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장관상 받은 직장인, 황대리가 칫솔부터 바꾼 이유
■ 쓰레기사용설명서는...
「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다시 보면 보물이니"
기후변화의 시대, 쓰레기는 더 이상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재활용·자원화의 중요한 소재입니다. 중앙일보 환경 담당 기자들이 전하는 쓰레기의 모든 것. 나와 지구를 사랑하는 '제로웨이스트' 세대에게 필요한 정보를 직접 따져보고 알려드립니다.
」
'제로 웨이스트'란 말은 미국인 비 존슨(Bea Johnson)이 쓴 책 '나는 쓰레기 없이 살기로 했다'가 알려지면서 유행이 됐다. 이 책에 나오는 존슨 가족 4인이 1년 동안 만들어 내는 쓰레기 양은 작은 유리병 하나 정도다. 휴지 같은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퇴비화를 통해 음식쓰레기도 배출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가 아예 나오지 않는 수준이다.
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모임 '와이퍼스'의 닦장(대표) 황승용(36)씨는 존슨 가족의 일화를 듣고 제로 웨이스트를 완벽하게 실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포장재가 가득한 한국에서 살기 위해선 휴지부터 배달용기, 마트에서 볼 수 있는 각종 포장재 등 일상생활에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다.
황씨는 평일 낮엔 한 기업에서 대리로 일한다. 그는 "비 존슨도 한국에서 직장을 다닌다면 반드시 그보다 많은 쓰레기를 버릴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최근 펴낸 책에서 제로 웨이스트가 아닌 '레스 웨이스트(less waste)'를 강조하고 있다. 황씨는 "제로(0)란 숫자가 눈앞에 있다 보니 쓰레기를 하나만 만들어도 잘못한 느낌이 든다.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많은 자원을 쓰는 국민이라면 평균치로만 달려가도 잘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레스 웨이스트의 미덕은 조금만 노력해도 성과를 인정받는단 점이다. 그가 운영 중인 와이퍼스 회원 800여 명의 채팅방에선 서로 쓰레기를 줄인 작은 사례를 공유하고 칭찬해주는 문화가 이미 정착됐다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레스 웨이스트 실천법을 황씨에게 들어봤다.
칫솔부터 바꾼 황 대리
레스 웨이스트의 기초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라'다. 한 번에 모든 제품을 친환경으로 바꾸긴 어려우니, 일단 한 가지 구매해보는 거다. 황씨의 경우 첫 친환경 제품을 대나무 칫솔로 골랐다. 마침 집에 칫솔이 떨어지던 참이었고, 매일 두세 번씩 환경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기 좋을 것 같아서다. 황씨는 "대나무 칫솔은 사용하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반면 '친환경 부부'라고 각인된 칫솔을 볼 때마다 긍정적인 책임감이 든다"고 말했다.
그다음은 '나만의 금지품목 정하기'다. 일회용 수저, 테이크아웃 컵, 물티슈, 생수병 등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쓰지 말아야 할 대표 품목 중에서 가장 만만한 걸 쓰지 않기로 마음먹는 거다.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기보단 10번 사용할 걸 1~2번만 사용해보는 식이다. 주변에 반감을 주지 않으면서 적정한 실천을 하면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람들과 함께 할 때 혼자만 일회용품을 쓰지 않겠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식이다.
마지막은 '함께 하기'다. 와이퍼스 같은 모임에 참여해 자신의 레스 웨이스트 사례를 공유하고 인정받는 경험을 한다. 더 나아가 회원들과 함께 플로깅 같은 쓰레기 줍기 체험을 한다. 물론 플로깅으로 모든 쓰레기를 없앨 수도 없고, 주운 쓰레기를 100% 재활용하는 것도 아니다. 황씨는 "거리 곳곳에 쓰레기를 직접 줍다 보면 왜 레스 웨이스트가 필요한지 저절로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돈 모이고 건강 챙긴다
황씨는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레스 웨이스트는 이득이 된다고 주장한다. 우선 돈이 모인다. 친환경 제품이 비싸 보일 때도 있지만 애초에 적게 사기 때문에 소비가 줄어든다. 고기와 동물성 지방이 많은 음식 대신 참나물, 두부 등을 식탁에 올리다 보면 식비가 줄어든다. 황씨 부부의 경우 레스 웨이스트를 시작한 이후 월 저축액이 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늘었다고 한다.
건강과 인연을 얻는 점도 장점이다. 고기나 인스턴트 음식을 끊다 보니 절로 건강이 좋아진다. 황씨는 "내 경우 중증이었던 궤양성 대장염이 크게 호전됐다. 쓰레기 줍기를 시작하면서 84㎏였던 몸무게는 10㎏이나 줄었다"고 말했다. "아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땐 '언제 만나서 쓰레기나 주웁시다'라고 말하는 회원들의 도움이 컸다. 선한 활동을 하면서 얻는 힐링이었다"라고도 했다.
"평범한 사람 참여해야"
환경부 장관상까지 받은 황씨지만, 자신이 프로 환경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란 걸 강조했다. 그는 "환경 운동을 처음 시작한 건 1등에게 유럽에 방문할 기회를 준다는 환경 공모전을 시작하면서였다. 여전히 주말이면 드러누워 쉬고 싶고 월요병을 앓으며 집안일이 귀찮다"고 했다. 대단하지 않은 계기로 시작했고, 환경 운동을 한다고 대단히 특별할 것 없다는 말이었다.
황씨는 "비누, 샴푸, 치약, 휴지를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을 변기에 모이도록 개조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건 나도 엄두가 나지 않지만 레스 웨이스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쓰레기 처리법은 쓰레기를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평범한 사람들이 레스 웨이스트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황씨는 "굳이 페트를 쓴다면 재활용률이 높은 투명페트를 쓰고, 맥주를 마시더라도 재사용 가능한 병맥주를 마시자.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야 세상의 쓰레기가 유의미하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여고생 여친과 성행위 찍은 남고생…무죄→유죄 뒤집힌 이유
- 박수홍 "난 죽어야한다고 자책…산 올라간적도 있었다"
- ‘빚투’ 주식·코인 회생신청땐 빚 덜 갚는다?
- "20억 로또 당첨된 남편…이혼할 때 절반 받을수 있을까요?"
- "좀 비싼 수업료" 허경환에 27억 빚더미 떠안긴 동업자 최후
- 아베 피격에 "TV 끄지 마세요"…94세 노모는 소리내 흐느꼈다
- 장염에도, 인도 총리 부인이 만든 요리 다 먹었다…그게 아베
- 보행자 멀리 있다고 우회전…당신에게 날아올 '범칙금' 얼마
- 60대 벤츠 운전자, 차 3대 쾅쾅쾅…결국 초등생까지 덮쳤다
- 포항 해변서 2m 산갈치 건져냈다…그것도 2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