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블랙리스트 옹호? 해임 문체부 국장, 왜 이런 말했을까

김태호 2022. 7. 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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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한민호 전 문체부 국장

2019년 10월 한민호(60) 전 문체부 국장은 파면당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친일’ 발언을 올려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 의무)와 63조(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게 징계 이유였다. 한 전 국장은 항소했고, 지난 4월 법원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징계 수위가 과했다’며 파면을 취소했다.

한 전 국장은 모든 ‘죄’를 씻고 문체부로 복귀하나 싶었지만, 지난 6월 15일 또다시 해임됐다. 새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이다. 그는 파면 당시 징계 이유서에 나온 말대로 “개전(改悛)의 정(뉘우치는 마음)이 없는” 공무원이었던 걸까. 지난달 30일 한 전 국장을 만났다. 징계가 없었다면, 이날은 그가 공무원 정년퇴임하는 날이었다. ‘친일·블랙리스트 옹호’ 발언 등 그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에 대해 물었다.

한민호(60)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Q : 정권이 바뀌고 해임됐다.
A : 징계 취소 판결이 나오자마자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징계 요구서를 보냈다. 이 과정에서 정권이 바뀌었지만, 징계위원들은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된 그대로였다.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안 보인다’며 해임을 했을 거라고 본다.

Q : 징계 이유는 파면 때와 달랐나.
A : 똑같다. ‘성실 의무 위반’과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았다. (해임 징계에 대해) 다시 소청심사를 청구할 생각이다. 정년도 끝난 마당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한민호 케이스가 전례가 된다”는 주변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Q : 구체적인 징계 이유는.
A :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 위반을 들었다. ‘근무시간에 페이스북 활동을 왜 이렇게 많이 했느냐’다. ‘성실’을 판단할 땐 ‘맡은 일을 잘했나’를 봐야 하지 않나. 난 문체부 문화정책과장 시절(2015년) 근무평가 최고등급(SS)을 받았다. 2017년 문체부 노조가 4급 이하 전 직원 대상으로 한 무기명 설문 조사에선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관리자’로 뽑히기도 했다. 사감위로 ‘유배’ 갔을 때도 정말 일을 열심히 했다. 징계 요구서에 내가 “VIP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라고 적혀 있는데, 주로 원자력·대북·대일 정책 등을 비판했을 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위 공무원이 국정 전반에 일정한 지식과 어느 부서에서도 일할 실력을 갖추라’며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만들지 않았나. 이 취지에 부합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했다.

지난 2006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이라면 국정 전반에 일정한 지식을 갖춰 어느 부서에서도 일할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로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신설했다.

Q : 원색적인 정부 비판과 ‘타부처 업무 이해를 위한’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거리가 멀지 않나.
A : 이 문제를 계기로 ‘정부 정책 비판’과 ‘업무 이해’ 경계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일을 게을리하고, 남의 부처 일에 쓸데없이 신경 썼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Q : 이전 정부도 이렇게 비판했었나.
A : 박근혜 정부의 ‘대우조선 구조 조정 방식’ 등을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한반도 대운하 정책’도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당시 문체부 차관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이전 정부는 문재인 정부처럼 시종일관 악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펴진 않았다.

Q : 어쨌든 고위 공무원이라면 정부 정책 성공에 일조했어야 했던 게 아닐까.
A : 페이스북이란 개인 공간에서 작은 목소리를 내고 비판했을 뿐이다. 밖에서 피케팅을 한 것도 아니다. 기자회견 하고, 성명서를 낸 것도 아니다. 요란하게 행동한 게 아닌데, 문재인 정부는 이것마저 못 견뎠다. ‘치졸한 대응’이라고 본다.

Q : 이런 논란들이 문체부 조직과 동료에게 부담됐을 텐데.
A :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또 ‘(고위 공무원이) 정부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 게 맞느냐’란 비판도 인정한다. 하지만 명색이 고위 공무원이라면 한 국가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데, 직무상 내 일이 아니라고 방관해야 하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런 걸 법원이 판단해주길 바랐는데, 그런 건 없었다. 법원은 ‘정부가 말한 대로 한민호가 잘못했지만 파면은 심하다’라고 결론 냈다.

Q : 문 대통령을 ‘외교 천재’라 조롱하고, ‘지렁이, 아메바’ 같은 표현도 썼다.
A : ‘품위 유지 의무(63조)’ 위반 관련해선 잘못을 인정했다. “아무리 페이스북이지만 고위 공무원으로서 (용어 사용이) 적절치 않았고 반성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관련 정책 비판을 문제 삼았는데, 이건 수용하기 어려웠다. 문재인 정권에서 당시 여당(민주당)은 반일 감정을 이용해 선거를 치르지 않았나. ‘2020년 4.15 총선은 한일전’이라고 했다. 지난 재보궐·지선·대선 때도 그랬다. ‘해방 이후의 일본’과 ‘일본 제국주의’는 정치 체제가 전혀 다른데, 현재 일본을 적으로 돌리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고위 공무원의 ‘친일’발언 논란

Q : 반일 감정 이용을 비판하더라도 “친일이 애국”이란 주장은 무리 아닌가.
A : 지금은 ‘친일’이 애국이다.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잘하고 있다.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한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 주제로 한·미·일 동맹에 준하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지 않았나.

Q : 방금 말한 건 ‘친일’보다 ‘협일(協日)’이 더 정확한 표현 아닐까.
A : ‘용어 사용이 적절치 못했다’라는 말로 이해하는데, 도발적인 발제를 했을 뿐이다. 그 단어가 오해 소지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처음부터 각오하기도 했다. 누군가 들었을 때 ‘기분 나쁘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진지하게 내 글에 관심이 있었다면, 그 말의 취지를 이해했을 거라고 본다. (‘친일’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자’는 거다. 문재인 정부의 근거 없는 반일 선동을 비판한 차원으로 이해했으면 한다.

Q : ‘친일’ 발언에 더해 “(일본이) 조선인을 2등 국민 취급한 게 이해 간다”라는 말도 했다.
A : 표현에 대해선 ‘과한 표현과 부적절한 표현을 썼다’라고 처음부터 인정했다. 평상시에 일본 여행 가고, 일본 술·음식을 즐기면서, 어떤 계기가 생기면 반일 선전·선동에 휩쓸리는 데에 대한 분노와 아쉬움을 그렇게 표현했다. 완곡하게 에둘러 얘기하면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나. 어쨌든 앞으로 주의하겠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한미일 3국 정상이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국제회의장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블랙리스트 옹호 논란…“사람 말고, 콘텐트 선별하자는 말”


지난 5월 말, 문체부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전 국장은 한 인터넷 방송에 나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었다. 그는 ‘문화·예술계 좌파 집단을 몰아내겠다’는 블랙리스트 사건의 명분 자체는 옳았지만, ‘방법론’ 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 일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 몰래 숨어서 도둑질하듯 바보같이 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위 공무원이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는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에 반하는 발언을 한 셈이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문제가 없었다고 본 걸까.

Q : 얼마 전 ‘블랙리스트 옹호’ 발언이 논란됐다.
A : ‘블랙리스트 옹호했다’는 취지로 보도됐는데, 상당히 축약됐다. 그 뜻이 아니다. 내 말은 아예 ‘블랙리스트 (작성을) 하지 말자’는 거다. 블랙리스트가 문제가 된 건 ‘작품’이 아닌 ‘사람’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다. 몰래 사람들 명단을 모아서 ‘이 사람들은 배제하자’고 한 게 잘못이다. ‘반(反)체제 성향 문화·예술 콘텐트는 공개적으로 심사해 지원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정부가 노골적으로 사회주의를 옹호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인하는 콘텐트에 보조금을 줄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나.

Q : 콘텐트 선별은 결국 ‘검열’이 되지 않을까.
A : 기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콘텐트 분석 작업도 필요하다. 재원이 한정돼있는데, ‘N 분의 1’로 나눌 수는 없지 않나. 선별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하면, 논리적으로 ‘모든 지원 시스템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이런 콘텐트 지원 없애고, 시장의 선택을 받게 하자는 진지한 주장도 나온다.

Q : 작품과 사람 구분이 어렵지 않나. 윤 대통령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다”고 공언했는데.
A : 제도적으로는 구분해야 한다. 객관적인 위원회도 만들고, 투명한 심사 기준과 결과를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꽤 된다. 공연·예술 분야는 정부와 지자체가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작품 수가 확 줄어든다. 문화·예술 정책이 ‘복지 정책 일부가 된 게 아닌가’ 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공무원과 ‘표현의 자유’

Q : 왜 발언마다 논란이 됐을까.
A :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는 말을 좀 길게, 친절하게 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주변머리가 없다.

Q : 일련의 과정 돌이켜보면 후회되진 않나.
A : 한 공무원이 자기 일도 아닌데, 직을 걸고 정부를 비판했는데, 징계를 받았다. ‘까불면 한민호처럼 된다’는 선례가 생겼다. 공무원들이 용기를 내지 않을 거라고 본다. 소신과 자부심을 다 잃었다. 일련의 파면·해임 과정에서 눈여겨볼 건 ‘한민호’가 아니라 ‘문재인’이다.

Q :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나.
A : 공무원의 정책 비판은 자유로워야 한다. 오히려 장려 되어야 한다. 타 부서 일이라도 마찬가지다. 세계 10위에 오르내리는 대한민국의 정부가 한 공무원이 ‘물방울’ 조금 떨어트린 걸 못 견디면, 이게 정부인가. 모두 다 옷 벗어야 한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 김신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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