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보니, 그곳에 놀라운 작품이..

이은주 2022. 7. 1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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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시간의 정원'
'숨겨진 명소' 즐기는 공간으로
건축가 이정훈, 캐노피 구조물
이정훈 건축가가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정원의 설치작 '시간의 정원'.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의 '시간의 정원에서 바라본 자연 풍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요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작품이 하나 더 생겼다. 전시장은 건물 내부가 아니라 옥상이고, 작품은 그곳에서 둘러보는 풍광 그 자체다. 미술관 1층 내부에서 백남준(1932~2006 )의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보며 원형 경사길을 따라 올라가면, 3층 옥상 탁 트인 하늘 아래 청계산과 관악산, 저수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미술관 옥상정원이 주는 선물 같은 풍경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이 과천관 3층 옥상을 새롭게 가꿔 관람객에 개방했다. 지난해부터 미술관이 추진해온 과천관 특화 및 야외공간 활성화를 위한 공간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난해 과천관 3곳의 순환버스 정류장에 조성된 ‘예술버스쉼터’(건축가 김사라)에 이어 올해는 두 번째 프로젝트로 옥상을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으로 재조성했다.

공모에 당선된 건축가 이정훈(조호건축 대표)이 설계한 '시간의 정원'은 본래의 원형 옥상 공간에 설치한 캐노피(canopy·덮개)구조의 지름 39m의 대형 구조물이다. 선(線)으로 배열된 흰색 파이프가 벽과 지붕처럼 이어진 구조물은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사람들의 동선을 이끌며 연극무대처럼 '기승전결'을 완성하며 풍경을 여닫는 역할을 한다. 입구에서 2.1m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던 캐노피 높이는 가운데서 4.2m로 높아지며 활짝 열린 무대에 자연을 펼쳐놓는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이 건축가는 "옥상에 처음 올라왔을 때 처음 마주한 비경(祕境)에 깜짝 놀랐다"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연과 예술을 만나는 곳


밤에는 파리프 라인을 따라 섬세한 조명이 켜진다. [사진 조호건축]

Q : 처음 봤을 때 놀랐다고.
A : 그동안 미술관에 와도 옥상까지 올라온 적은 없었다. 2017년부터 개방했다고 하는데 옥상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지 않았나. 직접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풍경을 너무 쉽게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Q : 그럼 어떻게 보여줘야 하나.
A : 조망점에서 시야를 점진적으로 열어 전면의 청계산과 관악산이 극적으로 드러나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부를 지탱하는 구조체 없이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 구조 그 자체의 긴장감으로 전면 풍광을 드러내기로 했다.
이씨는 "옛날 아름다운 정자 건축을 보면 올라가는 길을 만들어주고, 올라가서야 시야를 활짝 열어주는 방식으로 풍광을 보여준다"며 "바로 한눈에 들어오게 하기보단 보일 듯 말 듯 한 경계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Q : 그런데 설치물이 난간 형태다
A : 옥상정원 설치작은 지붕이 있어서도 안 되고 벽도 만들 수 없는 게 조건이었다. 처음 와본 옥상에 각각 90㎝, 120㎝ 높이의 난간(핸드레일)이 있었다. 과거 건축법규에 따라 다르게 증축된 것이다. 이 흔적을 살려 시간이 흘러 이 난간들이 입체적으로 자라난 것처럼 보이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것이 현장에서 찾은 질문이었고,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었다.
미술관 옥상은 두 개의 원을 품고 있다. 안으로 뚫린 원 아래 2층 정원이 내려다보이고, 바깥 둘레 원으로 주변 풍광이 보인다. '시간의 정원'은 이 밑부분을 지지하는 기둥 없이 안과 밖의 원을 팽행하게 당기며 맞잡고 지탱하는 구조다. 여기에 바깥 원은 한옥 처마선처럼 점차 올라간 형태다.

Q :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A : 안과 밖의 원을 연결하는 파이프 각도를 맞추는 일이었다. 진입 부분에선 위에 있는 파이프가 직각이지만 점차 높이가 올라갈수록 각도가 틀어진다. 파이프 각도가 하나씩 다 달라지니 일일이 맞춰 재단해야 하고 용접 시공이 정교해야 한다. 현장 설치 때 생기는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존 공간을 3D로 스캔하고, 전체 데이터값을 수치화해 공장 제작을 한 뒤 현장에서 조립했다.
그는 이 과정을 가리켜 "첨단 디지털 기반 작업과 정교한 수공예 기술을 융합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하며 "이 설치물이 거대한 해시계처럼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빛과 그림자도 작품으로


'시간의 정원'은 옥상 안과 밖 풍경을 모두 살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사진 조호건축]
시간의 정원'은 경관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고 경관이 점차 열리도록 이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시간의 정원'은 경관을 한 번에 보여주지 않고 경관이 점차 열리도록 이끈다. [사진 조호건축]
밤에 멀리서 본 '시간의 정원' 모습. 섬세한 조명이 옥상의 존재감을 알려주고 있다. [사진 조호건축]

Q : 왜 해시계인가.
A : 해가 움직일 때마다 파이프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다. 잠깐만 앉아도 시간에 따라서 빛과 그림자가 속 변화하는 것을 보며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풍경뿐만 아니라 빛과 그림자, 바람을 같이 느끼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선정에 앞서 후보작을 평가한 심사위원들은 '시간의 정원'의 합리적 구조미와 경제성, 기존 문맥과의 조율을 높이 평가했다. 심사에 참여했던 건축가 김찬중(더 시스템랩 대표)씨는 "'시간의 정원'은 시간에 따라 회화적으로 변화하는 그림자 밀도까지 옥상 경관의 다양함으로 해석했다"며 "또 해가 진 후 세밀한 구조체와 어우러진 조명이 만들어내는 경관도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프로젝트는 옥상 공간의 장소적 특수성을 살려서 재생하는데 가치가 있다”며 “이곳은 관람객이 전시의 여운을 누리면서‘자연 속 미술관’을 누리는 쉼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 2과장은 "이전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감상하며 위로 올라가도 달리 보여줄 게 없었다"며 "오히려 옥상정원을 통해 미술관 프로그램이 밀도 있게 완성됐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다른 후보작 4팀(김이홍, 박수정 & 심희준, 박희찬, 이석우)의 옥상정원 제안작도 미술관 유튜브 채널과 옥상정원 입구에 마련한 아카이브 영상을 통해 공개 중이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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