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공무원 사건, 軍은 어떤 기밀을 지웠나
군 당국이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군 정보 유통망인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에 올렸다가 삭제한 기밀정보 40여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군 당국은 7일 MIMS에 게재한 민감한 정보가 직접적인 업무와 관계없는 부대까지 전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삭제한 기밀정보의 내용에 대해선 감사원의 감사 등을 이유로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기밀정보가 무더기로 지워진 시점이 당시 청와대 관계장관회의 직후인 2020년 9월 23~24일이었다는 점에서 ‘자진 월북’ 추정에 힘을 싣기 위해 그와 반대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군 소식통은 9일 “여러 단편적인 첩보를 종합해 가공한 정보는 한 가지 결론이 아니라 여러 경우의 수를 제시한다”며 “예컨대 분석관이 방대한 양의 첩보를 종합·분석·평가하는 과정에서 실족·극단적 선택·월북 등 다양한 가능성이 정보로 생산될 수 있고, 어떤 정보를 취할지는 사용자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MIMS 내 정보 삭제는 보존 연한이나 서버 용량 등 문제로 종종 이뤄질 수 있는 일이지만,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관련 기밀정보가 삭제됐다는 점은 의심을 살만하다”고 지적했다.
군 정보당국 수장을 지낸 한 인사는 “특별한 사안일 때는 추후에 판단을 다시 해서 정보를 통제하는 경우가 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청와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보가 어디까지 전파됐느냐 하는 논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MIMS에서 삭제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밀정보는 1·2급 기밀 등을 포함해 40여건으로 알려졌다. MIMS 내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은 국방부 장관과 합참정보본부장 등 군 정보계통의 최고위급 관리자에게만 주어진다고 한다.
이에 여권 측은 당시 청와대의 지시 아래 ‘자진 월북’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그와 배치되는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는 지난 6월 24일 국방부를 방문한 이후 중간결과 발표 자리에서 2020년 9월 22일 합참의 최초 청와대 보고에선 오히려 월북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보고서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TF 단장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TF가 열람한 합참 보고서는 당시 조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는 점과 주변에 어선의 조업이 많았다는 점을 들어 월북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다 23~24일 청와대 회의를 거치고 결론이 뒤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또 “7시간 분량의 북한 통신보고 내용 중 ‘월북’이란 단어는 딱 한 번 등장한다. 그 전후로는 관련 내용이 전혀 없다”며 “월북 몰이를 했다는 단서”라고 지적했다.
군 당국은 지난 7일 “기밀정보 원본은 삭제되지 않았다. MIMS 내 기밀정보가 사건과 관련 없는 부대에 전달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서욱 전 장관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위중하고 불확실한 첩보 내용이어서 무관한 부서에 전파되면 더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꼭 필요한 부서만 보게 하자는 지침을 준 것이며, 원본 삭제 지시는 없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를 감사 중인 감사원은 컴퓨터 포렌식 등을 통해 피살 사건과 관련해 최초 보고됐던 정보의 내용이 무엇인지, 삭제 지시가 있었는지 등 당시 기밀정보가 삭제된 정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삭제된 정보 중 월북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정보들이 포함됐을 경우, 전 정부의 진실 은폐 논란은 확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감사원 감사와는 별도로 기밀정보가 삭제된 경위를 포함해 삭제 사실이 외부로 유출된 과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할 방침이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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