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에 사망한 ‘日최장수 총리’...‘우익 아이콘’ 주변국과 마찰 [아베 신조 1954~2022.7.8]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부친 신타로(晋太郞)와 똑같이 만 67세의 이른 나이에 영면에 들었다. 지난해 9월 생일을 맞아 "부친이 하지 못했던 총리까지 했고, 나이도 이제 곧 아버지를 넘어선다. 이제는 그냥 열심히 살 여생만 남았다"고 했던 그다. 그래서 더욱 8일 낮부터 모든 TV, 유튜브, SNS를 도배하고 있는 아베 전 총리의 피격장면 영상은 비현실로 다가온다.
아베가 관방장관에 취임했던 2006년부터 이런저런 인연을 쌓았다. 어언 16년의 세월이다. 그해 4월 도쿄 나가타초의 총리 관저에서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당시 "한국에서 당신은 강한 매파로 알려져 있다"고 하자 "난 외교·안보 분야에선 현실에 바탕을 둔다. 일본에선 현실적 발언을 하면 매파라 비판한다. 그런 일본 매스컴의 시각이 한국에도 전달된 것 아니냐. 하지만 난 일일이 반론하지 않는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당찼다.
그의 관점은 때론 한국이나 중국을 불편하게 했지만, 적대시하진 않았다. 그는 수시로 한국에 대한 애정, 혹은 관심을 보이곤 했다. 특히 역사와 대중문화를 즐겼다. 대체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조선통신사가 일찍이 일본에 건너와 일본에 여러 문화를 전파했다. 근데 그분들이 가장 먼저 상륙한 곳이 바로 내 고향 시모노세키다. 비석도 있다. 조선통신사상륙 엔류노치(淹留之地)라고 한다. 나는 그분들을 존경한다."
특히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한국 영화와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다. 아베 전 총리는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 혼자 MBC의 드라마 '제5공화국'에 흠뻑 빠졌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택 근처인 도쿄 시부야구혼마치(本町)의 한국 식당 가레아(可禮亜)는 그가 가장 마음 편하게 식사를 하는 단골이라고 했다. 코리아를 발음대로 한자로 적은 이름이다. 한국식 병풍과 하회탈, 조선백자, 궤짝 등으로 꾸며놓은 저렴한 불고기 식당이다.
"사람은 잘 안 변하는 법"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는 달랐다. 2007년 1기 총리 때와 2012년부터의 2기 총리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1기 내각 때는 그저 '예의 바른 착한 도련님'이었다. 2007년 5월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 언론사 주최 만찬에 당시 자민당 정조회장이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작고)와 함께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베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더니 어깨동무를 하는 세 살 위 나카가와에 아베는 깍듯이 고개 숙이며 "안녕하십니까"라 했다. 당시 장면이 잊혀지질 않는다. 2007년 9월 총리를 그만둔 다음 '사임 뒷이야기'를 들었다. 사임 한 달 전 인도를 방문했는데, 극심한 장염에 시달리면서도 인도 총리 부인이 만든 수제 인도 요리를 남기지 않고 먹다 보니 몸이 망가졌다고 했다. 정치적 미숙함일지 모르나 선한 본성 때문이었을 수 있다. 고베제강 샐러리맨 때도 장염으로 술을 못하지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야유회에 '운전기사'로 참석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12년부터의 2기 내각 때는 '싸우는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에게 "시끄럽다" "자료 당신이 조작한 것 아니야"라고 몰아세우는 등 스타일이 180도 바뀌었다. 아베 전 총리와 만날 때마다 느낀 건 '빠른 정치인'이란 점이다. 걸음이 빨랐다. 아예 거의 뛰어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말도 빨랐다. 생각도 행동도 빨랐다. 미국 대선 직후인 2016년 11월 17일 당선인 신분인 트럼프를 만나려고 뉴욕 트럼프타워로 달려갔다. 외국 정상 가운데 처음이었다. 당시 뉴욕에서 아베와 잠시 마주쳤는데, 그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늘 한발 앞선 외교를 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친해지기 위해 골프장 벙커에서 넘어져 한 바퀴 굴러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미소 짓는 지도자는 이제까지 일본에 없었다.
2014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의 한·미·일 정상회의 뒷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아베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서툰 한국말로 "박근혜 대통령님으루(대통령님을) 만나서 반갑스무니다(반갑습니다)"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고개를 획 돌렸다. 당시 상황을 물어봤다. 아베의 답은 이랬다. "원래 '다음에 꼭 식사 같이 하십시다'란 한국어도 말할 참이었어요. 제 발음이 이상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근데 그날 저녁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아까 내 한국어가 이상했느냐'고 물었더니 '정확한 발음이었다'고 하더군요. 하하." 한국 기자로서 겉과 속이 달라 보이는 아베 스타일이 거북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하면 타고난 정치인인 아베에겐 그게 정답이었을 수 있다.
아베 전 총리와 만날 때 함께 자리하곤 했던 한 인사는 8일 "억울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다다미(일본식 마룻바닥) 위가 아닌 정치연설의 현장에서 최후를 맞은 게 '뼛속까지 정치인'인 아베다운 죽음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삼가 명복을 빈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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