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 속 배터리 상징 리튬가 여전히 고공행진..공급망 위기 안끝났다
LFP배터리 수요 증가에 가공·채굴 인허가 등 까다로워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우려와 공급 부족으로 인해 치솟았던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필수 원료인 리튬 가격은 나홀로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다른 원자재 가격이 30~40%가까이 하락하는 동안에도 리튬은 소폭 하락에 그치고 있다. 배터리 소재의 핵심으로 꼽히는 리튬의 고공행진은 글로벌 침체 우려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공급망 위기'를 상징한다는 지적이다.
배터리 상징 ‘리튬’ 여전히 높은 콧대
10일 한국자원정보서비스와 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당 80위안(약 1만5500원)이었던 리튬(탄산 리튬 99%기준) 가격은 현재 455위안(약 8만8200원)으로 468% 폭등했다. 이는 지난 4월 역대 최고가인 471위안(약 9만1300원)과 비교해도 3% 하락에 그친 것이다.
반면 니켈·코발트 등 다른 배터리 소재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가격이 현격히 떨어지는 추세다. 가장 비싼 코발트의 경우, 지난 4월까지 t당 8만1600달러(약 1억573만원)에서 현재 5만달러(약6480만)까지 약 38% 가량 하락했다. 니켈 역시 같은 기간 3만2800달러(약 4250만원)에서 2만2000달러(약 2851만)로 32% 내려갔다.
리튬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배터리 분야에서의 산업적 쓰임새가 광범위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리튬은 배터리에서 전기를 생성하고 충전하는 역할을 하는 핵심 소재다. 배터리의 충전이 시작되면 양극에 있던 리튬이온과 전자가 음극으로 이동한다. 충전(양극→음극)이 다된 후 방전 과정(음극→양극)이 진행되면서 배터리가 탑재된 기기들에 전기 출력을 내는 것이다.
리튬은 삼원계로 지칭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에 모두 쓰인다. 삼원계 배터리는 국내 업계가 주로 생산하고 LFP는 중국이 주도한다. 최근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리튬의 고가 행진을 견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 내 LFP 적용 전기차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고 테슬라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LFP 배터리를 앞다퉈 적용하려는 분위기다. 골드만삭스는 LFP 배터리가 현재 시장 점유율 30% 수준에서 2030년까지 40% 가까이 배터리 시장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했다.
리튬은 매장량이 풍부하지만, 배터리용 리튬으로 가공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환경 파괴 우려가 커 채굴 인허가를 얻는 과정에서 여러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단기 생산량 확대도 어렵다. 때문에 리튬 가격은 당분간 내려가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원자재 급락 속 유가는 ‘100달러’ 고지
반면 연일 천장을 뚫었던 국제 원자재 가격은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다. 특히 철광석과 구리, 알루미늄 등 산업 생산의 기반이 되는 철강·비철금속 원자재 가격은 지난 3개월간 최대 30% 이상 떨어졌다. 주요 원자재 가격의 상승 추이가 꺾인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여 만이다.
대표적인 산업기초 소재이자 국제 경기의 바로미터인 구리는 t당 7500달러(약 971만원)를 간신히 넘었다. 올해 초와 비교해 20%가 넘게 하락했다. 4월 t당 1만600달러(약 1373만원)를 웃돌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하락률은 30%에 달한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알류미늄 가격은 7일 기준 2417달러로 최근 석 달 새 30% 이상 빠졌다. 지난해 중반 사상 처음 200달러를 넘어선 철광석 현물 가격도 110달러 대로 내려갔다.
5월 중순 사상 최고치를 찍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GSCI 곡물 가격지수도 현재 28% 하락했다. 런던금속거래소(LSE)에서 거래되는 산업용 금속 6개를 추적하는 금속가격지수 역시 3월 정점을 찍은 이후 30% 넘게 떨어졌다.
반면 국제 유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8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2.0%(2.06달러) 오른 104.79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5일 경기침체 공포 속에 8.2% 급락하며 100달러 아래로 내려간 지 이틀 만에 100달러 선을 회복한 것이다. 글로벌 원유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염려가 경기침체 공포로 이틀간 급락하던 국제 유가를 다시 끌어올렸다.
러시아 노보로시스크 법원이 이날 카스피 송유관 컨소시엄(CPC)에 카자흐스탄 서부와 흑해를 연결하는 송유관 가동을 한 달간 중단하라고 명령한 것과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이 이런 우려를 키웠다. 오안다의 선임 애널리스트 제프리 할리는 "러시아의 원유 공급이 감소할 예정이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도 원유 생산 역량 유지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유가가 100달러를 넘는 날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제침체 가능성…수출 둔화 우려↑
10일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국내총생산(GDP) 나우'에 따르면 2분기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연율 기준 -1.2%로 예상됐다. GDP 나우는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에 기반해 미국의 실질 GDP를 실시간으로 추산한다. 예상대로라면 미국은 2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해 기술적으로 경기침체에 진입한 것으로 판정된다.
지난달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물가를 잡기 위해 28년 만에 '자이언트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번지는 모습이다. 최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내년에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조만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IMF는 지난 4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4.4%에서 3.6%로 0.8%포인트 하향 조정한 바 있다.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가 경기 침체를 겪는다면 우리 경제에 대한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미 수출은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6월 수출은 1년 전보다 5.4% 증가하는 데 그쳐 16개월만에 증가율이 한 자릿수로 내려왔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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