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왕이 5시간 마라톤 회담.."11월 정상회담 가능성"

박현영 2022. 7. 1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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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리조트에서 양자 회담을 했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토니 블링컨(오른쪽)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왼쪽)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나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및 외교부장은 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에서 5시간에 걸친 양자 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핵 문제 등을 논의했다. 양측은 구체적인 합의사항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연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블링컨 장관과 왕 국무위원은 전날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마친 뒤 이날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리조트에서 별도로 만났다. 지난해 10월 이후 9개월 만이며,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두 사람은 회담 직전 악수하며 우호적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해 10월 로마 양자 회담에서 왕 국무위원이 손을 내밀었으나 블링컨 장관이 거절했던 것과 달라진 광경이다.


북핵, 우크라이나 전쟁 등 논의


두 사람은 점심을 포함해 5시간에 걸쳐 마라톤 회담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롯해 북핵 문제, 홍콩 및 대만 문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등 광범위한 주제를 논의했다.

회담 후 블링컨 장관은 기자 회견을 통해, 왕 국무위원은 신화통신 등 관영 언론을 통해 각각 입장을 밝혔는데, “건설적이었다(constructive)”는 평가가 공통적으로 나왔다. 블링컨 장관은 "유용하고 건설적”이었다고 했고, 중국 외교부는 “회담은 실질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이번 회담이 “양국간 향후 고위급 교류를 위한 길을 터줬다”고 밝혀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제기된다. 로이터통신은 “수 주일 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다시 전화 통화를 하거나, 11월 발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기간 첫 대면 회담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왕 국무위원과 나는 양자 관계의 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논의했다”면서 “우크라니아 전쟁, 북한의 핵 문제 등 지역 및 글로벌 이슈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에 반대하고 대러 압박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블링컨 장관은 “왕 국무위원에게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데 대한 우려를 전했다”면서 “베이징은 중립이라고 하지만, 명백한 침략자가 있고 명백한 피해자가 있는 이번 침략 같은 경우는 중립적이기 매우 어렵다”고 비판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금은 (러시아의) 침략을 비난하고, 러시아의 봉쇄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갇힌 식량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도록 요구하고, 전쟁을 끝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그것이 우리가 나눈 대화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왕 국무위원은 미국은 중국 정치 체제를 공격하고 냉전 시대의 봉쇄 전략을 재활용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촉구하면서 날카롭게 반응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중국 외교부를 인용해 전했다. 중국 측 발표문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논의 사실만 밝히는 데 그쳤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오른쪽 두번째)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왼쪽 두번째)가 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회담장에 입장하며 담소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만 문제 놓고 격돌


블링컨 장관은 또 “베이징의 대만에 대한 점점 더 도발적인 발언과 활동에 대한 미국의 깊은 우려와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대한 중요성을 전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홍콩 억압과 신장 지역에서의 대량 학살, 강제 노동, 소수 민족·종교 탄압 문제도 거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왕 국무위원은 미국은 대만에 관한 한 언행에 신중해야 하며 “대만 독립” 세력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왕 국무위원은 ”많은 사람은 미국이 점점 커지는 ‘차이나 포비아(중국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만약 이러한 ‘위협의 확대’ 개념이 계속 커지도록 방치하면 미국의 중국정책은 곧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 국무위원은 미국에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승낙한 이상, 하나의 중국 정책을 왜곡하지 말고, 대만 문제에서 ‘살라미 전술’을 멈추고, ‘대만카드’로 중국의 평화통일 과정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에 중국산 상품에 부과 중인 고율 관세를 조속한 시일 안에 취소하고 중국 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제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또 ‘가드레일’ 설치를 주장하는 블링컨 장관에게 왕이 부장은 “▶미국의 잘못된 중국 정책과 언행, ▶중국이 우려하는 중요 사안, ▶중국이 우려하는 대중국 법안, ▶미·중 8개 협력 영역 등 4개 리스트를 넘겼다"며 "미국이 진지하게 다루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리밍장(李明江)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나트남국제학연구소 부교수는 “과거에는 모두 미국이 중국에 요구사항을 제출했다”며 “중국이 4개 리스트를 건넨 것은 미국과 비슷한 방식으로 공을 미국에 넘기면서 미·중 관계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쟁취했음을 과시하려는 시도”라고 풀이했다. 양국 장관은 한반도와 우크라이나 정세도 깊이 논의했다고 밝혀 미·중 8개 협력 영역에 북한 비핵화가 포함됐는지가 주목된다.


G20 외교장관 회의도 쪼개져


블링컨 장관과 왕 국무위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대응을 놓고 이견을 보였듯 G20 회원국도 쪼개졌다. 미국과 유럽이 한 편, 중국과 러시아 등이 다른 편으로 갈라졌다. 이번 G20 외무장관 회의는 지난 2월 24일 개전 이후 러시아가 처음으로 서방 국가들과 대면하는 자리였다. G20 외교장관 회의 때마다 찍는 단체 사진도, 공동 합의문이나 코뮤니케(성명)도 이번엔 내놓지 못했다.

블링컨 장관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참여하는 단체 사진 촬영을 보이콧했고, 유럽 장관들이 동참했다. 미국과 유럽은 7일 저녁 환영 만찬에도 불참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회의 참석 중 두 차례, 독일 외무장관 발언 때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화상으로 연결됐을 때 항의 표시로 퇴장했다. 이후 러시아는 중국, 인도, 브라질, 터키,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서방 주도의 반(反)러시아 연대에 동참을 거부하는 몇몇 국가 장관들과 자리를 함께했다고 NYT가 전했다.

NYT는 바이든 행정부가 불과 일주일 여 전 유럽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발리 G20 회의에선 중국 협력 없이는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러시아 처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G20 외교장관 회의는 미국의 “상반된(conflicting) 외교 정책 목표”를 추구하는 시험대였다고 평가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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