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글 81만건 분석한 작가 "제도화된 일베 현신, 그게 이준석"
“지하철 출입문을 닫지 못 하게 해서, 다수의 불편을 야기하는 식으로 뜻을 관철하려는 시위는 비문명적이다”
지난 4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하철 시위에 나선 박경석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와의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준석 대표의 연이은 전장연 비판을 두고 여론은 팽팽히 갈렸다. 거대 제도권 정당의 대표가 ‘소수자’를 공개적으로 직격 비판하는 건 쉽게 보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최근 출간돼 화제가 된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38) 씨는 이런 상황의 기저에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가 있다고 말한다. 김 작가가 2014년 쓴 자신의 석사 논문을 8년 후 다시 다듬어 출판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석사 논문 제목은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 동학’이었다.
저자 김학준(38) 작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src="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207/08/5aef3bea-2a70-49b4-872f-243fcc5c192e.jpg"> 김 작가는 “최근 ‘소수자 혐오·배제’란 일베의 핵심 가치가 허들 없이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며 “온라인에서 파생된 혐오가 더 이상 제도권으로 확산하는 걸 막기 위해 일베 현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베적’ 현재성을 말해주는 건 이준석 대표의 등장”이라며 “‘일베의 현신(現身)’이자, 가장 잘 다듬어지고 ‘제도화’된 일베의 모습을 한 이준석 대표를 통해 일베적 정체성의 진화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 김 작가는 과거 논문을 바탕으로 일베 게시물 약 81만 건을 시간순으로 분석했다. 텍스트별로도 쪼개서 분류했다. 일베 회원 10명도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김 작가는 일베의 핵심 맥락으로 '유머와 ‘평범 내러티브’를 꼽았다.
일베 핵심 맥락으로 ‘유머’에 주목했다.
A : 웃음은 온라인 커뮤니티 행동 중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이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인정받는 핵심 요소는 웃기는 능력이다. 남성, 여성, 출신학교 상관없이 웃기는 능력 하나만으로 인정받는 게 일베 등 온라인 커뮤니티다.
“직접 만난 일베들 공손했다”
Q : 게시물 81만 건 분석했다. 눈에 띈 점은.
일베가 크게 주목받은 건 2012년 ‘인증 대란’ 때다. 당시 ‘일베=루저’란 세간의 평가에 반발해 유저들이 ‘명문대’ 등을 인증했다. ‘밖에선 멀쩡한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 주려 했다. 또 정치적 변곡점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과 탄핵 시기에 출렁였고, 조국 사태 전후로 댓글이 많아졌다. ‘강남역 살인사건’, ‘곰탕집 성추행 사건’도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Q : 일베 회원 10명을 직접 만났는데.
A : ‘일베’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인터뷰에 나섰으니, 껄렁껄렁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몇몇은 ‘나는 준비된 1등 시민’,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걸 부각했다. 실제 이들은 자기 계발에 투자도 많이 했다. 또 당시 내가 대학원생이라고 신분을 밝혔는데도, 철저하게 예의를 차렸다. 자기표현도 최대한 절제했고 친절했다. 인터뷰하며 그들의 (사회에 대한) ‘피로’를 느꼈다. 이런 피로함과 ‘짜증·화’를 풀어낼 ‘무대 뒤편’이 그들에겐 일베였다고 본다.
Q : 인터뷰이 10명 모두 ‘이대남’이었다. 다른 성·연령은 없었나.
A : 40~50대 이용자들도 만났지만,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직장, 사업체, 처자식이 있는 분들이니 자신을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그들과 ‘라포(Rapport·심리적 유대)’를 형성하기 너무 어려웠다. 그나마 지역·학벌 안배를 하자고 모은 게 10명이다.
Q : 일베의 혐오 표현을 크게 북한·좌파·호남·여성으로 분류했다.
A : 북한 혐오는 우리가 아는 ‘보수의 레토릭’은 아니었다. ‘불구대천의 원수’라기보다 ‘짜증 나는 것들’에 가까웠다. 또 내부의 적인 ‘종북 정치인’ 비난도 많았는데, ‘뭐가 종북인지 그들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나쁘다’는 식이었다. 호남 혐오는 5·18 전후로 많았을 거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호남 혐오의 ‘엑기스’는 전남 신안이다. 섬 노예 사건 때문이다. 또 호남 이전에 혐오 표현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대구다. ‘고담 대구’. 일베에선 기본적으로 서울·수도권 외 지역은 다 미개한 곳으로 친다. 이 바탕엔 물론 지역 혐오 정서가 있지만 이를 일종의 ‘밈(Meme)’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여성 혐오는 줄어든 적이 없다. ‘욕설’을 제외하면 언제나 (혐오 대상 중) 1등이다. 일베 ‘의례’에 가깝다. 근데 ‘김치녀’같은 건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다. 비판하고 싶은 지점들을 하나씩 모아 새로운 ‘김치녀’ 캐릭터를 만들어 버린다. 욕설을 빼면 여성 혐오가 1위를 놓친 적이 없는데, 코로나 19사태 때 중국 혐오,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 혐오가 한번 역전했다.
일베의 혐오 배경으로 ‘평범함도 이룰 수 없는 좌절과 분노’를 지적했다.
인터뷰에서 공통으로 많이 나온 건 지방에서 올라온 아버지의 취업·결혼·집 구매 얘기다. ‘정상 가정’에 대한 열망을 의심하지 않았다. 근데 그들은 누구보다 그게 불가능하거나,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균열은 거기서 시작됐다. 인터뷰에 나선 이들은 ‘정상 가정’에 로열티가 강한데, 자꾸 이걸 ‘여성, 전라도, 빨갱이’가 흔든다고 생각한다. 여성은 일단 안 만나준다. 결혼을 안 한다. 결혼해야 아버지의 삶을 사는데, 결혼을 못 한다. 여성들이 과거처럼 못 배운 여성으로 있어 줘야 하는데, 남성들보다 공부도 더 잘한다. 무서운 경쟁자가 됐다. 전라도와 빨갱이는 불공정한 ‘무임승차자’,‘룰 브레이커’다. 이런 레이어들이 계속 겹치면서, 응어리진 분노가 결국 ‘도달 불가능성’과 합쳐지며 혐오가 구체화한다.
중산층이 되고 싶다는 ‘평범함’에 대한 동경 같은 걸까.
A : 일베는 한국 사회에 유구하게 전해 내려온 ‘평범함’을 추구한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산업화의 레거시(유산)를 정통으로 계승한 이들이다. 한국 통치 체제가 만든 가장 성공적인 산출물일 수도 있다. 평범한 삶을 위해 젊음을 바칠 준비가 된 ‘노동력’이니까. 다만 이런 ‘평범’을 추구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고 혐오하는 게 문제다. ‘평범 내러티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체제에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과도하게 비난·혐오한다. 여기에 ‘공정’이 달라붙는다.
‘평범 추구’가 일베만의 멘탈리티는 아니지 않나. 흔히 갖는 욕망이고.
많은 사람이 보통 목표 지향적인 삶을 추구한다. 근데 그걸 일베처럼 조금 더 깊게 치고 나가면, 소수자·여성·장애인의 외침을 개인이 극복할 문제로 내쳐버리는 멘탈리티가 된다. 가령 이번 연대 청소노동자 고소 논란을 보면, 보통 사람들은 ‘시끄럽긴 하지만 문제가 있네’ 정도로만 관심을 갖는다. 아니면 아예 관심을 끄거나. 반대로 그들을 돕는다. 근데 누군가는 노동자들을 고소한다. ‘불편’을 넘어서 ‘나대지 마, 짜져’ 같은 반응을 보인다. 전혀 다른 맥락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거부한다. 이런 게 ‘일베’의 주요 요소다.
Q : 선을 넘는 그 혐오가 매우 열광적이면서도 한편으론 냉소적이다.
A : 일베는 분명히 열광적이다. 근데 이게 ‘우리’라는 감각을 만들지 않는다. 연대가 없다. 일베는 ‘남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는 성재기 씨가 한강에 투신해도 냉소한다. ‘죽기는 왜 죽어? 그것도 실시간으로 죽네?’라며 비웃는다. ‘멍청이가 멍청한 짓 해서 멍청하게 갔는데 그게 뭐가 슬프냐’라는 게 당대 일베의 정서였다.
Q : 감정이 결여된 분노 표출인가.
그것보다 ‘화’나 ‘짜증’에 가깝지 않을까. 걸리적대는 것이다. 평범함에 도달해야 하는 길 중간에 소수자들이 끼어들어서 자기 권리를 요구하는 게 사실 너무 귀찮고 짜증스러운 거라고 볼 수 있다. 종종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라는 말로 비난받는 것처럼.
Q : ‘소시오패스’의 공감 능력 부재와 비슷한 걸까.
사회적 맥락을 일부러 떼어 놓는다는 점에서 일부는 맞다. 근데 ‘일베’를 모두 소시오패스라고 한다면, 이 사회에 너무나 많은 소시오패스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비극이다. 믿고 싶지 않다. 오히려 ‘위악적(악한 척함)’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예를 들어 누군가 죽었을 때, ‘그 사람이랑 친해? 왜 울어?’라고 반문하는 게 그의 죽음을 공감할 수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닐 거라 본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슬퍼하느냐’라는 일종의 반발심이 섞인 ‘위악’일 수 있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천인공노할 짓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일베 입장에서) 임계점을 넘은 감정에 대한 반발로서 위악도 분명 보인다.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는 심리적 회복 과정에서의 나오는 ‘위악’이다.
“이준석, 가장 잘 정돈되고 제도화된 일베”
최근 ‘일베’ 문제는 과거보다 덜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일베의 멘탈리티가 허들(hurdle) 없이 사방으로 퍼지는 요즘 상황을 말하고 싶었다. 제도권에 포섭될 거란 상상도 안 한 일베의 핵심 가치들이 제도권을 통해 구현되는 게 흥미로웠다. 그 결정타이자 현재성을 말해주는 게 이준석 당 대표다. 본인 서사를 말하며 책에서 주야장천 말한 ‘평범 내러티브’를 ‘복붙’하듯 말한다. 혐오주의자들이 온라인이란 ‘구렁텅이’에서 자기들끼리 떠드는 게 아니라, 제도권으로 승화되는 과정이 이런 건가 싶었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게 결정타였나.
‘평범 내러티브’는 결국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서 가정을 꾸리는 착실한 생애 서사’를 지켜가는 과정이다. 이준석 대표 인터뷰를 보면 자신이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고 선언한다. 젠더 관련 아젠다를 추진하는 방식이나, 전장연(전국장애인철폐연대) 집회 관련 이슈 파이팅 방식들도 일베의 논증 형식과 비슷하다.
Q : 어떻게 비슷한가.
일단 맥락을 떼어 놓는다. 특정한 사실의 배후를 걷어낸다. 그중 가장 자극적인 걸 끄집어내며 ‘말이 되느냐’고 상대방을 비난한다. 상대가 역공하면, 전혀 다른 맥락을 끄집어내어 흔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속칭 ‘털린다’. 거의 깨진 적 없는 방식이다. 이 와중에 또 능수능란하게 유머를 활용한다. 전장연과의 토론을 보면 이 대표는 자주 “농담입니다” 같은 말을 한다. 농담 듣고 열 낸 사람만 바보가 된다. 기가 빨린다. 일베의 논쟁 방식이 보통 이렇다. 이준석 대표가 일베를 하느냐? 그건 관심 없다. 그의 말이 혐오를 담지 않더라도, 논쟁 방식과 그 과정상의 유머·밈 활용, 사실을 조합하는 방식이 일베의 그것과 매우 닮았기에 기시감이 들었을 뿐이다.
Q : 이준석과 ‘일베’의 차이는 뭘까.
A : (일베가) ‘제도화’됐다고 주로 표현한다. 이준석 대표와 ‘일베·펨코(에펨코리아)’ 관계를 봤을 때, 이준석은 당대 20대 남성의 정서, 소통 양식, 논쟁과 논증 형식 등을 체화했다는 걸 느낀다. 이런 일베의 ‘엑기스’를 뽑아 제도화시켰다고 본다. 책에서 “이준석은 일베의 현신(現身)”이라고 규정했다. 정치적으로 이 대표의 성과는 경탄할 만하지만, 그게 한국 사회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할지 의심이 든다. 소수자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졌고 세력화될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이준석이 공당 대표라면, 방향이 다른 목소리도 들어야 하지 않을까.
‘혐오’ 과잉 소비 사회
Q : 우리 사회에 이런 ‘혐오’에 대항·견제할 동력이 안 보인다.
A : 일베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이미 진보 진영에서 예전부터 혐오에 준하거나 그보다 심한 말을 온라인에서 문제의식 없이 해왔다. ‘강자니까, 메이저니까 욕해도 돼’,‘풍자야’,‘패러디야’라면서 나이브하게 넘어갔다. 예컨대 ‘워마드’에서 혐오 표현을 썼을 때 심각한 문제라고 규정을 못 했다. ‘우리 편이니까, 까도 내가 까’라는 게 있었다. 물론 맞다. 이해한다. 하지만 공론장, 적어도 학계에선 분명 비판적으로 다뤘어야 한다. 밑바닥에 흐르는 이야기에 대한 관찰과 측정, 평가와 토론이란 장치가 작동 안 했다.
Q : 혐오는 이제 ‘일베’ 만의 문제도 아니지 않나. ‘혐오 사회’라고들 한다.
A : 혐오가 넘실대며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제도화되기도 했다. 다만 우리 사회를 ‘혐오 사회’라고 규정하는 건 반대한다. ‘혐오 사회가 됐다’는 건 ‘없던 혐오가 새로 생겨났다’는 뜻인가. 그렇진 않다. 또 혐오라는 말을 과하게 쓴다. 오염된 것 같다. 혐오(hate)를 ‘극혐(disgusting)’과 혼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주 쓰는 혐오는 ‘극혐’에 가까운 개념이다. 온라인 소통이 만연해 생긴 일 같다. 숨기지 않고 혐오스러운 말을 뱉으며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커진 만큼 혐오 발언을 들으며 느끼는 고통도 그만큼 많이 쌓였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 김신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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