들여 근대화시켜줬다는 논리라는 것이다.

서영희 교수가 집필한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그렇다면 이렇게 문제 많은 『고종실록』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는 "주요 근거 사료를 모두 밝혀 가며 사안의 경중을 따져 실제로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도록 다시 써야 한다"고 했다. 서 교수도 "요즘 세상에 무슨 관찬사서(官撰史書)가 필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국가가 나서서 고종시대사에 대한 정사(正史)를 편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종실록』 다시 쓰기에 나선다면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이 교수는 "학계의 연구 활동과 외교 문제는 분리하면 좋겠다. 또한 학계의 노력에 역행하는 양국 정부 차원의 정치적 공동성명 같은 건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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